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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차 Jan 20. 2021

재즈를 말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

영화 '스윙걸즈'를 보고 난 후

2006년, 별 다른 예고 없이 우리 가족은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보금자리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시애틀이라는 생소한 곳에 우리 가족은 뿌리를 내렸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 공항에서 내려서 바라본 창가, 비 내린 후 올라오는 촉촉한 향, 여름 바람의 기승에 못 이겨 살며시 인사하는 나무들. 


2006년,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지만, 내 기억은 시애틀의 서늘 서늘한 바람만 기억한다. 어린 나에게 ‘이민’은 그저 두 글자뿐이었다. 그 두 글자를 품은 채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아무런 맥락 없이 재즈를 좋아하게 됐다. 클래식 피아노를 치면서 자란 나는 재즈가 주는 그 어떤 자유로움, 다양한 악기들과 할 수 있는 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는 조화가 사무치게 멋있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들을 수 있는 재즈 음반들은 다 들었다. 빌 에바스와 키스 자렛, 오스카 피터슨, 배니 굿만... 이들은 내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선사해줬으며, 재즈는 나의 어색하고 따분한 고등학교 시절의 해방구이자 탈출구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 재즈는 나에게 음악적 영감과 동시에 그 어떤 사회적 억압에서 나를 구출해 주기도 하였다. 교포로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는 건 미국 주류사회가 아시아 계열 이민자들에게 덮어 씌우는 일차원적 선입견을 견뎌내는 것과도 같았다. "동양인들은 수학을 잘해," "한국 애니까 클래식 피아노만 치지" 등등.  나는 이렇게 나의 내면과 성격이 다른 이들로부터 규격화되고 평준화되는 게 소스라치게 싫었다. 


이러한 나에게 재즈는 말 그대로 그 규격화된 나를 자유롭게 해 준 어떤 통치약이었다. 아니, 말라빠진 한국애가 무슨 재즈를 들어? 나는 미국 사람들의 그 의아한 표정에서 알 지모를 희열을 느꼈다. 이민자로서 미국의 몇 안 되는 고유 명물인 재즈를 즐기고 좋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만의 어떤 "아메리칸드림"이라고 할까. 이렇게 재즈는 아시아인의 선입견에 잔뜩 주눅 든 나에게 손을 건네준 친구였다. 


대학교를 입학한 나는 왕성하게 재즈 활동을 했다. 재즈 콤보에서 피아노를 쳤고, 재즈 역사와 이론 수업을 동시 청강하고, 재즈 동아리에서 회장 (비슷한 역할)을 맡으며 고등학생 때 뿌렸던 재즈의 씨앗에 거름을 듬뿍 투여했다. 이 때는 정말 나에게 있어서는 찬란한 시기였다. 순전히 재즈를 좋아하고, 재즈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재즈를 연습하고, 재즈를 배우고. 사랑을 많이 해보진 못했지만, 나는 재즈를 임하는 태도에 있어선 그 어떤 사랑보다 숭고한 사랑을 했다.


그러한 기쁨도 잠시었다. 졸업을 하자 재즈를 좋아했던 나의 모습은 서서히 맥을 잃기 시작했다. 한 이유는 영화가 좋아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사회를 만난 나의 무기력해진 모습에 질려 그 심정을 재즈에 임하는 태도에 투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시노부 야구치의 2004년도 영화 <스윙걸즈>를 관람했다. 사랑스러운 여배우 주리 우에노가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어느 시골 마을 여고생들의 좌충우돌 재즈밴드 결성과 성장기를 다루는 영화이다. 영화 초반 즈음, 주리 우에노가 말한다: "재즈? 그거 아저씨들이 브랜디를 휘저으면서 듣는 노래 아니야?" 


내 심정이 이랬다.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한테 재즈를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기 무서워졌다. 그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나를 어려운 사람 대하듯 할까 봐, 아님 재수 없이 생각할까 봐 (사실 절대로 그게 아닌데). 사람들의 의식 때문에 점차 재즈는 내 관심과 애정의 부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어쨌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좋아하게 된 재즈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멀어져 갔다. 


하지만 우연히 관람하게 된 이 영화를 통해서 나는 고등학생 나 자신을 보았다. 아니, 진짜 말 그대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주리 우에노가 분) 테너 색소폰을 불었으며, 우리 고등학교 스윙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처음 재즈콤보와 음을 맞춘 곡도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이 감정의 진원지는 스윙걸즈의 애정 어린 재즈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면에서 사랑을 담아내고, 형용하고, 표출한다. 주리 우에노가 처음 색소폰을 구입하고 불 때 느끼는 사랑, 스윙걸즈가 재즈의 박자를 깨달을 때 느끼는 사랑, 음반을 수집해서 고이 모셔놓는 선생님의 오디오매니아적 사랑. 배움의 사랑, 음악의 사랑, 청춘의 사랑, 열정의 사랑을 나열해 놓은 것 만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이 영화에서 얻었던 감흥은 스윙걸즈의 그 사랑에 대한 어떤 부러움이 아니라, 나한테도 그런 사랑이 있었다는 뒤늦은 회한과 아직도 그 사랑이 내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말 못 할 설렘. 


스윙걸즈를 응원한다는 건 곧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위로해주고, 내 앞에 아직 남아있는 가능성의 시간들을 지켜주는 것이다. 


가슴 한 곳이 후련하다. 지금은 밤 11:26분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오늘은 자면서 아마드 자말의 연주곡 <But Not for Me>를 들으며 자야겠다.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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