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 밥벌이

나비파 , 폴 세르지에(Louis-Paul-Henri Serusier)



소금시

 

윤성학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윤성학, <소금시> , [당랑권 전성시대], 창비, 2006






야자수 이발 시키기





Southern California에 찾아온 봄은 건조합니다. 올해는 기후 변화의 영향 탓인지 겨울비 섞인 봄비가 차갑게 자주 내려 봄인가 했더니 휘리릭 여름 땡볕으로 변해 버렸지요. 지대가 좀 높은 곳에 사는 거주민들에게 봄과 함께 소방서로부터 알림 고지서가 날아듭니다.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집 주변덤불들 깨끗이 제거하라고요. 5월에 고지대 주민들 집집마다 점검을 하러 다니고 무사히 통과해야 일 년이 편안합니다.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벌금을 물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사는 곳의 4월, 5월은 기계소리와 함께 봄이 찾아옵니다. 개인적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돼 이 부분을 몰라 소방서로부터 빨간딱지와 함께

돈 폭탄을 맞은 적이 있거든요.






무심코 버린 담뱃불, 너무 더워 전선줄 하나가 녹아내리며 바삭한 잡풀에 옮겨 붙거나, 자연발생적으로 불이 붙거나 등등 한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끄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바람까지 불면 그 피해는 엄청납니다. 오래전 제가 사는 곳에도 큰 불이나 며칠 밤낮을 헬리콥터가 떠다니고 매캐한 연기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지요. 대피령이 내려지는 순간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라 허둥댔습니다. 짧은 순간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이것저것 챙기다 낭패를 본 적이 있거든요. 이런 비상상황에 비우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가벼워지는데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죠. 아직도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그날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지요. 검게 그을린 집들, 서서 숯검댕이가 돼버린 큰 고목들, 흡사 미니 전투를 치른  것 마냥 모락모락 땅으로부터 피어나던 뽀얀 연기들 자연이 주는 뜻밖의 시련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예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이들도 있고, 남아서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며 절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고, 집이 소실되어 호텔이나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이들도 있고 참 다양한 모습을 보았던 시간이었네요.







올 4월 중순즈음 아침부터 요란한 기계음이 들려 나가 봤더니 앞 집 커다란 야자수를  이발시켜 주는 날이네요. 동영상에 대롱대롱 사람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보는 이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해 보여요. 그래도 저 꼭대기에 오를 기술이 있는 사람은 전문가 수준이지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영상을 찍으며 한국 고층 빌딩 청소하시는 분들 생각이 났아요.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 이런 워험한 일을 대체하는 유리창 청소 전문 로봇도 발명되어 그분들 일자리도 대체될지도 모른다고 들었네요. 여하튼 나무에 올라 나무 이발 시키는 일은 당분간 사람의 몫일 것  같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3D 직종이 있습니다. 그런 일의 대부분은 또  이제 갓 이민 온 이민자들의 몫으로 돌아갈 때가 많고요. 앞집 야자수 머리 깎으러 온 그들 역시 멕시코에서 온 히스패닉 이민자들입니다. 특별히 가방 끈이 길지 않으면 미국 사회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감을 잡고 버티는 거지요. 버티는 것도 실력이거든요. 그것 역시 감사할 일이지요. 함께 국경을 넘다 동료 중 누군가는 염라대왕 앞에 먼저 도착해 신고식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살아있으면 뭐든 할 수 있지요. 식구들 입에 생체 에너지 빵빵하게 넣어주려면 말이죠. 남미출신 이민자답게  내일은 없는 것럼 삽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 을 희생하는 한국식 사고체계와 정 반대편에 있지요. 이민초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을 했지요. "저러니까.... 하지." 라며 말입니다. 살다 보니 슬그머니 그들을 향하던 손가락질을 내려놓게 됩니다. 오늘도 걱정하느라 바쁘고 오지 않을 내일일도 미리 보기로  또 걱정하는 저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거든요. 명품 옷에 자신의 몸을 끼워 맞추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을 때 히스패닉 여인네들은 자신의 울퉁불퉁 엠보싱 몸매에 옷을 끼워 맞춰 입고 남미 특유의 섹시함을 어필합니다. 보는 이의 눈만 살짝  불편할 뿐이지요.












