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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Dec 08. 2022

[D+62] 사랑스런 포틀랜드, 안녕

미국, 포틀랜드

느긋한 주말 아침이라서 였을까.


아침 댓바람부터 남친과의 아침 식사 겸 개린이들 산책 겸 주말 쇼핑까지 다녀온 카일라는, 이 추위에 민소매만 입은 채 빗자루질 중이었다. 남친 찬스를 이용해 대청소를 한다고 핼러윈의 흔적들과 현관에 쌓인 낙엽들을 치우고 물청소까지 끝냈다. BGM은 징글벨과 산타 할아버지 오시네. 


반려닭 에델이 떠났을 때도 그렇고 핼러윈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집안을 뒤집어 놓으시는 카일라가 웃겨 죽겠다. 그래, 과거에 집착해 봤자 나에게 득 되는 게 없더라는 게 인생 진리지. 나도 너무 잘 아는 사실이지. 어쨌든 그녀의 이런 '미래 지향적' 추진력에 덩달아 나도 힘이 들어간다.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다 카일라에게 시애틀은 어딜 가보면 좋을까 물었더니, 크게 고민하는 듯하다 달랑 두 군데를 얘기해 주고 자긴 시애틀 같은 '콘크리트 도시'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캘리포니아 출신인데 18살에 대학을 포틀랜드로 오게 되면서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을 여기 살고 있지만, 오늘 아침에도 운전을 하며 'OMG, 여기 사는 게 너무 좋' 했다는 카일라.   


역시 멋진 언니.


과거를 돌아보는 것보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 




버스 타고 멀리 가긴 싫고 요 며칠 좀 많이 걸었더니 근육통도 있고 해서 마지막 날인 오늘은 정말 동네 한 바퀴만 휘리릭 다녀오기로 했다. 산책하다 바로 길 건너에, 우리나라 다이소 같은 '달러 트리'(일명 천원샵)가 있어 구경 삼아 들어가 봤다.


다이소보다도 물건들의 질이 훨씬 좋지 않았지만 생명을 다한 칫솔 바꿔야 했고 전 안 먹던 새콤달콤 젤리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당 충전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겨 몇 개 사고.


오늘도 열일 하는 포틀랜드의 가을


동네 티셔츠 가게


모든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은 사람을 센치하게 만든다. (아 물론 뉴욕과 시카고 빼고) 포틀랜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카일라는 왜 최근 들어 아시아 사람들이 이곳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선 자부심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적어도 한국인들에겐 최근 소확행이니 욜로니 하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겨서 일거라고 대답해줬다. 느리게 사는 삶, 킨포크적 삶 하면 포틀랜드니깐.


잘 발달된 대중교통과 언제든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커피숍 혹은 공원, 아니면 로컬 맛집, 어딜 가나 신선한 식재료들, 낯선이에게도 늘 유쾌한 사람들, 이런 것들과 함께 드디어 떨어져 나간 내 감기. 


내가 어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초울트라에너지만땅머신 개린이들과 놀면 핸드폰이 날아가는 건 다반사. 그러다 1초 만에 전원이 뽑힌 것처럼 잠이 들어버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많이 보고 싶겠다


그림일기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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