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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Jun 01. 2024

이탈리아의 미식 환상, 과연 사실일까?

베니스에서 악몽 같았던 점심

이탈리아가 미식의 나라라는 명성은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김치는 한국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것처럼, 파스타와 피자도 이탈리아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오래도록 믿어 왔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한 달을 여행하며 나는 그 믿음을 과감히 내려놓게 되었다.


여행 시작 전부터 우리는 유럽이 처음인 남편과 제부에게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제부에겐 홈그라운드에서 맛보게 될 파스타에 대한 기대를 실컷 올려놓았다. 하지만 현지에서 먹어본 음식에 대한 남편과 제부의 반응은 감탄과는 멀었던 적이 꽤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의 첫 도시, 밀라노에서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음식을 먹었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출발해 도착한 밀라노에서의 첫 끼가 그랬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현지인, 외국인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는 레스토랑이었다. 우린 다섯 종류의 피자를 다양하게 시켰지만 어느 하나도 특별히 맛있지가 않았다. 여기저기서 ‘이럴 리가 없는데?’하며 당황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동생과 나는 남편과 제부에게 '이 집만 그런 거야'라고 안심시켰지만 그 집만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먹은 모든 음식이 맛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10여 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먹은 음식은 하나같이 감탄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 맛집 검색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아무 데나 가서 먹어도 파스타 본거지의 명예를 뽐냈다. 그때 한국에서는 이탈리아 오리지널 파스타를 쉽게 맛보기 힘들 때였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본국 못지않은 파스타를 선보이는 양식 레스토랑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의 이탈리안 음식 수준이 올라간 만큼 이탈리아에서는 업그레이드되진 않았더라도 변함없이 맛있을 것이라 믿었다. 바로 그 기대가 실망의 주원인이었을까 생각도 했다.


분명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그대로인 곳도 있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곳이 생각보다 많았던 게 놀라웠다. 특히 베니스는 더 그랬다. 10년 전보다 2023년 관광객이 1.4배로 늘어났고 그만큼 레스토랑도 늘어났을 것이다. 증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이민자들을 고용한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탈리아 현지 직원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비율이 반으로 줄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음식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까지도 낮아진 것 같았다. 비싼 가격에 그만한 값어치를 못한 음식 그리고 무례하기까지 한 서비스를 겪기도 했다. 그것도 2박 하는 동안 두 번이나.


그중 평판이 좋고 유명하다는 식당에서의 점심은 여행을 통틀어 최악의 경험이었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무거운 플레이트를 던지듯 쿵쿵 내려놓아 음식이 나올 때마다 긴장이 될 정도였다. 나는 대학교 때 베니스로 여행을 갔을 때 칼바람이 부는 아주 추운 겨울 저녁에 먹은 페스토 뇨끼에 대한 행복한 추억이 있다. 그래서 베니스의 첫 식사였던 이곳에서도 페스토 파스타를 시켰다. 기대에 차서 한 입 먹었는데 소스는 밍밍했고 면은 불어있었다. ‘에이~ 아닐 거야, 내가 잘못 느낀 거겠지’하고 한 번 더, 두 번 더 먹었지만 더 이상은 먹지 못할 정도였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파스타를 다 남기고 결국 샐러드를 주문했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를 내기 전 테이블을 치우러 온 직원의 행동은 선을 넘기까지 했다. 직원이 동생에게 접시를 달라고 했는데 동생이 대화하느라 듣지 못하고 접시를 주지 않자 그 직원은 욕설을 내뱉었다. 우리는 두 귀를 의심했지만 정확히 들은 동생은 황당함에 이어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매니저에게 건의를 했지만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던 직원의 말을 매니저도 믿지 않는 듯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일까). 끝에 사과를 받았지만 불쾌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베니스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이탈리아 전국의 여러 식당에서도 실망스러운 음식을 꽤나 여러 번 먹었다.


이번 여행 전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기껏 해봐야 도시 몇 군데 정도 가본 것인데 그 추억으로 나만의 환상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 경험이 있는 엄마, 동생, 친구 모두 입을 모아 한 말이 ‘음식 맛이 예전만 못 하다’였다. 물론 백이면 백 다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를 저버린 경우가 40%에서 반은 됐던 것 같다. 마치 한국에서 10개 식당 중 무려 반 가까이가 된장찌개를 맛없게 끓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남편에게 그토록 ‘이탈리아 음식 기대해!’라고 외쳤었는데, 나의 체면은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이제 꼭 이탈리아 본국에서 먹는 파스타, 피자가 세계에서 가장 맛있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들으면 열불이 날지도 모르지만 한 때 ‘파스타는 무조건 이탈리아가 최고야’를 외치던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느낀 바다. 그렇다고 내가 즐겼던 몇몇 레스토랑의 피자, 파스타도 같은 결론에 묶고 싶지는 않다. 또 아침에 크루아상과 함께 즐기는 에스프레소, 식후마다 달콤한 유혹을 하는 젤라토도 이탈리아 미식의 세계를 대표한다. 이탈리아식 ‘맛있다’는 표현인 손가락을 만두처럼 모아 빙빙 돌리는 제스처가 끊임없이 나오는 레스토랑도 있었다. 밀라노에서의 프로슈토 크루도처럼! 그리고 다음 편에서 얘기할 이탈리아의 스테이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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