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닙니다.
카시어스 마르셀러스 쿨리지( Cassius Marcellus Coolidge, 1844-1934)의 <포커 게임 Poker Game>(1894) 작품입니다. 그의 유명한 '개들의 포커 게임 Dogs Playing Poker'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유화 작품이지요. 이 그림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당시 미국의 사회적 풍속과 인간의 본성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대중문화에 깊이 각인된 아이코닉한 작품입니다.
<개들의 포커 게임 Dogs Playing Poker>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쿨리지가 그린 18점의 그림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포커 게임(1894)'은 이 시리즈의 첫 번째이자 독립적인 작품입니다. 1903년 브라운 & 빅겔로우( Brown & Bigelow) 광고 회사의 위탁으로 시가(Cigar) 광고를 위한 16점의 연작이 추가되었습니다. 이후 1910년의 또 다른 작품까지 더해져 총 18점의 시리즈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5년 경매에서 658,000달러(약 8억 6천만 원)에 판매되어 쿨리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Dogs Playing Poker by Cassius Marcellus coolidge, 1894/wikipedia
네 마리의 개들이 긴장감 넘치는 포커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유화로 담아냈습니다. 녹색 포커 테이블 주위에 개 네 마리가 보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자신의 패를 숨기고 깊이 생각에 잠긴 개가 눈동자를 굴리며 상대의 눈치를 보는 중입니다. 왼쪽의 개는 네 장의 에이스와 한 장의 퀸이라는 매우 강력한 패를 들고 있고요. 승리의 순간을 앞두고 사뭇 긴장감이 돕니다. 한 마리는 시가를 , 다른 한 마리는 파이프를, 또 다른 한 마리리는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위스키 한 병이 어김없이 놓여 있고요. 이 작품은 특히 녹색 톤을 많이 사용하여 차분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개들은 대부분 세인트 버나드와 같은 큰 품종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쿨리지의 그림은 단순히 재미있는 동물을 그린 것을 넘어,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본성에 대한 풍자적인 해설을 담고 있습니다. 개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포커 게임을 하는 "상류층 변호사와 사업가"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도박 문화에 만연했던 경쟁, 기만, 불신, 친목 등의 주제를 나타내고요. 이러한 인격화된 묘사는 당시 불법이었던 도박 행위를 유머러스하고 비위협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쿨리지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유화 기법으로 개들의 표정, 의상, 가구 등의 세부 묘사를 정밀하게 표현하여 인간의 사회적 장면을 익살스럽게 재현했습니다.
The Cardsharps by Caravaggio, 1594/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 by Georges da La Tour,1635
The Card Players by Paul Cezanne, 1890-92/Paul Cezanne
' 포커 게임'의 구도는 카라바조( Caravaggio,1571-1610 ),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1593-1652), 폴 세잔( Paul Cezanne,1839-1906)과 같은 대가들의 카드 플레이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인간 대신 개를 등장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적 유머를 창조했고요. 그의 그림들은 '키치 kitsch' 예술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특성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재미있으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독특한 매력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1894년 '포커 게임'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그림은 시가(Cigar) 회사의 제품 상자를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상업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당시 미술계 평론가들은 쿨리지의 작품을 진지한 예술로 보지 않고, '저급' 또는 '키치'예술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들이 주로 광고와 같은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유머와 통찰력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1903년 브라운 & 빅겔로우의 대규모 위탁으로 제작된 달력 광고 시리즈는 쿨리지의 작품을 수많은 미국 가정에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xNVR3fRVU
오늘은 스코틀랜드의 초상화가 헨리 레이번 경 ( Sir Henry Raeburn, 1756-1823)과 잉글랜드 동물 화가 에드윈 랜드시어 경( Sir Edwin Landseer, 1802-1873)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Edinburgh is actually further west on the UK than Bristol/ Edinburgh Live
헨리 레이번 경( Sir Henry Raeburn, 1756-1823)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스코틀랜드의 주요 초상화가로, 그의 작품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약 50년 동안 1,000점 이상의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에든버러에서 주로 활동하며 뛰어난 사실주의와 인물 심리 묘사를 선보인 그는 영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5세에 학교를 떠나 에든버러의 금세공인이자 보석상인 제임스 길리랜드( James Gilliland)에게 수습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보석의 상아 부분에 정교한 미니어처 그림을 그리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그의 섬세한 손재주와 관찰력을 알아 본 길리랜드는 당시 에든버러의 주요 초상화가였던 데이비드 마틴( David Martin)에게 레이번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마틴은 레이번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모사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의 그림 공부를 도왔습니다. 레이번은 거의 독학으로 유화 초상화 기법을 습득하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의 초기 유화 작품들은 미니어처 화가에 기대되는 섬세함보다는 대담하고 활기찬 붓 터치를 보여주었습니다.
Henry Raeburn-Lady in a Lace Cap/PubHist
1778, 스케치 여행 중 만났던 부유한 미망인 앤 에드거 레슬리( Ann Edgar Leslie,)와 결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었고, 이는 예술가로서의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레이번은 예술적 역량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1784년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조슈아 레이놀즈경 ( Sir Joshua Reynolds)을 만나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구할 것을 조언받고, 이탈리아 미술계 인사들에게 소개장을 받았습니다. 로마에서 2년간 공부하면서 그는 고전 미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스코틀랜드 동향 출신의 예술가와 건축가로부터 중요한 조언을 얻기도 했습니다.
1787년 에든버러로 돌아온 레이번은 자신의 고향에 머물며 활동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더 큰 명성을 얻으려 했던 동시대 화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에든버러에 머물면서 스코틀랜드 미술계의 주역이 되었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에든버러의 지적, 사회적 황금기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며 스코틀랜드 문화에 기여했습니다.
레이번은 주로 예시 스케치 없이 캔버스에 직접 유화를 그리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대담하고 활기찬 붓놀림은 '스퀘어 터치( square touch)'로 불렸는데, 이는 대상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특히, 거칠고 대담한 붓놀림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인물의 입체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얼굴의 세부 묘사에는 정밀함을 , 옷감과 배경에는 보다 넓고 빠른 터치를 사용하여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했습니다.
레이번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의 극적인 사용입니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인물에게 깊이와 강렬함을 부여했습니다. 종종 어두운 배경에 인물을 배치하여 얼굴과 형태가 돋보이도록 했고요. 이러한 조명 기법은 인물의 심리적 깊이와 존재감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Sir Walter Scott and His Dogs,1822/wikimedia commons
레이번의 활동 시기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Scottish Enightenment)와 맞물려 있습니다. 에든버러는 지적, 예술적 혁신의 중심지였고, 레이번은 데이비드 흄 ( David Hume, 1711-1776), 애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 제임스 보스웰( James Boswell, 1740-1795)과 같은 당대의 사상가, 작가, 과학자, 법률가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이 시대의 자신감과 세련됨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얼굴 묘사를 넘어 한 시대의 정신을 포착했으며,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시각적 정체성을 정의했습니다.
