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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May 11. 2024

나도 몰랐던 버킷리스트를 체크하게 되었다

4D로 모차르트를 만나는 경험

오스트리아의 아르슬란밥



비엔나는 두 번째였지만 첫 경험 같았던 새로움을 느꼈고 이번에 향한 도시는 진짜 처음 가는 잘츠부르크다. 여기서 어떤 새로운 감명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에 부풀어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기차역에 내려 구시가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배낭을 메고 창밖 풍경을 보았다. 숙소가 있는 올드 타운에 들어서니 잘자흐 강이 보였다. 가을 오후 세 시의 해가 “나 이제 곧 들어갈 거예요~”하며 따스하게 강가 잔디를 덮고 있었다. 은은한 햇살 아래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보였고, 자전거 타고 매끄럽게 강둑을 지나는 사람도 보였다. '첫사랑'의 애틋하고 청순한 감정을 표현해 낸 영화 '어바웃 타임' 영상미가 떠올랐다. 구시가지 곳곳은 어바웃 타임 잘츠부르크 편을 찍고 있는 듯 로맨틱해 보였다.


숙소는 올드 타운 절벽 위 묀히산에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엄마와 이모는 낭만을 위해 다른 선택을 했다. 바로 잘츠부르크 현대 미술관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절벽을 오르는 것이었다. 솔직히 어깨에 짊어진 배낭이 11kg가 넘어 택시 트렁크에 얼른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도 낭만이라니! 그 선택을 존중해 군말 없이 따라갔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보이는 60m 절벽 아래 박물관 입구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이용을 위해 티켓을 끊어야 했다. 왕복 가격이 무려 4.2유로! 한화로 6,000원이 넘는다. 아파트 층수로 따지면 20층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잘츠부르크 롯데 타워에 가는 값이라 치면 합리적인 것도 같다. 엘리베이터 한 대 안에 우리 여덟 명과 각자 가진 커다란 배낭을 전부 실었다.


절벽 위 묀히산으로 가는 길


도착해서 박물관을 나오자마자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아래에서 봤을 때는 클로즈업 장면처럼 디테일이 좋았고 절벽 위에서는 항공샷 같이 탁 트인 파노라마를 볼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첫인상이 좀 더 입체적이게 다가왔다. 숙소까지 500m를 더 걸어가야 했다. 숲길이라 공기는 상쾌했고 한참 진행 중인 노을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녹색 길 끝에 숙소가 나타났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정원과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성이 있었다. 호화스럽지 않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화려한 매력이 묘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16세기 대주교였던 사람부터 로마 가톨릭 신부였던 빈젠즈 팔로티까지 여러 주인을 거쳐 14세기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수도원이다. 게스트 하우스로도 운영되는 이 수도원은 팔로티의 유언에 따라 손님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미션이라고 한다. 스토리를 알게 되니 이해가 갔다. 7세기를 지나 온 역사의 웅장함과 하느님을 모시는 주인의 겸손함이 건물에서도 풍기는 것이었구나.


숲 속 안식처, 수도원


침실은 소박하고 단정했다. 창 밖 초원에는 소 몇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워낭소리가 정겨웠다. 키르기스스탄 아르슬란밥의 추억이 떠올랐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아래 동네와 다르게 고요한 숲 속 수도원은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분명했다. 이곳에서 느끼게 되는 평화와 느긋함이 팔로티가 말한 무한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를 만나기 위한 준비



클래식이라곤 옛날 하이마트 주제가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 거기가 어디오? 하. 이. 마. 트.” 밖에 모르는 내가 잘츠부르크에 그랜드 투어를 오게 되었다. 그래서 모차르트 생가에 방문해 알게 된 사실이 아주 많다. 그의 아버지가 궁중 악사였다는 사실, 아버지 덕에 어린 나이에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 첫 작곡을 한 게 겨우 4-5살 때였다는 것과 35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3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800여 곡을 작곡했다는 놀라운 역사.


모차르트 생가 투어에 이어 저녁 스케줄은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였다. 클래식 공연에서 입을만한 근사한 드레스를 사기 위해 쇼핑을 갔다. 사실 비엔나에서부터 이 날을 위해 쇼핑을 갔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당일 날 서둘러 사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디너에 입고 갈 옷을 살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정원에 모였다. 동생은 장밋빛 시스루 드레스를, 친구는 골드빛 실크 드레스를, 엄마는 새빨간 드레스를, 그리고 나는 얼룩말 패턴의 드레스를 입고 초록 잔디 위를 알록달록하게 만들었다. 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옷을 살 때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나’ 싶어 하던 남자들은 우리를 보고 놀라워했다. 우리가 조금 과하게 입은 건가…? 살짝 주춤했지만 매일 편한 복장으로 여행하다가 오랜만에 단장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를 만나러 떠나는 시간 여행



올드 타운 어느 건물 깊숙이 위치한 디너 장소에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곳에 속해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이 지어진 해, ‘803’이 써져 있는 입구에서부터 타임머신을 탄 듯 역사 속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모차르트도 가족들과 식사하러 온 적이 있다 하니 마치 그를 만나러 가는 것만 같았다.


