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이상을 찾아서
어느덧 그랜드 투어를 떠난 지 한 달이 되었다. 28일간 우리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여행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나라인 이탈리아로 떠났다. 대학교 시절 몇 번 가본 적 있는 이탈리아는 어떻게 변했을까? 앞으로 한 달을 보내게 될 이탈리아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그 기대는 삐그덕하면서 꺾였다 다시 롤러코스터 타듯 오를 수 있었다. 환상에서 현실로, 실망스러운 현실에서 다시 이상을 찾게 된 여행기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작은 도시 티라노까지 베르니나 특급열차를 타고 갔다. 베르니나 특급열차의 ‘빙하에서 야자수로(From glaciers to palms)’라는 슬로건은 스키복을 입고 싶게 하는 스위스 알프스 설산에서 비키니를 입게 만드는 열대나무 풍경까지의 여정을 정확히 그리는 문구다. 일반 열차와 달리 천장까지 이어진 통유리창을 통해 숨이 멎는 전경을 IMAX로 즐길 수 있었다. 카메라로도 담아야겠고, 맨 눈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아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눈은 창 밖에 고정해 휘리릭 지나는 경치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버킷리스트였던 베르니나 특급열차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에서 최고로 끝내주는 기차 여행이 되었다.
환상 같은 여정이 끝나고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티라노에 내렸다. 열차는 출발 시간이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연은 일도 아니라는 듯 동요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가만히 기다렸다. 몇 분이 더 지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스피커 음질이 좋지 않아 잘 안 들렸는지 처음엔 두리번두리번하던 사람들이 짐을 챙겨 계단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이모는 옆 사람과 확인을 하더니 우리에게 알렸다. 플랫폼이 바뀌었다며 서둘러 가자고. 이모의 말에 내려두었던 배낭을 다시 메고 사람들을 따라갔다.
새로운 승강장에 도착해 기다리는데 다시 한번 방송이 흘러나오는 순간 모두의 눈동자에서 황당함이 이글거렸다. 또 바뀐 것인지 이곳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라는 거였다. 수십 명이 또 한 번 계단을 오르내리는 대이동을 해야 했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살았었던 이모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 ‘웰컴 투 이탈리아~’를 외쳤다. 지연은 물론이고 두 번의 승강장 변경까지 방금 전 베르니나 특급열차와 사뭇 다른 경험의 시작이었다.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이런 걸까.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 기차는 밀라노 센트럴역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 만큼 눈이 휘둥그레지게 화려하고 웅장한 역이다. 어깨 위엔 무거운 짐이 버티고 있어 관광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신속하게 빠져나왔다. 묵게 된 숙소가 역에서 5분 거리에 있어 걸어갔다. 짐을 풀고 바로 나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역에서 숙소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화려한 역 내부와 다르게 거리는 뭔가 으스스했다. 레스토랑 가는 길에는 고층 빌딩 앞에 노숙하는 사람들이 열댓 명 있었고 여기저기 깨진 유리창도 보였다. 서울역과 다를 바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여긴 반달리즘의 현장과 흡사했다. 내가 기억하는 밀라노와 무척 다른 분위기였다. 나와 같이 느낀 건 동생동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우리가 여행 왔을 때는 여러 관광지와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지내서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 꺼림칙한 감정이 가시지는 않았다.
밤에 남편이 해준 이야기는 그 감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센트럴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에 2-3명의 남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줄지어 가는 우리를 벼르듯이 바라보는 눈빛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을 본 남편은 맨 뒤에서 우리 가방을 살피며 걸었다고 했다. 틈이 보이지 않았던 건지 타이밍이 마땅치 않았던 건지 우리는 그들의 레이더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를 놓치고는 아쉬웠는지 그중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한 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내팽개쳤다고 한다.
하마터면 이탈리아 여행 첫날,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식사가 끝나고도 숙소에 별 일 없이 무사히 도착했지만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 첫날밤이었다.
