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차들의 섬
이탈리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는 운전 경험이다.
기차로 쉽게 다닐 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지낼 때나 거리가 있는 명소에 가기 위해 우리는 피렌체에서 차를 빌렸다. 남부를 향해 달려 아드리아해 최남단에 있는 폴리냐노 아마레를 찍고 마테라를 지나 쏘렌토까지. 열흘동안 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며 여행했다.
유럽에서는 소형차를 많이 타는 편인데 그만큼 길도 좁아서 그런 듯하다. 처음에는 좁은 길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구석기시대부터 무려 8000년 넘게 사람이 거주해 온 마테라에서는 최고로 좁은 길을 마주했었다.
땅과 닿은 듯 낮은 차의 운전석에 앉아 눈앞에 놓인 좁은 골목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두 팔로도 양쪽 벽이 닿을 폭이었다. 저 길로 들어갔다간 무조건 차 양쪽이 박박 긁힐 것만 같았다. 그런 길을 다른 차들은 유유히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계속 체크하며 거북이와 경주를 했다면 졌을 속도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심장이 쫄깃한 경험이었다.
마테라를 비롯해 여러 시골 마을에서 운전을 하며 나름 적응을 하고 시칠리아로 넘어갔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 시칠리아에서도 렌터카를 빌린다는 말에 크게 겁먹지 않았다.
그런데 시칠리아는 베트남보다 운전하기 어려운 곳이란 걸 금세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살던 때,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운전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그래도 베트남은 고속으로 달릴 일도 많지 않고, 카오스 속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적응하고부터는 그리 겁나지 않았다.
물론 오토바이와 자동차 운전에는 차이가 있지만 시칠리아는 베트남보다 한 수 위의 난이도였다. 길도 좁은데 질주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핸들을 부서질 듯 꽉 잡고 눈은 정면과 양옆 모두를 완전한 집중력으로 살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칠리아에는 찌그러진 차들이 많았다. 몸이 성한 차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최소한 긁힌 자국이라도 꼭 있었다. 어떤 차들은 폐차장에 있지 않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칠리아에서 반나절 정도, 아니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차가 성할 수가 없는 드라이브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걸.
시칠리아 섬 남쪽 끝에 있는 라구사에서 서쪽에 위치한 아그리젠토로 이동했던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해가 일찍 지는 11월이라 오후에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니 않아 어둠 속을 달려야 했다. 굽이진 산길을 지나는 코스인데 가로등도 없어 칠흑 속을 지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1.5차선 정도밖에 안 되는 길이라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두려웠다. 시칠리아 인들은 그런 길을 쌍라이트를 켜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어둠 속 코너에서 갑자기 나타난 쌍라이트는 폭죽처럼 나의 초점을 흐려놓고 우리 차와 닿을 듯 말듯하며 쌩하고 지나갔다.
섬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팔레르모에 도착한 날은 드디어 운전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 아직 마지막 난관이 남아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기뻐하며 도착했다.
시칠리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는 차들이 바글바글했다. 초행길에 복잡한 코스이기도 해서 갑자기 나타난 일방통행 길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마터면 역주행을 할 뻔하기도 했다.
5차선 정도 되는 해변 도로를 만났을 때 나는 순간 베트남에 왔다고 착각했다. 차선을 지키는 차가 단 한 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차선이 그려져 있기는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5차선을 9차선으로 쓰고 있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아무도 차선을 안 지켜서 나도 편하게 자리 난 곳으로 들어가는 재미도(?) 즐겼다.
마지막이자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던 사건은 차를 반납하는 장소에 도착하기 2분 전에 일어났다. 1차선에 서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회전 신호가 켜지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 오른쪽에서 차 한 대가 분노의 질주를 찍듯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우리 차를 1mm 남기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차. 이땐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났다.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시칠리아에서의 운전이었다.
시칠리아에서 차를 렌트해서 다닌 5일. 겨우 5일 동안 목숨의 위협을 느낀 건 몇 번이었을까. 등골이 오싹한 두려움에 소름 끼치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해서 무릎이 꿇어진다.
똑같이 무법의 도로인 베트남과 시칠리아에서의 운전 경험을 비교해 보면, 나는 베트남이 훨씬 낫다. 평균 속도가 낮아 심리적인 부담이 훨씬 덜하다. 시칠리아는 스릴을 위해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을까. 나는 롤러코스터에서 즐기는 안전한 스릴만 즐기는 게 좋다.
여행하는 동안 자동차가 있으면 편리하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칠리아에서는 그 장점으로 커버되는 수준의 운전 컨디션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다면 운전 실력이 완전히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 또 스위스에 비해 한국은 과격한 운전자들이 많다고 불평할 때가 많았는데 시칠리아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운전 레벨업을 하게 해 준 건 고맙지만, 한 번으로 족했던 시칠리아 운전 여행. 혹시라도 차를 빌리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