이발한  야자수가 말끔해졌네요. 까딱 잘못하면 바삭한 야자수 나무에 불이 붙어 집으로 삽시간에 옮겨 붙기 때문에 피해를 미리 줄이기 위해 해 주면 좋은  작업들입니다. 기술이 있는 친구는 저렇게 꼭대기에 깎는 도구를 매달고  솜씨 발휘를 하고, 초보자는 사진 속 무명 씨처럼  야자수를 올려다보며 오르지 못할 나무에 현기증이 나지요. 털털거리는 낮은 중고차에 온갖 장비 주렁주렁 매달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일을 분담합니다. 한국의 70-80년대 정서를 그들 무리에서 발견할 때도 있고요. 살 던 곳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에 맞닥뜨리는 삶은 고단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하니까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데 비주류다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주류들은 하는 것 없는데 에스칼 레이터 타고 우아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차별은 늘 이민자들 곁에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다릅니다. 숫자가 많아 커뮤니티 리더도 쉽게 나오고, 활동적이어서 정치인도 나오며, 영화계에 인플런서도 나와 조용한 한국계 이민자들보다 영향력이 크고 넓습니다. 위험하고 더럽고 이른바 '흙길'을 걸어가는 이들이지만 '꽃길'도 흙이 있어야 가능한 시간임을 그들의 삶을 통해 확인합니다.







폴 세뤼지에, 사탕장수, 1894, 구글아트 앤 컬처






나비파(Nabi) 폴 세뤼지에(paul Serusier)의 작품 <사탕장수>입니다. 우산을 쓴 걸 보니 비가 오나 봅니다. 허름한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들이 비를 맞지 말라고 커다란 검정 우산을 펼쳤지만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비가 내리니 오고 가는 행인들의 발길마저  뚝 끊어졌고요. 어쩌죠, 이걸 팔아야 일용할 양식을 사 새끼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텐데 말입니다. 어쩔 줄 모르는 눈,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고갱을 만나 이후 그려진 그림이라 입체감이나 공간감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순화되고 평면적으로 변해 고갱을 만나기 전 그림들과 비교해  장식적인 그림이 돼버렸네요.

개인적으로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뽑기를 해주시던 아주머니들 생각이 났어요. <오징어 게임> 작품에도 나오 던 그 뽑기 말입니다.







 프랑스 화단이 인상주의 이후 새롭고 진취적인 예술을 갈망하는 젊은 작가군단이 등장합니다. 가장 선봉에 선 화가가 바로 폴 세뤼지(Paul Serusier)에 이고요. 그는 24살 때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에서 당시 그곳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하던 폴 고갱(Paul Gauguin)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있는 동안 그의 인생이 100%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폴 고갱은 주식 중개인 출신으로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 늦깎이로 화가가 된 후기 인상파로 불리는 작가입니다. 당시 인상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모네, 마네, 르느아르, 드가와 결이 아주 다른 개성을 지닌 화가였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이 중요시하는 외관, 빛에 의한 섬세한 색채의 변화와 자연 묘사를 버리고 자신의 내면과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장식적인 화풍에 집중합니다. 고갱은 사람의 기억을 통해 대상을 점차 단순화해서 그리다 보면 결국 그 단순화된 것이 자연에 대한 종합적인 인상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요. 고갱의 이런 주장에 깊은 영향을 받은 화가가 폴 세뤼지에입니다.







부적(The Talisman by Paul Serusier: 사랑의 숲 속의 우물),1888, 구글아트 앤 컬처





무엇이 보이나요? 초록색, 주황색, 노란색을 나타내는  색 덩어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요. '이게 그림이야. 애들 색칠하다 망친 것 아니야.'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의 경관이나 인물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마치 사진을 찍듯 사실처럼 묘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었답니다.





베끼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서
원색을 사용하라.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키우는 데 주저하지 말라.



나무는 어떻게 보이는가?  
 초록색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초록색을  칠하라.
팔레트에서 가장 순수한 초록색을  칠하라.
그림자는 어떤가? 그림자는 약간 파랗지 않은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가장 순수한 파란색을 칠해 보아라.
붉그스레 한 잎사 귀에는 주홍을  칠하라.






이런 고갱의 조언에 맞춰 그려진 그림이 바로 <부적>입니다. 말만 들어도 그림 그리는 이의 스트레스가 확 줄어드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이 작품 하나로 기존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당시 젊은 작가들이 찾았다는 거지요.  굳이 정확하게 그리지 않아도 인간의 사고를 통해 화가가 무엇을 그리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해방감으로 작용했답니다. 그래서 나비파(Les Nabis)라는 이름으로 자주 모였고 대부분 유복한 중산층 출신의 지적인 지식인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뤼지에는 특히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것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순수하고 강렬한 원색을 사용했던 고갱처럼 그의 그림에도 비슷한 분위가 느껴집니다.  멘토역할을 하던 고갱이 타이티로 떠나게 되고 자연스레  나비파(1891-1899)도 와해되어 1900년 이후 각자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2. 짧고 굵게 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