Scottish Enlightenment, British History, Philosophy& Culture/Britannica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18세기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과학적 성과와 지식 체계 전반에 걸쳐 두드러진 발전을 이룬 계몽주의적 사조입니다. 이 시기는 유럽 전역에서 이성을 인간 본연의 특질로 파악하고, 이성에 의해 사회, 자연의 진보가 가능하다는 낙천주의적 믿음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특히 경험론에 기반을 두어 현실 경험 속에서 덕을 함양할 때 개인과 사회 모두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근대 서구 사상과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의 연합으로 스코틀랜드 의회는 활동을 중지하고 많은 정치인과 귀족들이 런던으로 이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독자적인 법체계, 대학, 교회 시스템을 유지했습니다. 에딘버러에 남은 법원, 변호사, 판사, 대학, 의료시설, 교회 지도부 등은 교수, 지식인, 의료인, 과학자, 건축가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주도하는 중산층 엘리트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절대왕정에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사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1750년경에는 인구의 75%에 달하는 문해율을 기록했고요. 이는 1496년 교육법과 청교도 교육을 지향한 교구학교 네트워크 덕분이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17세기 후반까지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한 저지대에서 탄탄하게 구축되었습니다. 17세기 스코틀랜드에는 5개의 대학이 있었습니다. 이 대학들은 전쟁 이후 부흥 노력의 결과로 경제학, 과학을 포함한 강의 중심의 교육과정을 상류층과 성직자 자녀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특히 에든버러 대학교 의과대학은 17세기말까지 유럽 과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8세기에도 스코틀랜드 대학은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에 비해 개방적이고 저렴한 수업료로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 당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인구 5배, 경제 규모 36배의 격차를 보였지만, 이후 스코틀랜드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 격차는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상류층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잉글랜드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 시장의 확대는 가장 큰 국제무역 상황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글래스고는 식민지에 공장 생산품을 공급하고 담배 무역으로 큰 이득을 얻어 18세기 내내 도시를 지배했으며, 이 시기에 은행도 발전하여 상업 자본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
From the Highlands to the Enlightenment/Thames & Hudson
스코틀랜드의 지식 생활은 주로 서적 유통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1763년 6개였던 에든버러의 인쇄소는 1783년 16개로 증가했습니다. 1710년대 에든버러에는 지적인 토론을 위한 클럽들이 생겨났고, 1740년대 글래스고에는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같은 유명 인사가 참여한 정치경제클럽이 학계와 상인들 간의 연계를 지향했습니다.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명사회( The Select Society)와 포커 클럽( The Poker Club)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애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 애덤 퍼거슨(Adam Ferguson, 1723-1816) 등의 저명한 인사들을 포함하여 지식 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1750년까지 스코틀랜드의 주요 도시들은 대학, 독서회, 도서관, 잡지, 박물관 등 지적 기반을 갖추며 대서양 계몽주의 발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소리 없이 강한 지식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유럽의 다른 계몽주의와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프랑스 계몽주의가 살롱 문화와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1713-1784)의 '백과전서'를 기반으로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개혁을 추구했다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경험론을 강조하고 점진적인 사회 질서 및 상업 사회 구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은 이성을 통한 사회 재구성보다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질서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유럽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넘어 미국과 같은 신흥 국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kk9W4XWY0
에드윈 랜드시어 경 ( Sir Edwin Landseer, 1802-1873)은 19세기 영국의 가장 저명한 화가이자 조각가로, 특히 동물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말, 개,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을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예술계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고요. 랜드시어는 단순한 동물 묘사를 넘어, 동물에게 인간적인 감정과 도덕적 특성을 부여하여 당대 대중과 귀족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에드윈 랜드시어는 1802년 런던에서 판화가 존 랜드시어 ( John Landseer)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소리를 들을 정도로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5-6세 때부터 들판에서 양, 염소 등 동물을 스케치하며 아버지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7세에는 아버지 밑에서 에칭 기법을 배웠고요. 10세 이전에 유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1세에는 동물 드로잉으로 왕립 예술 협회( Royal Society of Arts)의 은색 팔레트 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13세인 1815년에는 왕립 미술원( Royal Academay)에 작품을 전시하며 '명예 출품자'자격을 얻었습니다. 초기 경력이 누구보다 화려했던 화가입니다.
Benjamin Robert Haydon/Royal Academy of Arts
랜드시어(1802-1873)는 아버지 외에도 여러 예술가 밑에서 배웠습니다. 특히 역사화가 벤자민 로버트 헤이든( Benhamin Robert Haydon, 1786-1846)에게 사사했습니다. 헤이든은 어린 랜드시어에게 동물의 근육과 골격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직접 해부를 수행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이러한 해부학적 지식은 그의 작품에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는 런던탑의 동물원에 있는 야생 동물들을 연구했으며, 왕립 미술원의 엘긴 마블(Elgin Marbles)도 연구했습니다. 엘긴 마블스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영국 대사였던 토마스 브루스, 즉 엘긴 경( Lord Elgin)이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가져온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을 총칭하는 이름입니다. 이 조각품들은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벽면과 천장을 장식했던 대리석 조각품들로, 대영박물관에 75미터 길이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30대 후반, 랜드시어는 상당한 신경쇠약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남은 생애 동안 반복되는 우울증과 건강염려증에 시달렸고요. 그의 정신 건강은 알코올 및 약물 남용으로 인해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말년에는 가족의 요청으로 1872년 7월 정신 이상으로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873년 10월 1일 사망했으며,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
랜드시어(1802-1873)는 동물 회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19세기 영국 예술에 지대한 여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특히 말, 개,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동물의 본질을 포착하고 개성과 감정을 불어넣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랜드시어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동물들에게 인간적인 감정과 도덕적 특성을 부여하는 의인화입니다. 그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교훈이나 사회적 풍자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한 극도의 사실주의로도 유명합니다.
랜드시어의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의 작품 복제본은 중산층 가정의 벽에 흔히 걸려 있었고, 귀족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인간을 돕는 개를 묘사한 그의 그림들은 매우 인기 있고 영향력이 커서,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뉴펀들랜드견의 한 품종은 그의 이름을 따서 '랜싯견 Landseer dog)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1845/ wikimedia commons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총애를 받아 여왕의 반려견 수십 마리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여왕은 그를 "가장 영리한 예술가"라고 칭하며 그의 작품을 다량 구입했습니다. 랜드시어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에게 에칭 기법을 가르치기도 했고, 왕실 자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윈저성 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1845년경)과 같은 작품은 빅토리아 여왕이 평화로운 가족의 이미지를 원했던 모습을 반영합니다.
