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발바닥 사랑, 나눔 문화
박노해 시인의 <발바닥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사랑이 머리, 마음 등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생각은 늘 변덕스럽습니다. 우리 마음은 또 어떤가요? 맑고 흐리고,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여인의 감정처럼 변하기 쉽습니다. 시인은 발바닥과 같이 더 단단함 속에서 '사랑'이라는 신실한 뿌리를 찾아낸 모양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발바닥은 단순히 물리적인 몸의 일부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이지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시인은 사랑을 행위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과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발로 직접 돌아다니며 당대의 풍경을 그렸 던 사실주의 화가 페데르 모크 몬스테드(Peder Mork Monsted, 1859-1941)와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 1839-1899 ) 작품을 살펴볼까 합니다.
덴마크 출신의 이름도 어려운 페데르 모크 몬스테드(Peder Mork Monsted, 1859-1941)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곳 풍경을 사진을 찍듯 그린 화가입니다. 반면, 프랑스 출신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1839-1899)는 몇 차례 영국을 여행한 것을 제외하면 전 생애를 프랑스에서 보낸 화가입니다. 자신이 머물던 프랑스 주변을 인상주의 스타일의 풍경화로 남겼습니다.
19세기 그림 속 장면이 21세기를 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집니다. 화가들이 발품팔아 걷고 그리던 공간은 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오는 동안 무수히 변했을 겁니다. 우리 삶의 모습도 적잖이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덩치 큰 자연만큼은 붙박이처럼 오늘도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지치고 힘든 이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토닥여 줍니다. 언제든 네 마음 내킬 때 쉬어가도 좋다는 듯이 말입니다.
시절이 좋아 화가들이 다녔던 곳의 해당 영상들을 Youtube 를 통해 얻을 수 있어 함께 실었습니다.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점쯤 화가의 시선과 마주치는 곳에서 잠시 머물러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은 늘 배경이 되어 인간의 삶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어와 있으니까요.
유럽 미술계에서 변방이라면 아무래도 이탈리아나 프랑스로부터 지리적으로 좀 떨어진 나라들이 되겠지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들과 더불어 덴마크는 17세기까지 네덜란드 또는 독일을 거쳐 유럽 중심의 미술들이 전해지는 변방이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 드디어 덴마크 거리의 풍경이나 일상의 모습들이 담긴 풍속화가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통해서 국가적인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게 된 이 시기를 '덴마크 문화의 황금시대(1790-1850)'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덴마크의 예술과 문화적 창조성이 크게 발전한 시기로 덴마크의 그림,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성취를 이루어낸 시기입니다. 특히 회화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였습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활동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시기이고, 덴마크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시기입니다.
이 황금시대가 끝난 얼마 후 당대 최고의 풍경화가라고 평가받는 페데르 모크 몬스테드(Peder Mork Monsted, 1859-1941)가 태어납니다.
덴마크/나무위키
그는 덴마크 동부의 그레노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처음 미술 공부를 시작한 곳은 오후스(Aarhus)라는 곳이었습니다. 1875년, 열여섯이 되던 해 코펜하겐 아카데미에 입학, 인물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에게 처음 영향을 준 선생님은 궁정 화가였던 프리쯔(A. Fritz)였는데 풍경화와 인물화의 대가였다고 합니다.
몬스테드는 1879년까지 코펜하겐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를 지도 한 여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색채주의자도 있었고, 낭만적인 자연주의 화풍을 가진 분도 있었죠. 사실주의 화풍으로 프랑스 아카데미 회화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하나인 윌리엄 부게로(William Adolphe Bouguereau, 1825-1905)의 화실에서도 잠깐 배웠습니다. 여러 화풍을 두루 거쳤지만 몬스테드는 그것을 조합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왼쪽: Unloading Stone from a Barge at Ouchy/ John Mitchell Fine Paintings 오른쪽. The Seine at Suresnes, 1877/WikiArt.org
Lausanne 2001/All Conference: The 20th Annyal Course on International Law Librarianship
몬스테드의 < 바지선에서 돌을 하역하다, 우시 Unloading Stone from a Barge at Ouchy> 작품입니다(왼쪽). 그림 왼편 아래쪽으로 커다란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그 돌을 나르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거울처럼 투명한 물살에 맞은편 만년설에 덮인 산들이 우아하게 펼쳐져 있고요.
