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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차 Apr 07. 2022

이별의 미학, 혹은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방법

요즈음은 유독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 찍는 재미가 들렸습니다. 인화한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은 친구들의 뒷모습입니다. 그 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즈음 셔터를 누릅니다. 친구의 뒷모습에 어스름이 내려앉습니다. 


지난해 3월,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불가리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7월까지 있을 줄 알았던 우리는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서둘러 비행기표를 끊고 각자의 도시로 귀국했습니다. 한 장소, 한 시간대를 점유했던 우리는 삽시간에 미국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헤어질 때 우리는 '굿바이'라고 합니다. 잘 가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잘 가기 위해선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한가요? 그건 대칭성입니다. 이별의 대칭성은 이별의 주체인 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고 동시에 등을 돌릴 때 이뤄집니다. 등을 돌림으로서 그 둘은 각자의 등을 마주할 필요가 없게 되고, 그렇게 이별은 성사가 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리게 될 때 남겨진 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요? 떠나는 자의 등을 바라보는 자의 심정은 무엇인가요? 즉, 이별의 대칭성이 파괴되고 난 후 우리는 그 잔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지난 3월, 우리는 먼저 등을 돌리는 자들이 됐고,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답 없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붕괴된 대칭 속에서도 뒷모습을 온전히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뒷모습은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반대편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쓸쓸한 등의 이미지를 더욱더 머리에 각인시키죠. 뒷모습이 자아내는 호기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뒷모습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연연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비밀스러운 결속 아닐까요.*


또한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나와 상대방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시선은 일치합니다, 그리고 시선이 향하는 곳에 우리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뒷모습엔 매듭짓지 못한 미완성의 테가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뒷모습은 무한함과 영원함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완성된 것들엔 끝이 있지만, 미완성의 것들엔 끝이 없습니다. 이 끝없음에는 어떠한 희망과 전율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그렇게 바라보는 건 결국엔 영원한 희망을 소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2001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대만의 천재 감독 에드워드 양이 그린 가족 연대기 영화이죠. 영화의 주인공인 양양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고 다닙니다. 아버지는 의아해하면서 양양에게 묻습니다. "왜 너는 그렇게 사람들의 뒷모습은 찍느냐?" 양양은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요." 


결국엔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는 건, 
보이지 않는 것에 시선을 부여하며 새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별은 보이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을 매듭짓는 매개체인 것이죠. 우리가 이별을 하는 건 과거 (벌써 보여진 것)를 회상하면서 미래 (아직 보이지 않는 것)를 그려보는 행위입니다. 


3월에 이별을 하면서 우리는 말했습니다 - "it's not a goodbye but a see you later." 이 것은 이별이 아니고 나중에 보자는 말이야.


하지만 이제 정정하겠습니다 - "it is a goodbye, but I will always see you." 우리는 이별했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보고 있을 테야.  


*배수아, <뱀과 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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