연세 지긋한 매니저가 우리를 보더니 감탄하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화사하게 차려입고 온 우리에게 눈빛으로 감사와 칭찬을 하는 듯했다. ‘그래, 전혀 과한 게 아니었어’하며 안도하고 뿌듯했다. 콘서트 홀을 들어가자 높은 층고, 아치형 창문과 바로크 스타일의 천장 프레스코화에 압도당했다. 1903년에 지어진 이 홀은 바로크 홀이라는 이름에 맞게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다. 천장 정중앙의 그림까지 홀 자체가 미술관에 있을 법한 역사와 예술의 합작 같았다.


반듯하게 다려진 새하얀 테이블보로 덮인 원형 테이블이 홀을 가득 채웠고 아치형 창문 앞에는 네 개의 의자가 놓인 작은 무대가 있었다.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 위 브로셔를 펼쳐 보니 오른쪽에는 식사 메뉴가, 왼쪽에는 공연 순서가 적혀있었다. 코스로 구성된 메뉴와 식사 사이를 음악으로 채우는 디너이자 모차르트 콘서트. 총 3부작으로 나누어진 공연은 각 세션마다 6-7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St. Peter Stiftskulinarium의 바로크 홀



첫 번째 코스로 수프가 나오고 음식을 다 먹었을 즈음 공연단이 입장했다. (바로크 후대라고도 불리는) 로코코 스타일의 전통 옷을 입은 연주자들을 보니 곧 모차르트가 지휘를 하러 나올 것만 같았다.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를 들고 나온 다섯 연주자들의 미니 오케스트라로 디너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경쾌한 연주에 이어 여자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며 무대 앞에 나타났다. 곧이어 나온 남자 주인공의 테너톤이 선율을 완성하며 듀엣 곡, "Giovinette che fatte all'amore”로 첫 무대가 채워졌다. 연이어 계속되는 음악에 혼이 빠진 듯 듣다 보니 1부의 막이 내렸다.


솔직히 식사로 나온 음식들 중 어느 한 코스도 인상에 남거나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를 재현한 역사적인 레시피라고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나의 입맛까지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공연 중간에 나오는 음식들은 다음 2부를, 3부를 더 기다리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식사 시간 동안 퇴장했던 공연팀이 다시 무대에 서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로코코 의상을 입은 모차르트 공연팀


로코코 의상부터도 인상적이었지만 두 주인공의 연기 또한 예술이었다. 우리 테이블에서 무대까지는 4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배우들이 멀리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 거리조차 좁히기 위해 테이블 사이사이를 다니는 모습에 감사했다. 그들이 우리 바로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그만큼 더 생생해진 소리와 또렷해진 표정 연기를 보는 맛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연기를 보면서 나도 함께 극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느꼈다.


마이크도 없이 오로지 목소리로 바로크 홀의 높은 층고까지 전해지는 울림에 전율이 흘렀다. 음역대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에서부터 발 끝까지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상쾌함이랄까. 필요한지도 몰랐던 어떤 치유를 받은 느낌이랄까.


그들은 홀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삼을 뿐만 아니라 넋 놓고 보던 관객들 중 한 명을 함께 무대에 서게 한다거나 자연스레 극 중의 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3부에서는 핸드폰으로 촬영하던 제부가 당첨되었다. 제부의 핸드폰을 익살스럽게 낚아채더니 셀카를 찍고 무대 밖으로 가지고 가는 시늉을 하며 모두의 박장대소를 자아냈다. 이 퍼포먼스를 “Ein Männchen oder Weibchen”를 완벽하게 부르며 소화해 낸 것도 경이로웠다.


모든 것이 최고였다, 퍼포먼스도 노래도


250년이 지난 지금 고전으로 남은 모차르트의 곡들이 살아 숨 쉬는 디너였다. 기대 이하였던 음식도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싶었다. 음악이라는 반찬이 세계적인 메인디쉬급인 모차르트의 명곡들이다 보니 그 앞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겠지. 천재는 천재구나 싶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모차르트의 수백 곡 중 디너에서 들었던 18곡. 그의 영예로운 유산을 그의 고향에서 즐기게 되어 감사했다.


모차르트 생가 박물관은 2D 영화관에서 그의 삶을 관람하는 것이었다면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는 그의 시대를 살아보는 4D 체험이었다. 이 날의 디너는 내가 꿈꿔 본 적은 없지만 꼭 해봤어야 할 일생의 경험이었다. 적은 적 없는 버킷 리스트 하나를 체크한 기분. 앞으로 잘츠부르크에 가는 누군가가 나에게 일정 추천을 묻는다면 누구에게라도 꼭 추천할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남다른 여행을 즐긴 도시가 되었다. 수도원에서의 숙박이라는 특별한 경험과, 모차르트 음악을 생생하게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선물 받았다. 우리에게 이런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엄마와 이모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애썼을까. 그랜드 투어라는 비장한 타이틀을 달고 떠나온 여행이기에 이름에 걸맞은 일정을 위한 두 분의 노력. 나의 버킷 리스트 범위를 넓혀준 엄마, 이모, 그리고 아빠에게도 감사함을 그득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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