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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7] 덜컥, 감기

미국, 뉴욕

by 므스므

보고 싶은 곳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던 뉴욕인데.


체류 후반부에 접어들며 돌이켜 보면, 하루에 한 곳 아니면 두 곳을 갔다. 문제는 그 한 두 곳에서의 체류 시간이 앉지도 못한 채 평균 3~4시간이었고 심지어 어제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6시간을 걷다 나왔다.


이러니 난 분명 하루에 한 두 가지만 했는데 집에 오면 완전 넉다운이 되어버려 일기고 자시고 쓰러져 자기 바쁘다. 그래서 지금 아침 10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여전히 집에서 빈둥거리며 어제 못 쓴 일기를 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나는 과연 가열찬 관광객인가, 아니면 느긋한 관광객인가.


오늘도 내 방문 앞에서 벌어진 대치 상황




고양이들과 놀아주며 아침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뮤지엄 오브 무빙 이미지'를 가보기로 했다. 영화 박물관쯤 되는 곳인데 영화 관련 희귀 자료와 영상물들을 볼 수 있다니 취향저격이다. 하지만 한 순간의 착각으로 버스를 잘못 타면서 30분이면 갈 곳을 한 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했다. 오늘 일진이 하 수상하다.


뮤지엄의 전시는 크게 2가지. 하나는 '짐 핸슨'이라는, 우리에겐 <세서미 스트리트>로 잘 알려진 인형 제작자의 작업물 전시로 추억 돋는 인형들 보는 재미가 있었고 또 하나는 '비하인드 더 스크린'이란 이름으로 영화 현장의 각 파트들을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영화 용어 DB 현대화 작업'을 하고 와서인지 각 파트들이 어찌나 친근해 보이던지.


체험형 뮤지엄이니 (놀랍지도 않게) 이곳에서 또 3시간가량을 혼자 신나게 놀았다.


뮤지엄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기대하게 만든다 @Museum of the Moving Image


무빙1.png <세서미 스트리트>의 아버지이자 인형 제작자 짐 핸슨 @Museum of the Moving Image


무빙2.png 추억 돋는 인형들 @Museum of the Moving Image


아버지와 딸의 열혈 인형 연기 @Museum of the Moving Image


내 취향대로 인형을 조립(?) 해 볼 수 있다 @Museum of the Moving Image


무빙4.png 클래식 영화의 주인공들을 커버로 만나볼 수 있는 잡지들 @Museum of the Moving Image


굿즈.png 영화 굿즈 또는 PPL 상품들 @Museum of the Moving Image


무빙5.png 특수분장을 설명하는 존에 설치된 말론 블란도와 알 파치노의 마스크 @Museum of the Moving Image


찰리 채플린의 <헬스 키친>을 플립북처럼 넘기며 볼 수 있는 장치 @Museum of the Moving Image


뮤지엄을 나오며 여기서 좀 거리가 있긴 하지만 오늘은 꼭 '코니 아일랜드'를 가보자 했다. 미국 문학에 자주 등장하고 유명 가수가 뮤비를 찍었고 해도 나에게 코니 아일랜드는 그저 영화 <빅>의 포춘 텔러 기계가 있는 곳으로 기억된다. 늦은 점심도 먹고 바닷가도 어슬렁거리다 카페에나 들어가 그림이나 그리면 딱일 것 같았는데.


주말인 뉴욕의 이해 안 되는,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망할 지하철 시스템. 예를 들면 이런 식. 2호선만 서는 전철역에 3호선이 들어오길래 (이해는 안되지만) 어차피 저것도 가니 타자했는데, 얼라, 정차역들은 4호선 역들이다. 지하철을 타기 전 분명 기차 몸통에도 3호선이라 쓰여있었는데. 이거 뭥미요?


게다가 갑자기 승객 하나가 쓰러졌다며 구급요원들이 올 때까지 30분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하여 지하철로 1시간 정도면 갈 곳을 2시간 반이나 걸려 갔고, 도착해 보니 난 점심도 굶은 채였으며 이젠 석양을 봐야 할 판이 되었다.


바닷바람은 또 어찌나 쎄던지. 뉴욕의 밤 날씨가 감당이 안되어 어제 비니 하나를 장만하고 좋아라 했는데 결국 사달이 났다. 포춘 텔러는 고사하고 숙소까지 하세월 걸려 갈 생각에 열까지 오르더니 목이 아예 잠겨버렸다. 어제의 강행군과 투어 버스를 기다리며 밤거리에 서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IMG_3303.HEIC 이미 석양이 지던 코니 아일랜드


코니.png 얼핏 평온해 보이지만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어댔다 @코니 아일랜드


코니1.png 포춘 텔러를 만나고 싶었지만 날이 너무 춥다 @코니 아일랜드




숙소에 도착해 뜨끈한 수프 한 사발과 감기약을 저녁으로 챙겨 먹었는데 다니엘의 엄마가 당근케이크를 구웠다며 주신다. 너무 맛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한 조각을 더 얻어먹으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냐 물었더니 핀터레스트에서 본거라고 쿨하게 답하는 뉴요커 할머니.


당근.png 인생 최고의 당근 케이크. 레시피 알아 올 걸


이곳 뉴욕의 호스트 다니엘을 오늘까지 딱 두 번, 그것도 5분도 채 안되게 만났었다.


그녀의 가족 모두가 2층에서 생활하고 1층의 부엌만 게스트와 나눠 쓰는데, 워킹맘인 다니엘과는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다. 마주쳤다 해도 아기 돌보고 집안일 정리하느라 너무 바빠 보여 말 걸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거실과 부엌 모두가 애기 용품으로 가득 차 있어 딱히 앉을자리조차 없다.


부엌에 있는 식탁이 고시원 책상보다 작고 하나 있는 소파는 아기의 짐(영성체를 앞두고 선물이 무진장 들어왔다고)에 점령당했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늘 마키엘라와 함께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주요 포인트에 cctv 가 달린 집이라 결국 하루 종일 좀 쉬고 싶어도 내 방 외에는 쉴 만한 곳이 없다.


호스트와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걸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데 다음 여정인 시카고에서 날아온 비보. 호스트 부부가 내 도착 날, 코스타리카로 일주일 휴가를 간다네. 이래저래 미국이 나에게 불친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베베 이 녀석은 이제 잠까지 나랑 잘 모양. 내 방에서 나갈 생각이 아예 없는 듯. 그래라. 감기약도 먹었겠다 핫팩이다 생각하고 껴안고 자야겠다.


IMG_3337.HEIC 눈을 감으면 얼굴의 어디가 눈코입인지 구분 안 되는 베베


그림47.jpg 그림일기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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