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늦은 여름휴가 일정에 핑계 대지 않고 따라나섰다. 앞만 보고 뛰기 바빴던 큰 아이의 시간이었다. 동굴 속에 나를 가두고 부족한 내면을 무조건 채워 넣기 바빴던 나의 시간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잠깐의 여유가 주어졌다. 아들의 쉼의 시간과 다시 사람들 삶 속으로 들어가는 나의 시간이 운 좋게 맞아떨어져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 3일 차
뮤지컬 한 편을 보고 밤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우버 안에서
한국에 계시는 큰 형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시간 박수를 치고 열광을 하며
이 작품 안 보고 떠났으면 후회했겠다 싶었던 순간이었다.
마음이 아직도 붕 떠 있던 내게 바늘로 콕하고 바람 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안했다.
분명 서로 감당하고 살아야 할 시간의 몫이 다르다는 걸 안다.
내가 웃고 떠들었던 시간에
큰 형님은 생의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그냥 미안해졌다.
아직 일정이 남아 있어 어찌할 수도 없고 일정을 마칠 즈음이면
이미 모든 과정이 다 끝나있을 터였다.
멀리 산다는 건
가까운 가족, 친지들의 대소사를
함께 할 수 없어
불효자가 되고 정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어쩌겠는가!
손에 꼽아 볼 정도의 아들과의 귀한 시간도
내겐 소중하니 말이다.
췌장암이셨다.
일 년 반 정도를 항암치료와 함께 잘 참아내셨다.
최근 강단 있던 큰 형님이 복수를 빼고 엉엉 우셨다는 말에 마음 한편이 내려앉았다. 그 뒤로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셨고 중환자실에서 겨우 의식을 회복하셨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