우시(Ouchy)는 스위스 레만호 주변에 있는 작은 항구 이름입니다. 그림 속 우시항은 별 볼일 없는 모습이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의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과 요트가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이로운 자연 앞이라면 힘든 노동의 시간이 힐링의 시간처럼 느껴졌을지 모르겠네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는 듯한 몬스테드의 이 작품은 단순히 풍경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쯤 귀 기울여 보라고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NwSj911Sfw
Suresnes/Blog des histoire de I'art de Baudelaire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 1839-1899)의 < 쉬렌의 센강 The Seine at Suresnes>( 1877) 작품입니다(오른쪽). 파리 서쪽에 자리를 잡은 쉬렌(Suresnes)은 시슬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입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고 그 위로는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보입니다. 그림의 2/3를 하늘로 처리해서 그림 전체에 담은 빛은 그 어느 작품보다 풍부합니다. 구름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고 떠내려 가는 작은 배 한 척, 하늘을 그대로 담은 강물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갑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흔히 다루던 주제로 강가 주변의 경치와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로 담았습니다.
France/ FeePik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 1839-1899)는 영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나고 자란 곳은 프랑스였지만 두 차례의 시민권 거부로 인해 그의 국적은 끝까지 영국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버지는 실크 사업으로 부를 이룩했고 어머니는 음악 전문가였습니다. 시슬레의 아버지는 아들을 자신과 같은 사업가로 키우기 위해 시슬레가 열여덟이 되던 해, 그를 런던으로 보냅니다.
사업에 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에 왔지만 시슬레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기 싫은 사업 공부를 하느라 4년을 보내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바로 에콜드 보자르에 입학합니다. 스위스 출신의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1806-1874)의 지도를 받게 되는데 어떤 평론가들은 샤를 글레르를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도한 학생들이 훗날 인상파의 주축이 되거든요.
시슬레는 글레르의 화실에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르누아르( Auguste Renoir, 1841-1919), 바지유(Frederic Bazille, 1841-1870)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친구가 됩니다. 화실보다는 함께 어울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스승인 글레르의 지도 방법이기도 했지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법이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는 낯선 기법이었습니다. 2년 후 스승이 에콜드 보자를 떠나자 시슬레도 학교를 그만둡니다. 퐁텐블루 숲을 찾아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생활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Under the Lamp by Marie Bracquemond, 1877/wikimedia commons 오른쪽 Alfred Sisley with his wife(Eugenie, Lescouezec), portrait painting by Pierre Auguste Renoir,1868 /wikipedia
눈에 익은 그림이지요. 왼쪽은 동료 화가였던 마리 브라크몽이 그렸고, 오른쪽은 르누아르가 그린 알프레드 시슬리 부부의 모습입니다.