Skating on Duddingston Loch,1900/wikipedia
Duddingston Loch, wikipedia
The Revenend Robert Walker Skating on Duddingston Loch, 1790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wikipedi
헨리 레이번 경( Sir Henry Raeburn,1756-1823)의 < 더 레버런드 로버트 워커 스케이팅 온 더딩스턴 로흐 The Reverend Robert Walker Skating on Duddingston Loch>(1790)는 스코틀랜드 예술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스케이팅 목사 The Skating Minister>"로 불리는 이 작품은 유화로, 현재 에든버러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49년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스코틀랜드 문화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그림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에 그려졌고요. 그 시대의 지적 호기심과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레이번의 작품은 강력한 인물 묘사, 극명한 사실주의, 극적이고 독특한 조명 효과, 그리고 빠르고 폭넓은 붓질이 특징입니다. 그는 종종 예비 스케치 없이 직접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차별화되는 그의 독특한 철학이었습니다. 1790년경에는 인물을 강한 광원 앞에 배치하고 그 윤곽을 따라 빛이 반짝이는 독특한 '콘트르-주르( Contre-jour: 빛을 등지고 또는 햇빛에 맞서)' 조명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고객들이 이 양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이는 그의 작품에 깊이와 개성을 더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과 귀족들을 포함한 많은 유명 인사들을 그렸습니다. 1808년에는 사업 실패로 인해 파산하는 등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 그림에 매진했습니다. 런던 예술계와의 관계에서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며 스코틀랜드 예술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822년 조지 4세 국왕의 스코틀랜드 방문 시 기사 작위를 받았고, 스코틀랜드 국왕의 수석 초상화가( King's Limmer)로 임명되면서 그의 예술적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 그림의 모델인 로버트 워커 ( Robert Walker, 1755-1808)는 스코틀랜드 교회( Church of Scotland)의 목사로, 에든버러 캐노게이트 커크( Canongate Kirk)에서 사역했습니다. 1755년 4월 30일 에어셔 몽크턴에서 태어난 그는 ,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역지였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얼어붙은 운하 위에서 스케이팅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15세의 젊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778년 진 프레이저 ( Jean Fraser)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워커 목사는 단지 성직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1779년 로열 컴퍼니 오브 아처스( Royal Company of Archers)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세계 최초의 피겨 스케이팅 클럽인 에든버러 스케이팅 클럽( Edinburgh Skating Club)의 활발한 회원이었습니다. 이 클럽은 그림에 묘사된 더딩스턴 로흐( Duddingston Loch)나 로크엔드 로흐( Lochend Loch)가 얼어붙으면 그곳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는 경제적 성장과 함께 인간 이성의 가치를 중시하고 학문적 발전을 옹호하던 시기였습니다. 워커 목사는 엄격한 성직자의 역할과 함께 여가 활동을 즐기는 역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이성, 영성, 신체 활동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이는 당시 스코틀랜드 사회가 지적, 도덕적 미덕뿐만 아니라 여가와 자연과의 교감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스케이팅 자세는 동료 스케이터들에게 어렵고 세련된 기술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위를 더욱 강조했습니다.
이 작품은 초상화, 풍경화, 그리고 활동 장면을 독특하게 결합한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로버트 워커 목사가 얼어붙은 더딩스턴 로흐 위를 활강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양팔을 가슴에 모으고" 여행 자세 travelling Position"로 스케이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우아하고 능숙해 보이지만 실제로 매우 어렵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동작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목사의 침착함과 자제력을 나타내며, 신체적 균형과 도덕적 균형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워커 목사의 검은색 성직복은 그를 둘러싼 야생적인 배경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사색적이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요. 레이번은 목사의 얼굴 표정과 자세를 통해 그의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을 동시에 포착했습니다.
배경은 얼어붙은 더딩스턴 로흐와 흐릿한 겨울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옅은 분홍빛이 도는 회색 바위산과 하늘은 자유롭게 그려져 있고요. 안개 낀 듯한 빙판과 땅의 경계는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배경은 목사의 명상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며,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낭만주의적 이상을 반영합니다.
레이번은 얼음 위에 스케이트 자국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 얼음 표면의 미묘한 질감과 스케이트 날이 일으키는 얼음의 거품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레이번이 금세공인으로서 수련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뛰어난 관찰력과 정교한 묘사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조명효과입니다. 워커 목사의 어두운 실루엣은 밝게 빛나는 배경을 배경으로 강렬하게 부각되며, 마치 역광을 받는 듯한 효과를 줍니다. 이러한 조명은 그림에 드라마틱한 깊이와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전반적인 색채는 차분하고 조화로운 팔레트를 사용하여 겨울날의 고요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표현하고요.
Collect GB Stamps(출처)
그림은 스코틀랜드 관광 및 예술 홍보 자료에 자주 등장합니다. 1973년에는 레이번 서거 150주년 기념우표로 발행되기도 했고요. 또한 다양한 전시 포스터와 기념품에 사용되어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현대에는 책, 광고뿐만 아니라 음악 비디오 ( 예: Clean Bandit의 "Dust Clears")에도 등장하여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fL2nY-Xs8
The Monarch of the Glen, 1851, Scottish National Gallery, Edinburgh/wikipedia
에드윈 랜드시어 경 ( Sir Edwin Landseer)의 < The Monarch of the Glen>(1851) 작품입니다. 유화 작품으로, 19세기 영국 미술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널리 알려진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웅장한 붉은 사슴( red der stag)이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안개 낀 풍경 속에서 위엄 있게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야생 자연과 국가적 정체성을 강력하게 상징하지요. 랜드시어(1802-1873)는 당시 최고의 동물화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했고요.
< The Monarch of the Glen>(1851) 은 유화 작품으로, 원래 런던 웨스턴민스터 궁전 하원( House of Lords)의 다과실( Refreshment Rooms)을 장식하기 위한 세 점의 패널 중 하나로 의뢰되었습니다. 이 의뢰는 1834년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대화재 이후 새로운 건물을 재건하면서 미술 작품으로 장식하려는 '순수 미술 위원회 Fine Arts Commission'의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된 후 하원( House of Commons)이 약속된 150파운드의 수수료 지급을 거부하면서, 이 작품은 원래의 의도와 달리 설치되지 못하고 개인 소장가에게 팔리게 되었습니다.
랜드시어(1802-1873)의 런던 스튜디오에서 그려졌지만, 그의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얻은 스케치와 인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글렌 애프릭( Glen Affric)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아름다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특정 장소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안개 낀 고지대 풍경입니다. 이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이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 월터 스콧( Walter Scott)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스코틀랜드 낭만주의를 대중화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고지대 낭만주의 Highland Romanticism)'를 결정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지던 시기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임차 농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고지대 개척 HIghland Clearances'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습니다. 부유한 영국 귀족들의 사냥터 조성을 위해 대규모 농지 변화가 이루어지던 복잡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작품의 웅장함 뒤에 숨겨진 계급과 토지 소유권에 대한 논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The. Monarch of the Glen>은 163.8cm* 168.9cm 크기입니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에 웅장한 붉은 사슴을 중앙에 배치한 강력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슴은 12개의 뿔을 가진 '로열 스태그( royal stag)로 분류되며 , 당당한 자세로 언덕 위에 서서 주변 환경을 지배하는 듯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랜드시어는 이 사슴을 "모나코 (군주)"라는 제목에 걸맞게 사냥감으로 묘사되는 당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위풍당당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부각시켰습니다. 작품의 구도는 '3 분할 법칙 rule of thirds'을 활용하여 사슴의 오른쪽 가장자리와 눈이 시각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오도록 배치하여, 안정감과 동시에 시각적 흥미를 유발합니다.
Monarch of The Gleen by Edwin Lanseer/ Daily Art Magazine
그림의 배경은 안개 낀 고지대와 보랏빛 헤더(heather)로 뒤덮인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요. 랜드시어는 사실주의적 묘사와 낭만주의적 이상화를 결합하여, 실제의 디테일과 극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사슴의 털은 윤기 있고 정교하게 묘사되어 촉각적인 질감을 전달하며 콧구멍 주변의 습기와 속눈썹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여 생생함을 더합니다.
