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소망이 담긴 시간들
이탈리아 첫 행선지인 밀라노에서는 이상과 현실, 그리고 다시 이상으로의 여행을 즐겼고 다음 두 도시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시간을 보냈다. 볼로냐와 베니스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의 인연과 만나는 경험을 했다.
다진 고기에 토마토소스를 푹 끓여 걸쭉한 볼로네제 파스타의 고향인 볼로냐. 음식을 제철에 먹어야 최상의 맛을 볼 수 있듯, 김치는 한국에서 먹어야 제 맛이듯 볼로네제를 볼로냐에서 먹을 생각에 다들 들떠 있었다. 볼로네제뿐만 아니라 라자냐도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 입 한 입 섭섭하지 않게 겹겹이 소스가 듬뿍 들어 있는 퐁신하고 꾸덕한 라자냐를 좋아하는 나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한 건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베트남에서 살던 때 만난 친구가 있다. 이탈리아 안에 있는 작은 나라, 산마리노에서 온 친구다. 남편과 나의 친구들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매주 만나는 모임 덕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 갈 기회가 많았다.
그 친구는 먼 타지에 살면서 언어의 벽, 문화의 차이와 혼자 싸우는 듯해 보였다. 무더운 베트남 더위도 친구의 쓸쓸한 마음을 녹여줄 수 없었던 것 같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은 거의 다 현지인이기 때문에 유일한 외국인인 우리 둘은 자연스레 더 친해졌다. 점점 둘이 따로 만나는 때도 많아졌고 남편과 셋이 모이는 자리도 자주 가지게 되었다.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친구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졌지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수년간 버텨 온 친구는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접고 산마리노로 돌아가게 되었다. 출국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만나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와인 한 잔을 하며 송별회를 했다. 남편과 나는 친구가 가족 곁에서 부디 쓸쓸한 마음이 채워지길 바랐다.
그 후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그리워한 지 5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는 산마리노에서 4시간이 걸려 볼로냐까지 와주었다. 볼로냐 기차역에 서있는 친구를 발견한 남편과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친구를 와락 안았다. 남편과 나는 한 번씩 번갈아 가며 포옹을 하고 마지막으로 셋이 함께 진하게 서로를 안았다. 친구는 전날 밤 흥분 돼 잠도 못 자고 우리를 다시 만나는 게 감격스러워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남편과 나도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 가슴 벅차게 좋았다.
카페로 향하는 길 반가움이 고조되어 폴짝폴짝 뛰듯 걸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재잘재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페인에 우리의 행복한 마음까지 더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베트남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이 이어져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5년이 지났지만 전과 다를 바 없이 서로를 아끼고 반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새삼 감동이었다. 고단했던 베트남에서 축 처진 친구의 모습은 사라지고 고향에서 다시 기운을 찾았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과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친구는 산마리노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야 했다. 우리와 함께하는 몇 시간을 위해 왕복 8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준 친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앞으로 다시 만날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로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마음 깊이 응원하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기대했던 볼로네제와 라자냐도 실컷 먹으며 볼로냐의 풍미를 제대로 즐겼지만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내 마음에 더 진한 감동을 남겼다.
베니스 거리에 있는 신발 가게를 지나다 엄마가 발걸음을 멈췄다. 쇼윈도 맨 앞, 작은 아기 신발이 엄마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손바닥 안에 온전히 들어올 정도로 자그마한 신발에 시선을 고정한 엄마의 눈빛에는 사랑이 그득히 묻어났다. 엄마는 수줍게 씩 웃으며 나와 동생을 보더니 말했다.
"엄마가 이거 사주고 싶은데, 사주면 안 될까?"
나와 동생은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각자 반응은 조금 달랐다. 동생은 "아기 계획이 아직 없는데… 벌써?”라고 물었고, 나는 “좋아!!!”라고 했다. 사실 동생 부부도 나와 남편도 아기 계획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 발그스름해진 볼이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손주는 언제 안겨줄 거니?’하는 마음이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더라도 그 순간, 사주고 싶은 게 전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신발에 신발끈과 박음질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내 마음도 사로잡았다. 당황하던 동생은 부끄러운 듯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답을 확인 한 엄마는 아이처럼 싱글벙글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뭐 이런 걸 벌써 사느냐'라고 할 것 같았던 아빠는 예상과 달리 조용히 엄마를 뒤따라 들어갔다. 미래에 손주가 신게 될 신발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서도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선 아빠와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 울컥했다.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하는 나이가 되신 걸 깨달아서였을까.
뭉클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직원에게 신발 사이즈가 몇인지 물었다. 사이즈는 없지만 아이가 첫걸음마를 떼고 밖에 나갈 때 신는 거라고 했다. 미래에 만날 아기가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을 때 함께할 신발이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또 아이가 말을 배우고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즈음엔 이 신발에 대한 스토리를 들려줄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들떴다.
엄마, 아빠의 특별한 선물 덕에 우리 두 부부 모두 묘하면서 신비로운 기분을 느꼈다. 베니스에서 우리는 미래의 아기와 만나는 첫 번째 징검다리를 선물 받았다.
볼로냐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음식도, 베니스에서 즐긴 곤돌라 투어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값진 선물은 따로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서로를 애정하는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딸들의 딸, 아들이 보고 싶은 엄마와 아빠의 소망.
볼로냐와 베니스에서 나는 우정과 소망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했다. 처음 가본 볼로냐에서 만난 친구와의 옛 추억은 낯선 도시를 포근하게 해 주었고 나는 다시 한번 과거의 인연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여러 번 가본 베니스에서는 앞으로 내게 올 인연을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