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다
기차 안에서 유럽 세미나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던 도중, “비디오”라고 적혀 있는 폴더로 눈이 갔다. 그 폴더 안엔 동영상 2개가 있었다. 하나는 Y와 나의 9개월 기념 축하 동영상 (겸 생일 축하 영상), 하나는 발렌타인데이 축하 동영상.
지원서를 잠시 옆에 두고 내 기억의 잔해 속 깊숙이 은폐된 옛 기억들을 조금씩 끄집어내 보았다.
동영상의 주체는 ‘나’와 ‘그녀’도 아닌, 사랑이었다. 한 없이도 애틋했던 첫사랑. 시간보다 더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종교보다 더 믿었을 때.
동영상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기차 안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의 정신은 온통 4년 전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순수하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이 풋풋한 대학생. 열변을 토함과 동시에 수줍음으로 말끝을 흐리는 연애 초보.
그때의 나는 사랑을 온몸으로 향유하고 있었다. 사랑의 숙주가 된 몸이었다.
나는 나를 보면서 피식 웃고,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이 시간들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구나.
시간의 비가역성이 야속하기만 했다.
바로 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그걸 우린 추억이라고 부르는 걸까.
동영상이 끝이 난 뒤 나는 다시 지원서에 집중을 했다.
(2019.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