빛은 그림에 강렬한 드라마틱 효과를 부여합니다. 사슴은 배경의 안개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며, 새벽빛이나 황혼의 빛이 안개를 뚫고 들어오는 듯한 효과는 작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 합니다. 랜드시어(1802-1873)의 붓질은 동물의 해부학적 정확성을 바탕으로 세밀하면서도, 배경의 풍경 묘사에서는 더욱 자유롭고 대담한 터치를 사용하여 깊이감과 공간감을 연출합니다. 이러한 회화 기법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 미술의 특징인 서사성과 낭만적 감성을 잘 보여주며, 자연과 동물의 위엄을 훌륭히 표현해 냈습니다.
이 작품에 묘사된 붉은 사슴은 스코틀랜드의 자연 유산과 민족 정체성의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켈트 신화에서 사슴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고귀함, 활력, 재생을 상징합니다. 나무 가지 모양의 뿔은 자연의 재생과 순환 패턴을 의미하고요. 이 그림 속 사슴은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담아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장엄함과 야생성을 구현합니다. 작품은 또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경외로운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스코틀랜드의 황량하고 숭고한 풍경에 대한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시각을 반영합니다.
<The Monarch of the Glen>은 1851년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대중과 미술계로부터 상당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 웅장하고 승리감 넘치는 사슴의 묘사는 빅토리아 시대의 장엄함과 자연의 숭고함이라는 이상에 부합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랜드시어의 형인 토마스 랜드시어( Thomas Landseer)가 제작한 강판화( steel engraving) 덕분에 그림은 영국 전역과 국제적으로 널리 퍼져 유명해졌습니다.
< The Monach of the Glen>은 1851년 왕립미술원 전시회에서 앨버트 데니슨( Albert Denison) 경에게 600파운드에 팔린 이래, 160년 이상 개인 소유 및 기업 소유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윌리엄 데니슨( Willian Denison), 1대 론데스버러 백작 ( Earl of Londesborough)과 헨리 이튼 ( Henry Eaton), 1대 체일스모어 남작( Baron Cheylesmore) 등 여러 저명한 소장가들을 거쳐 갔습니다. 특히 20세기 초에는 Pears 비누 회사와 John Dewar& Sons 증류소, 그리고 Glenviddich와 같은 기업들이 마케팅 이미지로 활용하면서 상업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다국적 주류 기업 디아지오( Diageo)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The Monarch of the Glen: a Scotish icon/Scotch Whisky
Diageo deal could save Monarch of the Glen/Scotchwhisky.com
2016년 11월 , 디아지오가 < The Monarch of the Glen>을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 그림이 해외로 팔려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NGS)을 그림을 스코틀랜드에 보존하기 위한 대규모 공공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디아지오는 그림의 평가액인 800만 파운드의 절반인 400만 파운드에 그림을 판매하겠다고 제안했고, NGS는 대중의 기부, 내셔널 로터리 헤리티지 펀드( National Lottery Heritage Fung)의 265만 파운드, 아트 펀드 ( ARt Fund)의 35만 파운드, 스코틀랜드 정부의 10만 파운드 등 광범위한 지원을 받아 2017년에 그림을 성공적으로 매입했습니다. 이는 이 그림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공 기관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L1G1S5RJfw
The Archers: Robert and Ronald Ferguson, 1789-1790/Alamy
헨리 레이번 ( Henry Raeburn, 1766-1823)의 < The Archers: Robert and Ronald Ferguson>(1789-1790) 작품입니다.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의 사회적 , 문화적 맥락과 레이번의 독특한 예술적 기법을 탁월하게 결합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젊은 로버트 퍼거슨과 그의 동생 로널드 퍼거슨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양궁 스포츠의 부흥에서 영감을 받은 복합적인 구성으로 유명합니다.
레이번(1756-1823)은 주로 에든버러( Edinburgh)에서 활동하며 스코틀랜드의 귀족, 지식인, 중산층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초상화가로 부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지적, 경제적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생애 동안 천 점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822년 조지 4세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스코틀랜드의 공식 궁전 화가( King's Limner)로 임명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로버트 퍼거슨 오브 레이스 ( Robert Ferguson of Raith, 1770-1840)와 그의 동생 로널드 퍼거슨 경 ( Lieutenant- General Sir Ronald Ferguson, 1773-1841)은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습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파이프( Fife) 지역 출신으로, 광대한 토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명문가인 퍼거슨 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로버트는 1792년에, 로널드는 1801년에 왕립 궁수단( Royal Company of Archers)의 일원이 되었는데 , 이는 스코틀랜드 소버린의 의례적인 호위대 역할을 하는 엘리트 조직으로, 그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귀족 계층과의 연결을 상징합니다.
당시 양궁은 스코틀랜드 엘리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스포츠로 부활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의 구성에 영감을 주었지요. 로버트와 로널드 퍼거슨 형제가 왕립 궁수단의 일원이 된 사실은 이 스포츠가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양궁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귀족적 전통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The Archers-a portrait of the Ferguson brothers by Sir Henry Raeburn/Gods & Foolish Grandeur
<궁수들>은 극적인 명암 대비와 복잡한 기하학적 구도를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형 로버트 퍼거슨은 화면 왼쪽에서 비추는 빛을 받아 선명하게 윤곽이 드러난 옆모습으로 그려져 자신감과 젊음을 표현합니다. 반면, 그의 뒤에 있는 동생 로널드는 완전히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형이 팽팽하게 당긴 활 속에 프레임처럼 둘러싸여 관람자를 응시합니다. 이러한 명암의 대비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 깊이와 복잡성을 더하며, 친밀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detail/Gods and Foolish Grandeur
그림 속을 가로지르는 수평 화살은 캔버스를 정확히 이등분하며, 고전적인 조각 프리즈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균형감을 강조합니다. 이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의 고대 미학에 대한 재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인물들의 의상과 자세는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양궁이 사회적 지위와 운동적인 우아함을 상징하는 패션이었음을 드러내고요. 로버트의 자신감 넘치는 자세와 로널드의 그림자 속에 가려진 모습은 작품에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을 더하는 동시에, 형식적이면서도 깊은 감성을 담아냅니다.
