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95년, 제시와 셀린은 오스트리아 빈을 향하는 기차에서 만나고, 그날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비포 선라이즈). 9년 후, 그들은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재회를 하게 되고 약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 (비포 선셋). 그리고 그로부터 또 9년 뒤,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비포 미드나잇). 삼부작의 서사는 그게 다다. 18년 동안 그들은 만나고 만나고 만난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이 이 영화의 핵심이자 우주이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제시와 셀린의 다방면적 만남을 기록하며 관객들을 그들만의 우주로 초대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플롯 먼저, 대화는 그다음에'라는 포뮬라 속에서 작동한다. 하나의 스토리 라인이 먼저 짜여지고,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그 서사에 상응하는 형식으로 쓰여진다. 하지만 링클레이터의 비포 삼부작은 이 공식을 전복시킨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온갖 대화를 하며 도시를 헤집고 다니고, 카메라는 그들을 조용히 뒤따라가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제시와 셀린은 빈의 고즈넉한 레코드 샵에 가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파리의 11번째 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그들이 얼마나 변했나 (혹은 변하지 않았나)에 대해 말을 하고, 그리스의 카다밀리 항구에서 아무 말 없이 지는 태양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를 내 시선이 따라간다 - 내 안을 영화의 모든 이미지로 채우고 싶어서.
그리고 내 시선을 내가 언젠가 따라갔다. 작년, 불가리아에서 1년을 보내던 시기에 나는 2주 휴가를 내고 파리, 빈, 그리고 그리스를 차례대로 방문했다. 제시와 셀린이 걸었던 거리들과 골목들을 배회하며 나는 그들이 내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혼자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올라온다.
그리고 갑자기 든 생각. 인생은 시네마가 될 순 없지만, 인생은 시네마틱 할 순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들뢰즈의 말 - 그는 언젠가 세상이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다. 제시와 셀린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