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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Jun 08. 2024

배 vs 기차, 고를 필요가 없는 시칠리아행

또 하나의 '나도 몰랐던 버킷리스트' 체크!

밀라노에서부터 피렌체를 지나 이탈리아 남부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나폴리 근처에서 우리는 최남단 시칠리아로 향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름 바캉스 목적지인 시칠리아! 11월인데도 여름과 다를 바 없는 날씨라 바다 수영을 즐길 생각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11월의 수영보다 특별한 경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섬으로 가는 여정이니 배를 타고 가지 않을까?’

‘아니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 기찻길이 있으니까 시칠리아도 해저터널이 있을지도?’

‘그것도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세 가지 옵션 중 어떤 수단으로 갈지 물으니 엄마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내놓았다.


“선택할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우린 배와 기차를 동시에 탈 거거든.”


해저터널도 아니고 배를 타는데 기차도 동시에 탄다고…? 우리 모두의 눈동자와 머릿속에 물음표가 다닥다닥 생겼다. 확장된 우리의 동공을 본 엄마는 신이 나서 설명했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배에 실려서 섬으로 건너가는 아주 특별한 루트라고.


엄마는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던 여정을 하게 된 날이라며 기뻐했다. 우리는 배가 얼마나 크길래 기차를 실어 갈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하고 기차에 탑승했다.


살레르노라는 도시의 기차역에서 출발했다. 4시간이 걸려 드디어 시칠리아 건너편 도시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내륙의 맨 아래 부분에 있는 빌라 산 지오바니라는 항구 도시였다.


역에 도착한 기차는 엔진을 끄고 잠시 정차해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음 없이 고요하고 부드럽게.


곧이어 항구에 정착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그리 거대한 사이즈는 아니어서 놀랐다.


‘혹시 모든 사람들이 한 칸에 모여서 딱 한 칸만 실어 가는 거 아닐까?’


저 배가 과연 기차를 전부 실을 수 있을까?


도무지 어떻게 실현 가능한 건지 의문을 가진채 하염없이 배를 바라보았다. 기차는 배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다른 철로와 만나자 정차했다.


잠시 후 이번엔 배로 향하는 반대 방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기차와 배가 합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창밖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지켜봤다.


가까이 다가온 배 안으로 기차가 진입하고 있었다. 기차가 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러 9와 3/4 승강장으로 사라지는 것만큼 신비로웠다.


우리보다 여섯 칸 정도 앞에 있는 열차까지 들어가는 걸 보면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코 앞에서 봐도 열몇 칸이 되는 기차가 다 들어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걱정이 됐다.


‘이러다 우리 앞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우리 칸부터 낙오되는 거 아냐?’


배 안으로 들어가는 기차


불안도 잠시, 배 입구가 계속해서 다가오더니 바다 뷰는 사라지고 배의 내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칸까지도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반대편 창문에는 앞서 들어와 있던 다른 칸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진짜 기차가 배 속으로 쏙 들어왔구나!’

‘아니, 기차가 진짜 배 안에 전부 들어왔다고?!’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광경이었다. 기차 한 대가 온전히 들어오고도 공간이 여유로웠다. 겉에서 보기보다 훨씬 더 웅장한 스케일의 배였다.


배에 탄 기차에 탄 순간


완전히 정차한 후, 기차 문이 열렸고 우린 기차에서 내려 배에 발을 디뎠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니 이미 항해를 시작해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빌라 산 지오바니에서 6.7km 거리에 있는 시칠리아 섬이 눈앞에 훤히 보였다. 우린 분명 기차를 타고 왔는데 어느새 배에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시칠리아에서 기차는 다시 한번 끌려 배에서 나왔다. 역에서 다른 칸들과 일렬로 합체한 후 다시 출발했다. 얼마 후 시칠리아에서 우리의 첫 행선지인 타오르미나에 다다랐다.


6시간 가까이 한 기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던 여행길이었다. 고대하던 시칠리아 섬에 도착해 ‘와, 시칠리아다!’를 외치기 전에 ‘와, 너무 신기했다!’가 연신 나오는 기차 여행이었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기차역 도착 :)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칠리아 섬까지의 길은 상상도 못 했던 신비롭고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이 코스는 딱 ‘버킷리스트’ 감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즐겼던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처럼 ’나도 몰랐던 버킷리스트‘를 체크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게 되는 누구에게라도 기차와 배를 한꺼번에 탈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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