Alpine Mastiffs Reanimating a Distressed Traveller,1820/National Gallery of Art
에드윈 랜드시어 경 ( Sir Edwin Landweer, 1802-1873)의 <알파인 마스티프가 조난당한 여행자를 소생시키다. Alpine Mastiffs Reanimating a Distressed Traveller>(1820) 작품입니다. 유화 작품으로 영국 미술계에서 그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기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18세였던 랜드시어(1802-1873)가 그린 것으로,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두 마리의 세인트버나드 개가 눈 속에 묻힌 여행자를 구출하는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인트버나드 개들이 보여주는 충성심과 희생정신이라는 주제는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감성과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가치와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이 거대한 캔버스 ( 189cm*237cm)는 현재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전반기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 예술 운동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알프스 산맥의 험준한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동물의 드라마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연의 웅장함, 숭고함, 그리고 위험 속에서 발현되는 영웅주의의 자비심이 중요한 예술적 주제로 다루어졌습니다. 랜드시어(1802-1873)의 이 작품은 이러한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완벽하게 담아내며, 동물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감정과 도덕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인트버나드 고개( Saint Bernard Pass)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험준한 산악 통로로, 수세기 동안 여행자들에게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11세기, 성 베르나르드 멘톤 ( St. Bernard of Menthon)이 이 고개 근처에 호스피스( hospice, 피난처)를 설립하여 조난당한 여행자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 중반부터 이 수도사들은 덩치 크고 충성스러우며 후각이 뛰어난 개들을 구조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바로 알파인 마스티프( Alpine Mastiffs), 즉 현대 세인트버나드( St. Bernard)의 조상입니다. 이 개들은 안개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찾아 조난자를 발견하고, 눈에 파묻힌 사람을 발굴하여 구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도사들은 200년 동안 약 2,000명의 사람들을 구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40명 이상을 구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개 '배리(Barry)'는 그 용맹함으로 유명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구명정
- 존 랜드시어-
Saint of Saints: Barry the Saint Bernard's Heroic Life/ The Paris Review
랜드시어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스위스 알프스를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알프스 구조견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는 이미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고, 윌리엄 브록던(William Brockedon)의 "알프스 고개 삽화 (IIIustrations of Passes of the Alps)" 나 사무엘 로저스( Samuel Rogers)의 시 "세인트버나드 고개 The Pass of the Saint Bernard"와 같은 문학 작품을 통해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랜드시어는 이러한 이야기들과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William Brockedon, IIIustrations of Passes of the Alps/Wikibooks
이 작품은 랜드시어의 초기작 중 가장 크고 야심 찬 작품이었습니다. 그 기념비적인 크기 ( 189cm*237cm)는 그림의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요. 낮은 시점에서 구성된 화면은 관객을 구조 현장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입니다. 조난자의 취약함과 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강조하고요. 그림 전체는 얼어붙은 알프스 고개의 험난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화면 중앙에는 두 마리의 장엄한 마스티프가 눈 속에 파묻힌 여행자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한 마리의 개는 황갈색과 흰색 털을 가졌으며 , 윤기 나는 짧은 털과 축 늘어진 귀를 가지고 있고요. 이 개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채 눈을 앞발로 파헤치며, 남자를 덮고 있는 눈을 치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등에 붉은색 담요를 두르고 목에는 사자 모양과 종으로 장식된 넓은 색 칼라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짙은 갈색 브린들 ( brindle) 색을 띠고 있으며, 조난당한 여행자의 창백한 손을 핥아 소생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개는 목에 작은 나무통( keg)을 매달고 있는데, 이 나무통은 랜드시어가 창조한 것으로, 세인트버나드 개가 브랜디 통을 목에 걸고 다니는 대중적인 오해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 개는 또한 짖어서 멀리서 다가오는 수도사들에게 발견을 알리고 있습니다. 랜드시어의 섬세한 붓질과 빛나는 기법은 개의 털과 근육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들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부각시킵니다.
장면은 날카로운 강철색과 푸른 회색의 바위 지형과 두 그루의 뾰족한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뒤쪽으로는 V자형 고개가 중앙 상단을 차지하며, 눈 덮인 가파른 산비탈과 푸른 하늘 조각이 보이는 웅장한 산악 풍경이 펼쳐지고요. 오른쪽 바위틈에는 투박한 돌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수도사들의 호스피스를 나타냅니다. 호스피스에서 이어지는 길 위에는 검은색 모자와 로브를 입은 세 명의 수도사들이 개들을 향해 급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남자는 십자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뒤쪽의 남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묘사는 고립감과 험준한 환경을 강조하며, 구조 작업의 긴급성과 어려움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랜드시어는 풍부한 색채와 섬세한 조명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에 생동감과 깊이를 더했습니다. 개의 붉은 담요, 여행자의 떨어진 모자에 있는 붉은색, 그리고 동물의 털에서 느껴지는 광택은 그림에 활력을 부여하고 관람자의 시선을 이끕니다. 눈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숙련된 질감의 납백색(lean white)은 대비를 이루며 눈의 부피감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멀리 있는 산의 빛은 장면의 원격성과 광활함을 강조하고요.
세인트버너드 개가 목에 작은 브랜디 통을 매달고 다니는 이미지는 랜드시어의 이 그림에서 시작된 예술적 허구입니다. 실제 구조견들은 브랜디 통을 휴대하지 않았지만, 이 그림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대중문화 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세인트 버나드 개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신화는 랜드시어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그것이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이 작품은 동물화 장르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랜드시어는 동물을 단순한 스터디 대상이 아니라, 도덕적 메시지와 인간적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함으로써, 동물화를 순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작품은 동물의 해부학적 정확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격과 생명력까지 포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동물에 대한 깊은 공감과 경외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후 동물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동물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관점과 정서적 세계를 탐구하는 전통을 확립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fIaWBNFPkc
cambridge/whereig.com
피츠윌리엄 박물관(Fitzwillliam Museum)은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주요 미술 및 고대 유물 박물관입니다. 서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고고학 및 현대 미술 컬렉션 중 하나를 소장하고 있지요. 1816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약 60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박물관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핵심적인 기관이자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기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16년 리처드 피츠윌리엄 경, 7대 피츠 윌리엄 자작( Richard Fitzwilliam, 7th Viscount Fitzqilliam)의 유산 기부로 설립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홀 칼리지 출신이었던 그는 예술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학문적 지식을 겸비한 수집가였습니다. 유럽의 유명 예술가들의 그림, 판화, 드로잉을 비롯하여 문학 및 음악 필사본 등 광범위한 예술품을 수집했습니다. 특히 조지 프레데릭 헨델( Geprge Feideric Handel)과 헨리 퍼셀( Henry Purcell)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자필 악보를 포함한 130점의 중세 필사본을 소장한 방대한 도서관을 가졌습니다. 그는 대학에 자체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사망 시 자신의 전체 컬렉션과 10만 파운드라는 막대한 금액을 캠브리지 대학교에 기부하여 후대에 학습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이 기부금으로 박물관 건물이 지어졌고, 그의 이름을 따서 박물관이 명명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초기에는 임시 공간에 소장품을 보관했으나, 1821년에 현재 위치인 트럼핑턴 스트리트( Trumpington Street)에 영구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이후 1834년 건축 설계 공모전을 통해 조지 바세비(George Basevi, 1794-1845)의 신고전주의 디자인이 채택되었고, 1837년에 새로운 박물관 건물의 주춧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바세비는 1845년 엘리 대성당 ( Ely Cathedral) 검사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찰스 로버트 코커렐( Charles Robert Cockerell)이 이어서 건축 작업을 맡아 1848년에 박물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 건물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원에서 영감을 받은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걸작입니다. 조지 바세비(1794-1845)가 설계한 초기 디자인은 높은 대좌 위에 거대한 코린트식 포르티코( Corinthian portico)를 특징으로 했습니다. 예술과 학문에 헌정된 장소로서의 웅장함을 표현하고자 했지요. 바세비 사망 후 작업을 이어받은 찰스 로버트 코커렐은 중앙 돔과 천장 디자인을 고안하고, 원래의 간결한 처리 방식 대신 풍부하게 모델링 된 장식으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코커렐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미들턴 배리( Edward Middleton Barry,1830-1880)는 1875년에 입구 홀 ( Entrance Hall)을 최종 완성했습니다. 배리는 빛과 공간을 늘리고 모자이크 바닥을 깔았으며, 화려한 문 주변 장식을 설치했습니다.
