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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May 21. 2024

그랜드 투어 한 달 차 회고록

인터뷰로 기록한 우리의 첫 한 달

여행을 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버릴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흘러가버리면 사라지는 감정과 생각을 담기 위해 인터뷰 영상을 촬영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한 주 살이를 했던 아르슬란밥, 오스트리아의 작은 호수 마을 그문덴, 그리고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베르니나 특급열차에서 총 세 편의 인터뷰. 그랜드 투어 첫 한 달간의 기록을 보며 중간 점검을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인터뷰, 여행 11일 차, 아르슬란밥에서


한국을 떠난 지 11일이 된 날 아침 동생, 친구와 셋이 숲길 산책을 나갔다. 3개월 그랜드 투어 중 10프로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쉬웠던 마음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벼운 수다로 인터뷰 질문을 추려 촬영하기로 했다.


마루 소파에 한 명씩 앉히고 아침 햇살이 닿은 뽀얀 얼굴들을 렌즈에 담았다. ‘10일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과 ‘가장 재밌었던 순간’을 회상하는 첫 촬영을 진행했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모두 성심성의껏 답하며 진지하게 임했다.


아르슬란밥에서 함께한 한 승마 체험, 홈스테이 아이들과 했던 배드민턴 토너먼트, 자연에서 즐긴 맨발 걷기 등 여러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한 공통 답변도 있었다. 모두 함께 즐겼던 추억들도 있었고 각자가 꼽은 다른 특별한 기억들도 있었다.


친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키르기스스탄 톡토굴에서의 해프닝이었다고 얘기했다. 시골 민박집 거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늦은 저녁 친구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었고 아빠는 옆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거실의 고요를 깬 건 천둥소리였다. 하늘에서 내리친 천둥과 맞먹는 아빠의 방귀소리. 아빠는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는 대신 곁눈으로 우리 표정을 살피더니 민망한지 피식피식 웃었다. 나는 소리 없이 강한 아빠표 방귀가 태어나 처음으로 데시벨이 높은 것에 놀랐다. 소리에 일단 놀라고 두 번째로는 친구 앞에서 시원하게 방귀를 튼 아빠가 너무 웃겼다. 친구는 귀를 의심하며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라더니 웃음이 빵 터졌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엄마, 아빠가 친구를 양딸이라고 부르며 이뻐하고 친자식처럼 아꼈다. 친구가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올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였다. 그래도 생리현상까지 오픈하지는 않았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 나와버린 것이다. 종일 함께하는 동안 이처럼 민망한 순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친구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고 재치 있게 말하며 아빠의 귀여운 실수를 유쾌한 기억으로 만들었다. 친구는 양딸에서 친딸이 된 이날이 가장 재밌었던 순간이자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고 했다.


이모의 답변은 예리하고 세세한 관찰에서 나온 의외의 순간들을 회상하게 했다. 여행 시작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나는 감기몸살에 설사 기운까지 있어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그때 아픈 나를 어루만지며 어떤 음식을 해줘야 내가 나을지 고민하는 엄마에 대해 얘기했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먹은 내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육아 경험이 없는 이모는 모성애를 체험해 보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서른이 넘은 동생은 아주 왜소한 편이고 역시 막내는 영원한 막내라 엄마 앞에서 아직도 아이 같다. 어느 날 아침 동생은 엄마 무릎에 앉아 양치를 했다. 그때를 떠올린 이모는 우리가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예전처럼 엄마 앞에서는 아이 같아질 수 있는 게 여행의 묘미구나 싶었다고 했다.