결혼을 하고 시슬레는 파리 살롱전에 입선이 됩니다. 그 후로 1868년과 1870년에도 입선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작품이 팔리는 것도,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쿠루베와 코로, 다비니의 사실주의 영향을 받아 무거운 색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대기와 변화하는 빛을 작품에 담는 기법은 인상주의 기법이었지요.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의 피해를 본 인상파 화가들이 몇 있는데 바지유 같은 경우,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시슬레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도 보불전쟁으로 인해 막을 내렸고 아버지로부터의 지원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시슬레는 이제 그림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슬레의 그림을 팔리지 않았고 그의 가난한 생활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보불 전쟁의 여파로 1871년 파리코뮨이 결성되고 다시 파리가 어수선해지자 시슬레는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자인 미술거래상 뒤랑 뤼엘을 만나게 되는데 이후 뒤랑 뤼엘( Paul Durand- Ruel, 1831-1922)은 시슬레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Paul Durand -Ruel by Auguste Renoir,1910/wikipedia
뒤랑 뤼엘( Paul Durand-Ruel, 1831-1922)는 19세기 저명한 미술상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요. 1831년 태어나 아버지의 화랑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1865년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인상파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뒤랑 루엘은 인상파 화가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인상파 화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고, 루엘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는 모네와 피사로와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이고 전시회를 열어 그들의 작업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뒤랑 루엘의 노력으로 인해 인상파 화가들은 아카데미의 압박에서 벗어나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지 못한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판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당시의 미술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몬스테드의 작품은 파리와 뮌헨의 살롱에서 자주 전시되었습니다. 그가 아카데미에서 받은 폭넓은 교육 중 하나는 자연주의 순수한 기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기법을 몬스테드는 자신의 화법으로 만들었는데, 사진과 같은 사실적 묘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왼쪽.Washer Women,Torbole/Pictorem.com오른쪽.The Bridge at Villeneuve-la-Garenne,1872/wikipedia
Torbole Maps/SNO
몬스테드의 <빨래하는 여인들 Washer Women, Torbole > 작품입니다. 토볼레(Torbole)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가르다 호수 주변 마을 중 하나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정서를 함께 담아낸 작품입니다. 낯선 그녀들의 모습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여 낯섦이 이내 반가움으로 변하는 그림 속 풍경입니다. 배 한 척이 지척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배가 닿는 곳인 가 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동네 아낙들이 많이 나왔나 봅니다. 빨래터가 좀 모자라는 모양새입니다. 빨래를 내려놓고 서 있는 여인도 보이고, 아예 계단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반가운 두 사람이 만났는지 빨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를 떨기 바쁜 모습도 우리네와 비슷합니다.
식구들의 옷일 수도 일거리로 맡은 빨랫감일 수도 있지만 이 공간을 통해 그들은 일상을 공유하고 수다를 떨며 덜어낸 만큼의 생생한 에너지를 담아 일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화가는 여성들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활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6tIiXOkE5Q
https://www.youtube.com/watch?v=z4z9qbUExZw
Villeneuve-la-Garenne/Epaviste Gratuit
시슬리의 < 빌뇌브 라 가렌의 다리 The Bridge at Villeneuve-la-Garenne>(1872) 작품입니다. 파리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10km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를 묘사한 이 작품에서 시슬레 작품의 특징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동안 프랑스에서 다리를 보러 다니는 관광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색 있고 멋진 다리가 관광상품이 된 것이지요. 물론 빌뇌브 라 가렌의 다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하늘에 담긴 빛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반짝거리는 물과 시원한 구도를 통해서 마치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왼쪽. On the Venetian Lagoon,1928/Artchive오른쪽.The Bark during the Flood, Port Marly/PubHist
Map of Venice and surrounding Islands in the Venetian Lagoon Stock Photo/Alamy
몬스테드의 <On the Venetian Lagoon>(1928) 작품입니다.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트 교회가 멀리 보입니다. 몬스테드 화풍의 한 뿌리는 인상파에 닿아 있다는 평가가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확실해 보입니다.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물결 위로 햇빛 한 줌이 수면 위로 찰랑거립니다. 그 흔들림 속으로 곤돌라를 젓는 사공의 노랫소리가 운하를 건너 아드리아 해로 번져 갑니다.