Fitzwilliam Museum(2025)/Tripadvisor
박물관 입구 홀은 모자이크 바닥, 대리석과 화강함 기둥, 채색 및 도금된 석고, 채색 유리 등 화려하고 값비싼 재료와 밝은 색채 (폴리크로미)를 사용하여 숨 막힐 듯 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효과를 연출합니다. 이 공간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Caryatids)를 복사한 조각상과 피츠윌리엄 자작의 문장으로 더욱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보존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먼지와 때가 제거되면서, 본래의 폴리크로미와 조각 디테일이 선명함이 되살아났습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 입구 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잘 보존된 빅토리아 시대 실내 공간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고요. 건물은 설립 이래로 지속적으로 증축되어 현재 원래 면적의 두 배에 달합니다. 1912년 찰스 브린슬리 말레이 ( Charles Brinsley Marlay)의 막대한 유산 기증으로 인해 추가적인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2004년에는 중정 공간, 회화 보존 스튜디오, 전시 갤러리 및 현대적인 방문객 시설이 추가되었고요.
피츠윌리엄 박물관은 반세기 이상에 걸친 인류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60만 점 이상의 세계적인 예술 작품, 명화,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소장품은 크게 다섯 부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 고대 유물, 응용미술, 동전 및 메달, 희귀 원고 및 인쇄본, 회화 소묘 판화) 13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최고의 예술가 작품 약 2,000점을 포함하며, 티치아노( Titian), 렘브란트( Rembrandt), 카날레토( Canaletto), 모네( Monet), 드가( Degas), 피카소( Picasso)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5Xu7MnQXd0
영국 및 유럽 도자기와 유리 공예품, 가구, 시계, 부채, 갑옷, 그리고 중국, 일본, 이슬람권의 도자기 컬렉션과 한국의 도자기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특히 곰퍼트( Gompertz)라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수집하여 기증한 최고 수준의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한국 도자기가 29번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어 한국인 방문객에게 특히 인상 깊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Rothschild Bronzes, Michelangelo/wikipedia
약 20만 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동전 및 메달 컬렉션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비잔틴, 중세 유럽,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화폐는 경제, 정치, iconography, 심지어 과거 시대의 선전까지 통찰할 수 있는 미니어처 역사 문서 역할을 합니다. 2015년에는 미켈란젤로( Michelangelo)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동 조각상 "로스차일드 청동상( Rothschild Bronzes)"을 전시하여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현존하는 청동 조각으로 여겨집니다.
William Glendonwyn,1795/wikimedia commons
헨리 레이번 경 ( Sir Henry Raeburn, 1756-1823)의 <윌리엄 글렌던윈 William Glendonwyn>(1795) 작품입니다. 이 초상화는 18세기말 스코틀랜드의 문화적 사회적 풍경을 담아낸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의 미학적 이상과 사회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레이번의 독특한 예술적 기법과 심오한 인물 해석 능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윌리엄 글렌던윈이라는 인물의 외적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적 특성과 지적 위엄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레이번의 전체 작품군 내에서도 중요한 예술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레이번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뛰어난 초상화가로, 당시 스코틀랜드의 지적, 사회적 흐름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스코틀랜드의 법률가, 교수, 지식인, 상인 등 다양한 사회 계층의 인물들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단순한 외모 묘사를 넘어 인물의 성격, 지위, 그리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심리적 깊이를 표현하는데 탁월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인물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상인 계층이나 지주 가문들이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품 속 < 윌리엄 글렌던윈 William Glendonwyn>역시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인물로 해석됩니다. 비록 그의 구체적인 생애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지만, 레이번과 같은 저명한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증명합니다. 이 시기의 초상화는 개인의 성공과 지위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 엘리트 계층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초상화는 그의 위엄 있고 지적인 면모를 강조합니다. 당시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인물에게 요구되던 덕목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요. 그의 차분한 표정과 의상은 그가 교양 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에 고귀하게 여겨지던 이성, 개인주의, 그리고 시민적 책임감과 같은 가치들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높이 124.8cm, 너비 101.6cm의 크기로,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피츠윌리엄 박물관( The Fitzwilliam Museum)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92년 윌리엄 홀더 ( William Holder)에 의해 구매되어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차분하고 진지하며, 약간의 사색에 잠긴 듯한 인상을 줍니다.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이마에 의도적으로 떨어지는 빛으로, 이는 당시 지적인 능력과 계몽주의적 이상을 상징하는 요소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기법은 인물의 내적 성숙함과 지적 위엄을 강조하는 레이번의 탁월한 인물 해석 능력을 보여주고요.
글렌던윈은 당시 상류층 남성들의 전형적인 어두운 색 정장을 입고 있는데, 이는 품위와 존경심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18세기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치들을 반영합니다. 레이번은 의복의 질감과 주름을 세심하게 표현하여 인물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섬세하게 드러냈습니다. 배경은 의도적으로 단순하고 어둡게 처리되어, 인물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면서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A Distinguished Member of the Humane Society,1838/wikipeida
에드윈 랜드시어 경(Sir Edwin Landseer, 1802-1873)의 <인간 사회의 명예로운 회원 A Distinguished Member of the Humane Society>(1838) 작품입니다. 유화작품으로, 그의 뉴펀들랜드 견종의 개를 주인공으로 하여 19세기 영국 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랜드시어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며, 동물화 장르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가로 143.5cm, 세로 111.8cm 크기의 이 유화는 현재 런던 데이트 미술관 ( Tate Collection)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뉴펀들랜드 견종의 검은색과 흰색 털을 가진 개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모델은 런던 워터프런트에서 14년 동안 23명의 사람을 익사에서 구한 영웅적인 개 '밥(Bob)'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열 휴메인 소사이어티( Royal Humane Society)로부터 명예 회원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메달과 평생 먹이를 지급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요. 랜드시어(1802-1873)가 밥을 그릴 당시 밥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는 '폴 프라이( Paul Pry)'라는 다른 뉴펀들랜드견을 모델로 하여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영국 사회의 인도주의적 정신과 동물에 대한 변화하는 인식을 반영합니다. 