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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May 04. 2024

유럽이 고진감래를 아네?

제대로 치른 신고식

굿바이, 키르기스스탄


자연의 포근함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순수함을 제대로 느낀 키르기스스탄과 이별할 시간이 되었다. 그랜드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는 유럽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의 학창 시절을 보낸 유럽에서의 추억 여행 그리고 남편과 제부의 첫 유럽 방문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르슬란밥에서 5박을 하면서 하루빨리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미래도 과거도 생각할 틈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 해 놀았고 즐겼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 별똥별이 이렇게 흔했나 싶었던 아르슬란밥. 몸도 마음도 치유해 준 아르슬란밥. 이곳을 떠나며 정든 홈스테이 가족들과 다 같이 눈물바다로 작별을 하고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 홈스테이 아이들과 꼭 붙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3시, 이스탄불을 경유해 비엔나로 가는 10시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떠나서 아쉽고 떠나기에 만날 새 목적지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키르기스스탄 오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여덟 명의 민족 대이동에 제어가 걸렸다. 이스탄불까지의 비행기가 3시간 연착된 것이다. 더 일찍 알았으면 호텔에서 3시간은 더 잘 수 있었는데 싶었지만 다 깬 잠을 청할 곳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스탄불에서 비엔나로 떠나는 비행기 시간에 맞게 도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모는 재빠르게 다음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수습에 나섰고 우리 모두 근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달랐다. 이런 일조차도 경험이고 추억이 될 거라고 말했다. 엄마의 가뿐한 마음가짐은 우리의 걱정을 순식간에 녹여 주었다. 평정심과 긍정적인 생각 앞에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스트레스는 없구나 또 한 번 느꼈다.




이스탄불까지의 극한 비행


3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나서야 보딩을 마치고 이륙할 수 있었다. 저가 항공을 이용해서 자리가 비좁았지만 양 옆에 가족들이 있으니 심리적으로는 편했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코 끝에 박힌 냄새에 적잖이 당황했다. 족히 이틀을 산행하고도 씻지 않은 듯한 발 냄새였다. 금방 내릴 수 있는 지하철도 버스도 아니고 왜 하필 6시간 비행에 이런 고통이 함께 하게 된 것일까! 글을 쓰면서도 그 지독한 고린내가 느껴지는 것 같을 정도로 강렬했던 악취. 우리는 살기 위해 박하사탕처럼 화한 향이 나는 호랑이 연고를 코 밑에 바르고 약발이 떨어지면 또 바르면서 고된 비행을 견뎠다.


냄새 지옥으로 향하는 길 (이 땐 몰랐지..)


비행기가 이륙하고 재빠르게 짐을 챙겨 야외로 나와 감옥에서 석방된 것 같은 끝내주는 자유의 맛, 바깥공기의 상쾌함을 만끽했다. 이모 덕에 다음 비행기 시간 조율이 되어 이스탄불 공항에서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연착에 대한 사죄로 제공받은 무료 식사 쿠폰을 들고 푸드코트로 향했다. 쿠폰에 적혀 있는 5군데의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골랐다. 하지만 단 한 곳에서도 쿠폰 사용이 불가했다. 바코드가 먹히지 않는다는 식당 직원들의 불친절한 대응은 우리를 더 지치게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거대한 공항을 가로질러 항공사 사무실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 기다리다 보니 30분이 지났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같이 있던 아빠는 지나치게 느린 일처리에 화가 단단히 났다. 푸드코트에 앉아 기다리던 나머지 멤버들도 기약 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까짓 식사 한 끼 그냥 사 먹으면 되는 건데 이젠 오기가 생겨 포기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다.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한 시간 가까운 인내 끝에 직원이 우리와 동행해 직접 음식 주문을 해주었다. 기내식으로 나온 형편없는 모닝빵 샌드위치 하나 먹은 게 전부였던 우리의 첫 끼. 겨우 이 케밥 세트를 위해 날린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이 또한 추억이 되겠네 하며 꾸역꾸역 허기를 달랬다.




유럽에 디딘 첫 발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이스탄불까지의 여정 후 비엔나로 가는 길은 마음이 훨씬 가뿐했다. 목적지가 다가오니 지친 몸도 가볍게 하는 설렘을 느꼈다. 2시간 비행 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땅을 밟는 남편과 제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두 남자의 첫 유럽 방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비엔나를 도착하며 본 희망의 빛


베트남 국적인 남편은 유럽 쉥겐 비자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 달랑 여권 하나만 들고 갈 수 있는 우리와 달리 베트남 사람은 비자 신청을 해야 하고 승인받기가 쉽지 않다. 준비해야 할 서류도 열몇 가지였는데 빠른 시일 내에 신청할 수 있게끔 도와준 엄마와 이모 덕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거주 중인 데다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비자 승인에서 가장 중요한 신분에 대한 보장이 되어 2주 만에 비자 스탬프를 받는 행운이 있었다.


베트남인에게는 하늘에 별따기와 같은 쉥겐 비자를 갖고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남편과 우리 여행에 대한 세세한 브리핑과 예상 질문을 되짚어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남편은 떨리는 마음으로 심사 데스크에 섰다. 프리 패스와 다름없는 한국인인 우리는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입국 도장을 찍어준 반면 남편에게는 예상대로 여행 일정이나 출국 계획에 대한 상세한 심문 후 통과 시켜줬다. 긴장이 풀린 채 나오는 남편은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남편 여권에 유럽의 첫 흔적이 새겨진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떨리는 입국 심사 대기 시간



10시간 예정이었던 여정은 스무 시간이 걸렸다. 심신이 많이 지친 우리를 위로한 건 옥토버페스트가 한창인 레스토랑에서의 들뜬 축제 분위기와 야들야들 입에서 녹는 슈바인학센이었다. 유럽 한 번 오기 힘드네 싶게 다사다난했던 하루였지만 신고식을 거하게 치른 거라 생각했다. 비엔나가 우리를 도대체 얼마나 즐겁게 해 주려고 그랬나! 기대하며 대륙 이동을 마쳤다.



고진감래의 감이 된 슈바인학센과 생맥 한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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