나도 여행하면서 자주 느꼈던 부분이라 공감이 됐다. 나는 청소년 때부터 외국에 떨어져 지내서 인생을 통틀어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따로 살기 시작한 뒤 엄마 아빠와의 만남은 이제 약속을 하고 뵈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그리고 매일 붙어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20년 세월이 사라진 듯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졌다. 우리끼리 유치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괜히 아빠한테 가서 이르거나 엄마한테 안기거나 하는 철부지가 되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다시 애가 된 딸들 모습이 그저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우리는 나이는 잊고 서로만 기억하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아르슬란밥 홈스테이, 햇살 받으며 첫 인터뷰 :)




두 번째 인터뷰, 여행 18일 차, 오스트리아에서


일주일이 지나고 오스트리아 그문덴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다. 3주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물었다. 거의 모두가 오쉬에서 비엔나로 이동했던 날을 꼽았다 ('4화. 유럽이 고진감래를 아네?' 참고). 비행기 연착으로 시작해 기내에서 6시간 동안 우리를 괴롭게 한 누군가의 지독한 발냄새 그리고 항공사에서 제공한 음식을 받기 위한 시간 낭비까지. 총 20시간이 걸려 대륙 이동을 했던 날.


이모도 이 날을 제일 지치고 질린 날이라 했다. 하지만 본래 여행이란 게 힘든 때가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고단한 시간도 있지만 인터뷰를 찍는 이날처럼 “그래도 이렇게 맑은 날이 있잖아” 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모는 뜨겁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다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 나 살아 있구나, 여기에. 이런 행복한 순간이 있어.”


살아 있음에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을 말하며 감사함을 그윽하게 느끼는 모습을 보며 진한 감동을 느꼈다. 이모의 진심은 할머니의 시골 밥상처럼 애정과 정성이 온 집안을 채우듯 그득했다. 청국장처럼 곱씹을수록 고소하고 구수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다른 사람의 인터뷰 내용을 다 잊게 할 만큼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진한 여운을 남기고 유유히 걸어가는 이모의 뒷모습




세 번째 인터뷰, 여행 28일 차, 스위스에서


마지막 인터뷰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기차 여행인 베르니나 특급열차 안에서 초고화질로도 담기지 않는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 한 편 같았던 날. 어느덧 여행을 한지 한 달이 되었고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길 위에서 남긴 기록이다. 이날의 주요 질문은 ‘그랜드 투어의 정의’였다.


생모리츠에서 출발한 베르니나 특급열차


엄마는 이번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는 타이틀로 멋지게 포장해 우리에게 선물했다.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다양한 삶을 배우길 바라는 대의를 품은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미 멋진 뜻을 가진 그랜드 투어지만 나만의 의미를 갖고 싶었다. 스스로 뜻매김을 한다면 정말 자기 것이 될 거라 믿었다. 그래서 역사적, 사전적 의미를 떠나 모두에게 각자의 정의를 물었다.


동생은 특별하고 근사한 문장도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행의 근본적인 매력은 가족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창한 문장보다 단순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하는 소중한 여행’이라고 정의 내렸다. 친구는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여행이자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를 배우는 여정이라고 했다.


진짜, 카메라에 담기지가 않는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마지막 인터뷰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에겐 매일 보는 풍경이구나를 느꼈다. 나도 내가 사는 곳에 적응을 하면 똑같다. 매일 지나는 길을 보며 여행하듯 설레거나 이국적이라고 신기해하지 않는다.


스위스 알프스보다 작고 낮지만 정겹고 귀여운 멋이 있는 우리 동네 뒷산,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찬란한 서울 야경, 모두 눈에 익어버려 아무렇지 않게 된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잊고 있던 우리 동네의 멋과 매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보는 풍경에 감흥을 잃고 살았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만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을 감사하지 못한다면 나는 시체와 다름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랜드 투어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이국적인 곳에서 사소하고 평범한 의미를 찾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감격하고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을 배우는 여행이라고. 여행이 끝나고도 이 마음을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면 내 삶이 훨씬 더 풍요롭겠다 싶었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뿐만 아니라 사는 매일이 그랜드 투어이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세 번의 인터뷰를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가 되었다.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며 얻게 된 깨달음이 있어 더 좋았다. 우리만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서 뱉어낸 진솔한 마음을 언제라도 다시 재생해서 볼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다. 내가 그랜드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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