로열 휴메인 소사이어티(Royal Humane Society)는 18세기 후반에 설립된 자선단체로, 주로 익사자 및 기타 사고 피해자의 구조와 소생법을 발전시키고 보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단체는 인종, 종교, 직업, 개인적 배경에 관계없이 생명을 구하는 보편적 자선 활동을 펼치며, 당시 사회의 도덕적 책임 의식을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랜드시어(1802-1873)의 작품은 이러한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정신과 맥을 같이하며,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에게 도덕적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그림 속 뉴펀들랜드견은 해변의 석조벽(quay)에 편안하고 위엄 있는 자세로 잠시 포즈를 취해줍니다. 앞발은 석벽 가장자리에 살짝 걸친 채로 말이죠. 개의 표정은 침착하고 온화하며, 심지어 성스러운 태도를 연상시키는 인간적인 감정을 띠고 있습니다. 랜드시어는 개의 두터운 검은색 머리와 대조적인 흰색털을 정교하게 묘사하여, 털 한 올 한 올의 부드러운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당시 랜드시어(1802-1873)가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배경은 다소 흐리고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어두운 하늘과 물결이 잔잔한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름은 곧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개의 침착한 모습은 이러한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평화로운 느낌을 줍니다. 개의 검은색 머리는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물결치는 바닷물과 배경에 보이는 갈매기들은 그림에 생동감을 더하면서도, 언제든 구조가 필요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매우 균형 잡힌 구도를 보여줍니다. 개의 머리, 앞발, 그리고 뒷다리가 이루는 삼각형 구도는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개의 얼굴로 유도합니다. 또한, 화면 중앙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개의 머리와 검은색이 주는 무게감을 해변의 석벽에 있는 금속 고리 ( iron ring)가 균형 있게 잡아주고요. 이러한 섬세한 구도 설정은 그림 전체에 안정감과 조화를 부여하며, 보는 이에는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detail/Leland little Auctions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동물의 이타심과 영웅주의입니다. 뉴펀들랜드견 '밥'의 실제 구조 활동 이야기는 동물이 인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행위를 상징합니다. 랜드시어는 개의 모습을 통해 용기, 충성심, 자비심과 같은 덕목을 강조하며,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이상과 깊이 연결됩니다. 이 그림은 개를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도덕적 감수성과 영웅적 행동을 지닌'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 묘사하며, 동물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The MacNab,1810/flickr
헨리 레이번 경(Sir Henry Raeburn, 1756-1823)의 < 더 맥냅 The Macnab>(1810) 작품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초상화가 레이번의 예술적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사회의 정체성과 클랜 문화를 상징하는 강력한 시각적 표현으로,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한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 맥냅>은 프랜시스 맥냅( Francis Macnab), 16대 클랜 맥냅 족장( chief)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의 위풍당당한 존재감과 동시에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낭만적이 이미지를 영국 및 유럽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림 속 인물 프랜시스 맥냅( Francis Macnab, 1734-1816)은 16대 클랜 맥냅의 족장으로, "더 맥냅 The Macnab)'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킨넬( Kinnell)의 영주이자 클랜의 수장으로서 하이랜드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큰 키와 압도적인 풍채를 자랑했고요. 맥냅은 호탕한 성격과 친절함으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상당한 부채를 물려받고 본인의 낭비벽, 음주, 도박, 그리고 문란한 생활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최소 32명의 사생아를 두었으며, 82세로 사망할 당시 35,000파운드라는 엄청난 빚을 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랜시스 맥냅은 정부의 간섭, 특히 불법 위스키를 단속하는 세무관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등 기이하고 개성이 강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악명 높은 notorious' 면모는 당시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그의 캐릭터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습니다. 레이번(1756-1823)의 초상화는 이러한 복잡한 인물의 외적인 위엄과 내적인 강렬함을 동시에 포착하여, 그를 클랜 지도자, 하이랜드 정체성의 즉각적인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맥냅의 실제 재정적 어려움을 숨기고, 그를 이상화된 봉건 족장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글래스고의 켈빈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에 영구 대여 형식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레이번은 <더 맥냅>과 같은 작품을 통해 19세기 초 영국 및 유럽 대중에게 하이랜드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하이랜드의 족장들을 단순히 지역의 인물이 아니라, 용감하고 고귀하며 전통을 지키는 존재로 이상화하여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스코틀랜드 내셔널리즘이 부상하고 하이랜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더 맥냅>에 나타난 하이랜드 복장은 단순한 의상을 넘어 스코틀랜드 클랜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도상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프랜시스 맥냅이 착용한 타탄( tartan)은 특정 클랜에 소속감을 부여하는 패턴으로, 그의 킬트와 조끼에 사용된 맥냅 타탄은 그가 맥냅 클랜의 수장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깃털 장식이 달린 보닛과 스포런은 하이랜드 복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사회적 지위와 군사적 위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맥냅이 지닌 무기들, 즉 단검, 권총, 브로드소드는 족장으로서의 그의 군사적 리더십과 클랜 방어의 책임을 상징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 초 하이랜드 사회에서 족장은 단순한 행정적 리더를 넘어, 클랜을 보호하고 이끄는 전사이자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무기들은 맥냅의 강인함과 결단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하이랜드 전통 속에서 계승되어 온 전사 정신을 강조합니다.
MacNab Clan Tartan/Pinterest
https://www.youtube.com/watch?v=xSiTa7qZr2Y
Chatsworth House is located in Derbyshire./wikipeida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는 잉글랜드 더비셔의 피트 디스트릭트 중심부에 위치한 웅장한 컨트리 저택입니다. 더웬트 강변에 자리 잡은 이곳은 데번셔 공작들의 선조 대대로 이어진 거주지로, 17대에 걸쳐 약 5세기 동안 캐번디시 가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컨트리 하우스 중 하나로 명성이 높은 채스워스 하우스는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화려한 홀, 드넓은 정원, 유서 깊은 공원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저택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건축 양식, 중요한 예술 컬렉션, 그리고 세심하게 관리된 풍경으로 찬사를 받습니다. 역대 데번셔 공작 부부의 취향과 열정을 반영하고 있고요.
wikipeida
채스워스 하우스( Chatsworth House)의 기원은 1549년 윌리엄 캐번디시 경과 하드윅의 베스가 이 땅을 매입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553년경 첫 저택 건설이 시작되었고, 하드윅의 베스가 강변 위치 선정 및 1560년대 완공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큰 중앙 안뜰을 가진 사각형 구조로 지어진 이 초기 엘리자베스 시대 건물은 1569년부터 1584년 사이에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여러 차례 감금되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 초기 저택의 흔적은 사냥탑( Hunting Tower)과 기반이 되는 안뜰 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17세기 후반, 1대 데번셔 공작 윌리엄 캐번디시 주도로 1686년에 대규모 재건축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당시 혁신적이었던 영국 바로크 양식을 도입했으며, 윌리엄 탤먼( William Talman)과 같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극적이고 조각적인 남쪽 및 동쪽 외관을 특징으로 합니다. 1대 공작은 또한 페인트 홀 ( Painted Hall)과 현재 도서관( Libray)으로 사용되는 긴 화랑을 완성하여 지속적인 건축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2대와 3대 공작은 주로 저택 구조 변경보다는 인상적인 예술 컬렉션 수집에 집중했고요.
