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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Nov 25. 2022

[D+50] 절반에 도착

미국, 시카고

드디어 100일 여행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지금까지 총 7개 도시를 거쳤고, 270개의 인스타 게시물을 올렸으며, 손톱은 두 번 깎았고, 발톱은 아직 안 깎았고, 배낭의 무게는 18킬로에서 15.4킬로로 줄었으며, 머리카락은 검은 머리가 1센티 좀 못되게 자라 있다. 


바지가 조금 흘러내려가는 걸 보니 살도 빠진 것 같고, 가져온 것 중 아직 한 번도 안 쓴 건 면봉, 부종용 압박 장갑, 때수건이며  <여행의 이유>는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기념품들 말고 새로 구입한 것은 비니와 클렌징 폼이고, 조만간 구입해야 하는 건 치약과 선블록이다. 사람이 집 떠난 지 50일가량 흐르면 이런 종류의 변화가 있구나를 눈으로 본다.


사실 시카고는 딱히 원해서 가는 게 아니다. 뉴욕에서 서부 해안으로 넘어가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다. 시카고에서는 출발 편이 있다길래 뉴욕->시카고 구간만 저가항공으로 끊었다. 가고 오는 날 빼면 그래도 이틀은 머물러봐야 도시에 대한 예의(!)지 싶어 총 4일을 있기로 한 건데, 호스트는 저 멀리 코스타리카로 휴가 여행을 갔단다. 


이번 에어비앤비는 도심 속 '농장형 숙소'라니 영화 <닥터 두리틀>이나 찍어볼까.




감기와 천식을 껴안은 채, 건조기 통 속에 들어앉았던 것 같은 뉴욕에서의 요 며칠은 지옥이었다. 그래서 오늘 그 방을 탈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시카고 날씨가 우중충의 끝판왕인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니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걷는데, 뭔가 동네가 심상치 않았다. 왜, 영화 속에서 경찰이 범죄자 뒤쫓을 때 많이 등장하는 빈민가 뒷골목의 그런 분위기. 자신들의 집 마당에 나 앉아, 걸어가는 나를 눈으로 좇는 이웃들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른 걸음으로 드디어 도착한 숙소. 농장형 숙소라는 것도 알고 예약했고 일종의 하숙집이란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교환 학생들과 농장 관리인, 자원봉사자까지 같이 사는 집이라 좀 어수선하긴 해도 활기가 느껴져서 충분히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외부 온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내 방에 들어선 순간, 정말 제대로 절망하고 말았다. 침대 위에는 얇디얇은 홑이불 하나만 달랑 올려져 있고 농장 관리인이 가져다준 난방기는 바로 '팬히터'. 진짜 공포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이불을 더 꺼내기 위해 옷장 문을 연 순간, 초파리인지 날파리인지 새까만 벌레들이 동굴 속 박쥐들이 날아오르듯 뛰쳐나왔다. 극악무도하게 건조한 공기 속에서 탈출했다고 기뻐한 지 몇 시간 만에 더한 곳으로 왔다. 


벽과 천장에 덕지덕지 붙은 벌레들을 보면서 시내 호텔을 검색 중이다. 우선 오늘 밤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시카고 도심 한복판에 농장이라니


참새도 함께 키우는 건가


식탐이 어마어마한 이 집의 고양이, 스탠리와 펌킨


그림일기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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