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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Dec 09. 2022

[D+63] 익숙함에 대하여

미국, 타코마

시애틀 입성 전 나흘 정도 머물게 된 도시 타코마.   


이곳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5시인데 타코마 버스 터미널 도착은 2시. 뉴욕에서와 같은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기 위해 정류장 근처에서 느긋하게 점심도 먹었다. 


이젠 배낭을 메고 걷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우버 대신 로컬 버스 정류장까지 걷고, 내려서 숙소까지 걷는 걸음이 가벼... 운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던 초반보다는 훨씬 나아진 게 사실이다. 


포틀랜드에서 사재낀(!) 물건들 때문에 결코 배낭 무게가 줄어든 것이 아님에도, 나름 날렵하게 걸을 수 있는 건 '그러려니' 하는 마음 가짐 때문인 듯. 익숙해진다는 게 때론 날카로울 수도 있는 마음을, 뭐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바꿔놓는 거 같아 그냥 편안해지기로 했다. 배낭을 멜 때마다 무겁다고 징징대 봤자 결국 매야할 사람은 나니깐 말이다.


북쪽으로 단지 2시간 반을 올라왔을 뿐인데 오후 5시에 벌써 깜깜하다. 포틀랜드에서 느낀 위화감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역시나 미국 대부분의 도시는 주택과 상가 구역이 분리된 게 맞다. 숙소가 있는 동네 주변만 해도 커피숍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조금 걸어가면 대형 오가닉 마트가 있길래 동네 상태 파악 겸 한적가 주택가를 3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산책이란 말을 붙이기 뭐한 게,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거리에 사람 그림자는 1도 안보이니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좀 걱정이 되어 서둘러 걸었기 때문이다. 


이젠 장보는 패턴도 익숙해졌다. 양파와 감자, 과일, 요거트와 우유는 절대 빠지지 않고 재료들의 상태에 따라 숙주나물이나 청경채 같은 채소도 산다. 오늘은 애플 사이다 하프갤론이 5불밖에 안 하길래 냉큼 집었다. 고기 대신 이번엔 햄을 샀는데 생각해보니 햄은 단백질이 아니라 지방이던가. 


타코마의 호스트 '보니'는 키가 나만한 작은 체구의 아가씨인데 직업이 웨이트리스란다. 1층엔 게스트와 보니의 아버지 방이 있고 2층엔 보니와 남친 애런이 사는데, 일나간 보니 대신 아버지와 애런이 번갈아가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준다. 은발의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보니의 아버지가 'one of my wives'도 여행을 좋아했다, 는 얘기를 하는데 속으로 빵 터졌다. 이 아버지 연구대상이심.


이 집의 고양이 피오나는 시카고의 스탠리를 떠오르게 하는 털 색깔과 눈을 가진 도도한 공주냥. 실제로 이집 와이파이 비번이 '프린세스 피오나'인걸 보니 공주 맞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내가 여태 만난 모든 고양이들이, 단 한 마리도 빠짐없이 궁디팡팡을 싫어한다는 것! 어째서??!!


똥꼬 근처에만 손이 가도 공격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도 역시나 방심하다 피오나의 발톱에 찍혀버렸다. 그래도 2주 만에 다시 만난 고양이라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다.


타코마는 관광을 위해 들른 도시가 아니다 보니 여즉까지의 도시들 중 정보가 가장 없다. 그냥 전무하다. 그래서 도시 공부는 때려치우고 앞으로 한 달여 뒤에 가게 될 뉴질랜드에서의 여행을 위한 렌터카며 투어며 숙박이며 기초적인 예약들을 하는 중이다. 하나씩 확답 메일을 받으니 정말 가는구나 싶다. 25년 만인가... 


어쩌다 보니 타코마에겐 조금 미안한 날.


그 유명하다는 스텀프 커피를 떠나는 날 아침, 이렇게라도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어


오가닉 마트라서 인지 색깔들이 더 선명한 느낌


제품들과 연계시킨 레시피, 좋은 아이디어!


이제 겨우 오후 5시라고요


숙소의 내 방


네, 공주님께 까불다 혼쭐이 났습니다


그림일기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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