Chatsworth House Library,1694-1700/wikipedia
18세기에는 4대 데번셔 공작이 저택과 주변 경관에 광범위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는 서쪽에서 저택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재설계하고 , 오래된 마구간과 에든소어 마을 ( Edensor village) 일부를 철거하여 경관을 개선했습니다. "독신 공작( the Bachelor Duke)"으로 알려진 6대 공작은 19세기에 가장 중요한 변경을 단행하여, 제프리 와이어트빌 경( Sir Jeffry Wyatwille)이 설계한 북쪽 날개 ( North Wing)를 증축했습니다. 이 증축으로 저택의 규모와 기능이 크게 확장되었으며, 조각 갤러리( Sculpture Gallery), 오렌지 온실 (Orangery), 극장, 그리고 수많은 객실이 추가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수많은 도서관 전체를 인수하여 채스워스 하우스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이 저택은 수세기 동안 관리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영향을 반영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Painted Hall with murals completed 1694 by Louis Laguerre/wikipedia
가장 인상적인 실내 공간 중 하나는 1대 데번셔 공작이 건설한 페인티드 홀 ( Painted Hall)입니다. 손님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설계된 이 거대한 공간은 루이스 라게르( Louis Laguerre)가 그린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의 삶을 묘사한 벽화로 가득합니다. 로마 개선문( triumph arch)을 연상시키는 계단은 로마 테마를 보완하며, 흑백 할리퀸( harlequin) 대리석 바닥, 금박 장식, 바로크 예술이 극적인 효과를 더합니다.
State Bedroom completed 1694, wikipedia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방문을 예상하여 설계된 스테이트 아파트먼츠( State Apartments)는 그레이트 챔버( Great Chamber), 스테이트 드로잉 룸( State Drawing Roon), 세컨드 위도로잉 룸( Second Withdrawing Room), 스테이트 베드룸( State Bedroom) 등 일련의 화려하게 꾸며진 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방은 점점 더 사적이고 화려해집니다. 스테이트 뮤직 룸( State Music Room)은 얀 반 데르 파르트( Jan van der Vaart)의 바이올린과 활을 그린 트롱프뢰유( trompe-l'oeil, 눈속임)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The 6th Duke's dining room/wikipedia
6대 공작의 증축에는 바티칸의 한 방에서 영감을 받은 특별 제작된 조각 갤러리( Sculpture Gallery)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렌초 바르톨리니( Lorenzo Bartolini)와 안토니오 카노바( Antonio Canova)와 같은 예술가들의 신고전주의 조각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저택에는 또한 가문의 지적 추구를 반영하는 40,000권의 장서를 소장한 방대한 도서관( Library)이 있습니다. 실내 장식은 화려한 치장 벽토(plasterwork)와 조각된 벽 패널에서부터 고급 도자기, 호화로운 직물, 세부적인 시대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정교한 요소들을 선보입니다. 심지어 건물 전체에 분포된 가족의 개인 공간에도 여러 개의 응접실, 서재, 침실이 포함되어 귀족 생활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Laying Down the Law,1840, Chatsworth House, Bakewell/wikipedia
에드윈 랜드시어 경(Sir Edwin Landseer, 1802-1873)의 "법을 제정하다 ( Laying Down the Law)(1840) 작품입니다. <배심원 재판 Trial by Jury>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법조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법정에 모인 다양한 견종의 개들이 법관과 법조인 역할을 하는 장면을 의인화하여 보여줍니다. 특히 중앙의 프랑스 푸들이 판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가로 95cm, 세로 72cm 크기의 이 유화는 현재 영국 더비셔 주에 위치한 체스워트 하우스( Chatsworth House)의 조각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40년 왕립 아카데미 ( Royal Academy)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부터 대중과 비평가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으며, 19세기 가장 유명한 개 그림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작품의 영감은 랜드시어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판사로부터 들은 우연한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판사는 당시 유명한 아마추어 예술가이자 사교계 인사인 오르세 백작(Count d'Orsay)이 기르던 프랑스 푸들을 보며 "훌륭한 대법관이 될 것(would make a capital Lord Chancellor)"이라고 언급했고, 이 말은 랜드시어(1802-1873)에게 작품 구상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랜드시어는 이 작품을 통해 19세기 영국 법조계의 권위적이고 지루하며 비효율적인 측면을 해학적으로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찰스 디킨스가 소설 <블릭 하우스 Bleak House>에서 법원의 끝없는 지연으로 소송 당사자들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변호사들만 배 불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디킨스는 이 작품을 통해 책임지지 않는 제도, 기관, 계급, 인간에 대한 비판을 사건과 그 직간접적인 관련자들의 운명을 통해 보여줍니다. 종합적인 사회 비판서인 셈이지요.
Cover, Bleak House by Charles Dickens/wikipedia
작품명 <Laying Down the Law>는 문자적으로 '법을 제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법을 선포한다."또는 '누가 우두머리인지 보여주다'와 같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그림 속 푸들 판사가 권위를 과시하는 모습과 법조계의 독단적인 태도를 풍자하는 언어적 유희로 작용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배심원 재판 Trial by Jury"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작품의 법정 풍자라는 주제를 더욱 명확히 드러냅니다.
Brougham as Lord Chancellor(1830-1834)/wikipedia
화면 중앙에는 프랑스 푸들이 높은 의자에 앉아 판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푸들의 길고 풍성한 흰색 귀는 당시 판사들이 착용하던 법과 가발을 패러디하며, 법조계의 형식적이로 거만한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 푸들은 당시 대법관이었던 브로엄 경( Lord Brougham, 1830-1834 재임)이나 린드허스트경( Lord Lyndhurst, 1827-1830, 1834-1835, 1841-1846 재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랜드시어는 푸들을 통해 법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 권위 뒤에 숨겨진 인간적 나약함과 허풍스러움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 메시지는 당시 영국 법조계, 특히 영국의 형평법원(코트 오브 챈서리Court of Chancery)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코트 오브 챈서리는 유언장 분쟁과 같은 일반법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끝없는 지연과 과도한 비용으로 소송 당사자들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변호사들만 부유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랜드시어는 이러한 법률 시스템의 비효율성과 부조리함을 개들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며, 당시 사회적 비판적 시각을 대변했습니다.
푸들 판사 주변에는 다양한 견종의 개들이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로 배치되어 법정의 구성원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재판에 집중하는 듯 보이거나, 딴청을 피우거나, 졸고 있는 등 인간 법조인들의 다양한 태도를 의인화하여 보여줍니다. 랜드시어는 개들의 종별 특성 (예: 블렌하임 스패니얼, 그레이하운드 등)을 활용하여 당시 사회 계급 및 특정 인물들의 성격과 역할을 풍자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구매자인 6대 데번셔 공작 윌리엄 캐번디시의 요청으로 그의 블렌하임 스패니얼'보니 (Bony)'가 회색하운드 뒤에 '꼬리 기자( cub reporter) 역할로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당시 영국 사회와 법률 시스템에 대한 랜드시어의 날카로운 관찰력을 보여줍니다.
랜드시어(1802-1873)는 풍부한 색채와 섬세한 조명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에 깊이와 드라마를 더했습니다. 작품은 따뜻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풍부한 흙빛 톤을 특징으로 합니다. 갈색과 녹색 계열은 자연환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충성심과 변함없는 자세를 상징하고요. 빛과 그림자의 능숙한 활용은 개들의 표정과 털의 질감을 부각해, 보는 이의 시선을 장면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랜드시어의 정교한 붓질은 개들의 털과 근육의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생동감을 부여하며, 그의 해부학적 지식과 동물의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개들의 신중하고 집중하는 자세는 정의와 충성심이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조명하며, 충성심과 보호라는 공통의 특성을 강조합니다. 랜드시어는 동물을 통해 당시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무와 명예라는 도덕적 규범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q9-XtacB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