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찾은 인생 스테이크
다소 실망스러웠던 이탈리아에서의 파스타와 피자 때문에 씁쓸했던 나의 마음을 달래준 음식이 있었다.
바로 스테이크! 이탈리아에서 한 달을 여행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스테이크다. 지난 글을 쓸 때엔 다소 우울했지만 오늘은 경쾌하게 써내려 갈 수 있어 기분이 좋다.
본격적인 스테이크 천국의 시작은 피렌체였다. 피렌체 지역 스테이크 이름은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이름부터 거창하다. 토스카나 지역에서 키운 어린 수송아지 또는 암소 고기만 취급하는 피오렌티나는 우리나라 한우처럼 급이 남다르다. 1kg 이상의 큰 덩어리로 잘라 숯에 살짝 구워 겉은 진한 갈색이지만 속은 레어로 즐기는 스테이크다. 피렌체는 가죽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만 나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로도 알려져 있다.
피렌체에 도착 한 첫날,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로 가장 유명한 식당에 갔다. 보통 1인분의 양으로 나오는 양식당과 다르게 메뉴에는 ‘kg’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숫자로도 압도하는 피오렌티나.
우리는 1kg, 2kg짜리로 두 접시에 파스타듀 다양하게 주문했다. 먼저 나온 트러플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볼로네제 펜네는 드디어 ‘바로 이거지!’하고 외칠 수 있는 이탈리아 오리지널 파스타였다. 분명 스테이크 전문점이라고 했는데 파스타부터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감탄이 연신 나왔다.
첫 번째 코스로 깔끔하게 해치운 파스타에 이어 대망의 주인공, 피오렌티나가 나왔다. 무려 1kg이나 되는 스테이크 사이즈에도 놀랐지만 곧이어 나온 2kg 스테이크는 사람 얼굴보다 컸다. 숯불에 그을린 표면은 번지르르 빛이 났다. 날카로운 나이프로 쓱싹쓱싹 잘리는 고기는 한눈에 봐도 얼마나 부드러운지 느낄 수 있었다. 한 조각 잘라 옆으로 눕히자 분홍빛 속살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제부에게 첫 입을 양보했다. 10cm 정도 되는 크기로 큼직하게 잘라 입 속으로 넣는 제부를 모두 숨죽여 지켜봤다. 제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기와 브루스를 추듯 즐겼다. 맛평가를 듣기까지 우리는 다이어트 중 보는 먹방을 시청하는 고통을 느꼈다. 오물오물 한참을 씹고 나서 드디어 입을 연 제부는 딱 한 마디를 했다.
“와, 먹어봐.”
그제야 우리는 고기를 한 점씩 썰어 먹어봤다. 쫄깃하면서도 아이스크림처럼 금세 녹아 사라지는 고기. 씹으면 씹을수록 숯향과 육미가 폭발했다. 모두 제부처럼 눈이 절로 감겼다. 오롯이 미각에만 집중하고픈 맛이었다. 제부는 먹어본 고기 중 단연 최고라며 외쳤다. “찾았다, 인생 스테이크!!”
피렌체에서 매일 피오렌티나를 즐기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행복에 겨운 우리에게 이모는 며칠 후 또 다른 스테이크 맛집에 데려갈 거라며 예고편을 들려주었다. 바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Chef’s Table에 나온 식당이라고 했다. 예고편부터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다. 이틀 후, 우리는 끼안티 지역에 있는 Officina della Bistecca 레스토랑으로 갔다.
시골 마을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다리오 체키니(Dario Cecchini)가 Chef’s Table에 출연한 주인공이다. 정육점의 아들이었던 그는 수의사가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사 때문에 가업을 물려받은 다리오는 괴로움에 슬퍼했었다. 동물을 살리고자 했던 사람이 정반대의 이유로 동물에게 칼을 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기고한 운명에 힘들어하던 중 아버지와 오랜 시간 일했던 분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는데 그분의 말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동물이 태어나면 인간은 동물에게 최고의 삶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동물이 자신들의 손에 죽어 남긴 선물을 존중하는 것이 정육사로서의 태도라고. 다리오는 그의 말이 자신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다리오는 정육사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성대한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끼안티 지역의 생햄, 크루도부터 로컬 스타일 비스테카 빤자네제 스테이크, 그리고 피렌체에서 먹은 비스테카 피오렌티나까지. 총 다섯 코스의 고기로 구성된 디너였다. 부드러운 식감부터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까지 다양한 고기의 향연이 이어졌다. 여기선 ‘그만 주세요’ 할 때까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푸짐하게 주는데 정육식당의 플렉스가 이런 것이구나를 체험한 저녁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한 달 동안 먹어본 스테이크는 모두 평균 이상이었다. 스테이크로 유명한 피렌체나 넷플릭스에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만 최상급 스테이크를 맛본 게 아니었다. 밀라노의 한적한 거리에 있는 동네 식당에서도 그랬다. 프로슈토 크루도부터 파스타까지 배불리 먹은 후였음에도 스테이크를 흔적 없이 다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로마에서 남편과 간 레스토랑에서도 잊지 못할 식감과 육즙을 품은 스테이크를 먹었다.
기대 이하였던 이탈리아 파스타와 피자를 자주 먹어 낙담했던 마음은 피렌체에서의 파스타로 조금 풀렸다. 한결 나아진 마음은 보들보들 환상의 맛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에 완전히 녹아버렸다. 나는 이제 ‘이탈리아는 파스타지’가 아니라 ‘이탈리아는 스테이크 천국이야’라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