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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Nov 27. 2022

[D+52] 집사들의 선택

미국, 시카고

꼬박꼬박 삼시세끼 챙기며 약을 먹는데도 이 징그러운 감기는 떨어질 줄을 모른다.


어제 생긴 요령 덕에, 몇 시간이라도 잘 수 있음은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숨쉬기는 힘들고 독한 약 때문에 머리가 멍해져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다.


여행지에서 환자가 되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잘 먹고 잘 쉬는 휴식뿐. 그래서 오늘 시카고 미술관을 가려던 계획은 저 멀리 갖다 버리고 작정을 하고 쉬어보자 했다. 오전 약을 먹고 여행 와 처음으로 낮잠도 자보고 따뜻한 차와 꿀물도 끊임없이 마셔댔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차도가 1도 보이지 않자, 이래도 안 떨어질 줄 알았으면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 그냥 나가버리는 건데 싶어서 막 억울해진다. 다음 여행지인 포틀랜드와 시애틀 역시 이곳 못지않게 쌀쌀한 날씨의 동네들이라 마음 저 밑바닥에서 또다시 우울이란 놈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내 우울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집에는 총 3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 그중 노란 얼룩 고양이 '펌킨'은 친화력 갑의 고양이로 사람들에게 이쁨 받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관리인인 조쉬에게서, 이 놈은 한번 탈출하면 농장의 닭들을 괴롭히는지라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특히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호시탐탐 누군가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펌킨 때문에 현관문은 늘 열쇠로 잠가둔다.


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탠리, 펌킨, 스텔라


프로 탈출냥 펌킨. 현관문을 잠글 수밖에 없는 이유


남은 음식에 미련을 못 버리는 두 마리


하루에도 몇 번을 들어와 빈 그릇을 핥는 스탠리


또 다른 두 마리의 고양이 '스탠리'와 '스텔라'는 남매지간이라는데 생긴 것도 성격도 전혀 다르다. 특히 스텔라는 2층의 데이비드 침실이 자신의 영역인지 좀처럼 1층으로 내려오지 않아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문제의 회색 고양이 스탠리. 깜장이를 닮아서일까. 유난히 정이 가던 고양이인데 이 녀석, 아프다. 내가 보기엔 심각할 정도로 많이 아프다.


좀 전에 애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걸 목격했다. 펌킨과 마찬가지로 식탐이 너무 강한 아이라 싱크대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한 번은 그 위에서 떨어질 뻔 한 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 둘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식탁이나 싱크대 위에 두지 않는다.


간식을 몇 개 챙겨줬더니, 같은 식탐 대마왕이라도 바깥세상에 더 관심이 많은 펌킨은 내가 나타나도 흘낏 보고 현관문 앞에서 망부석이 되지만 스탠리는 달랐다. 기운이 없는지 내 방이 있는 2층까지는 올라오지 못하지만 내가 1층에 나타났다 하면 껌딱지가 된다.


예약 당시 데이비드도 스탠리란 고양이가 있는데 좀 아픈 거 같아,라고 했었기에 이 아이의 문제를 인지는 하고 있다는 건데.


이번 여행을 통해 서양 집사들의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집사라도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거의 끝과 끝 지점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수많은 고양이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나 동물보호협회의 기준에 따르면 서양 집사들의 방식은 '틀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틀렸다. 우리는 입양동의서에 외출냥이로 키우지 않는다, 가 필수 조건이지만 내가 만난 거의 모든 고양이가 외출냥이다.


그 흔한 쥐돌이 장난감 하나 없는 곳도 있고 심지어 캣타워 따위 없기도 하며(수직공간, 수평 공간 읊어대는 냐옹신, 미야옹철 수의사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다) 어떤 곳은 화장실 자체가 없는 집도 있었다. 비엔나에서 만난 '모시모시'의 털 빗은 사람이 쓰는 롤빗이었다!


우리나라 집사들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뒷바라지하는 엄마들의 느낌이라면 서양 집사들은 시골의 대안학교를 찾는 엄마들의 느낌이랄까. 나 역시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는 엄마 부류인지라 이렇게 아픈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데이비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서양과 한국의 이런 차이를 가지고 단순히 틀렸다, 맞다로 구분할 순 없을 거다. 이건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니깐.

(* 이 주제에 대해선 내 브런치 북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에 좀 더 풀어보았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겠지만,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뼈만 앙상하게 잡히는 스탠리를 보고 있는 게 너무 괴롭다...


깜장이를 닮아 유난히 더 마음이 쓰인 스탠리


그림일기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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