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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May 14. 2024

관광지에 사는 비애

여행자로서의 고민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와의 진하고 생생했던 만남 후, 할슈타트로 떠났다. 기차역에 도착해 호수 선착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유일한 출구로 향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윤슬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빛나는 호수가 우리를 맞이했다. 눈 부시는 수면 위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에 올라탔다. 호수 너머 할슈타트 마을은 요정들이 사는 환상의 세계 같아 보였다. 동화 속 배경처럼 신비로운 마을에 다가갈수록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소리가 증폭되었다.


건너편 선착장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두고 바로 거리로 나왔다. 뻐꾸기시계처럼 생긴 집들이 줄을 잇는 호숫가를 산책했다. 호수는 시계집 안에 사는 뻐꾸기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듯 잠잠하게 미동 없이 서있었다. 도화지처럼 평평한 할슈타트 호수에 굴곡진 산맥과 푸르른 하늘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비엔나에서 본 합스부르크 왕궁은 웅장하게 화려함을 뽐냈다면 할슈타트는 수줍은 듯 묵묵하게 매력을 뿜어내는 듯했다. 그래서 이곳이 더 다정하게 느껴졌다.




환영받지만은 못하는 관광객


둘러보다 보니 주민들이 관광객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망 좋은 장소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도, 가정집 앞에 쓰여있는 문구에도 그들의 사생활과 고요한 삶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슬픔이 느껴졌다. 심지어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에 대한 분노를 스스럼없이 표현한 문구도 보였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미안해지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이 아름다운 곳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냐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동생, 친구와 나는 인파가 심한 메인 거리를 벗어나 골목골목을 거닐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카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하던 모두의 볼륨이 한순간에 ‘0’으로 뚝 떨어졌고 시선은 우리를 향했다. 달가워하는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실수로 발을 내딘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커피 한 잔 하고 싶어 찾은 곳이지만 식사만 가능하다는 안내를 듣고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커피 주문이 가능했더라도 도망쳐 나왔을 것이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호수 앞 벤치에 앉았다. 방금 전 골목 식당에서 겪은 순간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불청객이 된듯한 기분, 환영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대체 왜 그 정도로 불편한 내색을 했을지 궁금했다. 우린 열심히 추론해 봤다. 그들이 우리 같은 여행객을 피해 골목 깊이 아지트를 만든 것인데 우리가 발견하고 나타나서 그런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체로 싫은 티를 낸 그들의 행동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갔다. 나도 싫을 땐 숨길 틈 없이 티가 나는 순간들이 많으니까.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으로 구석으로 피한 것인데 그곳조차 찾아온다면 달가울 수 없겠지. 그들도 너무 놀라서, 오랜 시간 빼앗겨 온 자신의 삶이 억울해서 어쩔 수 없이 표가 나버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관광지에 사는 비애


나 또한 한국에서 유명한 관광지에 살았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내가 살던 곳은 한옥마을 골목 안에 있었다. 그래서 행인이 가장 많은 거리에 사는 이웃만큼은 아니었지만 편하게 쉬고 지내는 나의 동네, 개인 공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주말에 후줄근하게 입고 집 앞 슈퍼마켓에 갈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고 나들이 온 커플들 사이를 지나며 왠지 내가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바로 옆집 게스트 하우스에서 새벽 3시까지 떠들던 외국인들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사진 찍는 사람들, 대문이 열려 있으면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골목에 있어도 그랬으니 인파가 몰리는 명소는 얼마나 더 심한지 우리 동네에도 ‘주민을 위한 배려’를 간곡히 부탁하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있다.


그래도 나는 그 동네에 사는 게 싫지 않았다. 사람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니까. 나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초저녁이면 주민들만 남게 되어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이 전혀 없는 고요함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몇 년 전부터는 예전보다 늦게까지 머무르는 방문자들이 많아서 그 시간이 줄기는 했었지만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관광지에 살았어도 밤이면 주민으로서 동네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할슈타트에는 숙박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거기에 연간 관광객 수치를 보면 우리 동네와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가 800명 정도인 할슈타트에 매년 3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고 한다. 천만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2023년에 110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비율로 보면 할슈타트는 3,750:1이고 서울은 1.1:1이다. 국내 관광객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할슈타트처럼 주민 인구보다 4000배에 가까운 방문자를 매년 만나지는 않는다.




여행자로서의 고민


할슈타트는 스노우볼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워 스노우볼과 같은 운명을 가진 걸지도 모른다. 눈이 산들거리며 내리게 하려고 위아래로 좌우로 흔들듯이 우리도 그들의 동네를 어지럽히고 있는 게 아닐까? 이쁘다는 이유로 유리 속 세상을 언제든지 원할 때 찾아가고 우리 마음대로 들여다보고…


과잉 관광에서 비롯된 폐허를 보면 안타깝지만 그곳이 아름답다면 갈 수밖에 없는, 가고 싶은 이기심도 있다. 나도 이방인이지만 다른 여행객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하려 골목골목을 찾아다닌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주민들이 갈 곳이 좁아질 수밖에.


그렇다고 사람들의 발길을 끊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거주자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곪은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이 닫히고 상할수록 방문했을 때의 경험도 상처받을 수 있다. 내가 골목 식당에서 겪었던 순간이 잦아지고 흔해질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은 악순환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다. 비단 할슈타트만의 고충이 아니다. 내가 살았던 동네도 그렇고 지구 곳곳에 있는 수많은 관광지 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나도 모르게 이쁘다는 이유로 개인집을 촬영하는 순간, 누군가 낮잠을 자고 있을지 모르는 어느 오후, 길을 걸으며 깔깔 웃음이 터져버리는 순간, 누군가 치우겠지 하며 쓰레기를 투척하는 순간. 이런 순간들이 모여 주민들의 불편한 마음이 불쾌함으로 바뀌고 나아가 적대심까지 생기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는 게 아닐까.


할슈타트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들의 아우성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생겼다. 못 오게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마음의 문이 꾹 닫혀버린다면 할슈타트는 지금의 다정하고 따뜻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봐도 봐도 멋진 할슈타트를 우리만 보고 말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무시할 수 없다.


나도 배려심이 결여한 행동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노력을 선택하고 싶다. 낯선 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때까지 거주민들이 느끼는 비애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들에게 미안해하는 대신 환영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일. 사려 깊은 방문객이 되기 위한 고민들이 모이면 근사한 곳에서 서로를 미워하는 초라한 마음이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할슈타트 여행은 나에게 여행자로서의 태도와 이념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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