다음 날부터 둘러본 구시가지는 내가 추억하는 모습과 일치했다. 무려 60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걸려 완공한 두오모 성당의 자태를 다시 한번 넋을 놓고 보았다. 2015년에 방문했을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구석구석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인파 속에서 관광지의 기운찬 분위기를 즐기다 한적한 거리를 유유히 거닐기도 했다. 유럽에서 흔한 우둘투둘 자갈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도 정겨웠다. 신사 가로수길처럼 거리에 모델 같은 언니들이 많아 멋진 그녀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1일 1 젤라토’를 약속한 우리는 도시 곳곳에 널린 젤라토샵을 고르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전 세계 사람을 매혹시키는 밀라노의 매력은 전 날의 기분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센트럴역에서 느꼈던 위협은 슬슬 잊고 오랜 역사와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를 마음껏 누렸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우리는 동생의 대학 동창인 현지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한적한 골목에 있는 친구의 단골집에서 만났다. 거리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식당 같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100석은 되는 넓은 실내 테라스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퇴근 후 함께 온 친구들, 데이트 온 커플들, 그리고 정중앙 긴 테이블에는 동아리 회식 온 것 같은 대학생 20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에겐 일상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축제 분위기를 느꼈다. 동생 친구가 레스토랑 주인과 친근하게 담소를 나누며 메뉴 추천을 부탁했다. 주인장은 이런저런 추천을 하더니 그냥 베스트 메뉴로 알아서 준비해 주겠다고 하고 주방으로 당차게 걸어갔다.
맨 처음 스타터로 프로슈토 크루도(생햄)가 나왔다. 나는 첫 입에 프로슈토 크루도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 정도로 풍미가 깊고 도톰하게 썰어 쫄깃한 프로슈토는 처음이었다. 메인 디쉬도 디저트도 필요 없겠다 싶을 정도로 손이 자꾸자꾸 가는 게 중독성이 대단했다. 친구도 프로슈토 크루도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며 이탈리아인 특유의 진한 눈빛과 제스처로 강조하듯 표현했다. 이 걸 못 먹어보고 30여 년을 살았다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고 하면 얼마나 맛있었는지 전달이 될까… 헤어 나오지 못할 뻔했던 프로슈토는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쉬움이 가득하던 찰나에 바삭한 바게트 슬라이스에 상큼한 토마토를 올린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와 페스토, 토마토, 봉골레 파스타가 쉴 새 없이 나왔다. 거대한 프로슈토 한 접시부터 탄수화물 섭취까지 이미 충분했지만 이어서 메인 디쉬라며 스테이크가 나왔다. 족히 2kg는 될 것 같은 사이즈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는 스타터를 먹은 뒤 첫 번째 코스로 파스타를 먹고 두 번째 코스인 메인을 먹는다고 한다. 끝으로 디저트와 에스프레소도 물론이고. 그것도 모르고 페이스와 양 조절 둘 다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야들야들거리고 육즙이 보일 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자태가 매혹적이었다. 큼직하게 썰어 한 입에 넣으면 육미가 온 입안에 퍼졌다. 곧이어 스테이크는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피날레로 장식한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이탈리아어로 표현하자면 ‘맘마미아~’였다.
로컬 레스토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유쾌한 대화 소리, 자신 있게 메뉴 하나하나 선보인 주인장의 모습,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던 음식까지 모든 게 좋았다. 오랜 친구를 만나 수년간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동생과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분위기에 한몫했다. 무엇보다 인생 프로슈토를 만나 감격스러웠고 현지 친구 덕에 알게 된 로컬 맛집이라 더욱더 행복했다.
동생 친구에게 센트럴 역에 대해 물었더니 그곳은 현지인들도 기피하는 곳이라고 했다. 전보다 해외이민자들도 많아졌고 여러모로 불안정한 시국이라 더 위험해졌다고 알려줬다. 밤에는 절대 혼자서 역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며 그곳에서 지내는 우리를 걱정했다. 이탈리아는 원래부터 소매치기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조심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경험이었다. 밀라노에 도착한 날 밤 관찰한 도시의 모습은 꽤나 험악하고 무서웠다. 앞으로의 한 달이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사람이 감수해야 하는 고충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부정적인 점만 보고 경계하면서 돌아다녔다면 뭉친 어깨에 통증을 호소했을 것이다. 걱정이 여행의 재미를 해치게 두는 건 싫었다. 실망스러운 현실에서 다시 이상을 찾기로 했다. 실제로 구시가지의 고풍스러운 거리, 달콤한 피스타치오 젤라토, 나의 마음을 앗아간 프로슈토 크루도 등 내가 그리던 여행을 다시 찾게 해준 요소들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