20세기 초에도 몬스테드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프랑스를 도는 여행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 스칸디나비안 화가들에게 유럽 남부로의 여행은 영혼을 살찌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20세기 초 몬스테드의 여행 경험과 인상파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예로, 베네치아의 풍경을 통해 그의 시각적 감각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여행의 길고도 풍부한 경험이 그의 화풍에 기여했으며, 이는 작품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G9ZIPjTzQ
1872년 12월, 알프레드 시슬리는 파리 서쪽 교외의 마를리 항( Port-Marly)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이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Flood at Port-Marly, The Paris version,1876/wikipedia
Flood at Port-Marly, The Rouen Version, 1876/wikipedia
Flood at Port-Marly, The Madrid Version , 1876/wikipedia
Le Port-Marly/Outdooractive
작품의 구성은 전통적이며, 왼쪽에는 레스토랑과 오른쪽에는 기둥이 인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안정된 풍경을 제공하며, 나무와 먼 언덕으로 연결되는 길을 형성하여 관람객을 작품의 깊은 곳으로 안내합니다. 시슬리는 이 작품을 현장에서 재빠르게 그린 것으로 보이며, 다양한 색조의 미세한 붓놀림을 활용해 자연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작품의 수채화 같은 질감과 다양한 색의 사용은 시슬리의 성숙한 인상주의 작품의 특징입니다. <Flood at Port-Marly>를 다시 그린 1876년의 작품은 이전의 1872년 작품과 사실상 동일한 구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시슬리가 이 주제를 즐겁게 여기고 있었으며 해당 작품이 그의 작업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시슬리는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다루며 회화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왼쪽. The Ravello Coastline, 1926/Wikimedia Commons
Amalfi Coastline map/ Exquisite Coasts
몬스테드의 <라벨로 해안 The Ravello Coastline>(1926) 작품입니다.
라벨로는 이탈리아 아말피 근처에 우뚝 솟아 있는 곳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은 해안선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언덕과 푸른 바다의 조화가 특징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안선 풍광은 시인들이 죽을 때가 되면 이곳을 찾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아마도 세상의 마지막 비경을 가슴에 담고 싶은 이유 때문이겠지요. 음악가인 바그너, 문학가 보카치오와 버지니아 울프도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품에서 자연의 색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햇빛에 비친 물결이 조화를 이루며 몬스테드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가 돋보입니다. 작가는 물결이 반사하는 햇빛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순간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한 그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IXtmRas18
몬스테드는 평생 동안 여행을 즐겼습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코펜하겐에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지만 말입니다. 1882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그다음 해인 1883년에는 파리, 1884년에는 스위스와 북 아프리카를 오랜동안 여행했습니다. 그의 여행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죠.
On the ourskirts of Cairo, 1893/Arthive
Egypt map Vector Images/Depositphotos
몬스테드의 < On the outskirts of Cairo>(1893) 작품입니다. 추운 곳에만 살았던 화가가 참 멀리까지 왔습니다. 야자수가 있고, 낙타를 탄 모습, 그리고 여인들... 등등 지금도 낯선 그들의 모습이 그 당시 화가에겐 얼마나 독특하게 다가왔을까요? 문화충격을 겪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낯섬도 잠시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새일 테지요. 이집트 카이로의 외곽을 배경으로 하며, 오른쪽에는 푸른 나일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몬스테드는 이 그림을 통해 카이로의 일상적인 풍경과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풍경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Pz6sGMfenA
왼쪽.View of Lake Lucerne오른쪽. View of Saint-Mammes,1880
몬스테드의 < 루체른 호수 View of Lake Lucerne> 작품입니다(왼쪽). 이 작품은 호수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려진 풍경화로, 몬스테드의 독특한 화풍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작품은 스위스의 루체른(Lucerne) 호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루체른 호수는 알프스 산맥에 위치해 있고, 주변의 장대한 산들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몬스테드는 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여행을 고집했나 봅니다. 현장에서 얻은 영감만큼 생생한 것은 없을 테니까요.
루체른 호수의 잔잔한 수면과 그 위에 비치는 산의 모습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몬스테드는 소프트하고 자연스러운 색상 배치를 사용하여 풍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자연광과 그에 따른 색상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였으며, 이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드러운 붓 터치로 자연의 섬세한 요소를 강조했고요. 그가 스칸디나비안 풍경 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게 해 준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sJ9ngAlxM
1880년, 시슬레는 파리 근처에서 살다가 퐁텐블로 숲 근처의 모레 쉬르 루앙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갑니다. 평화로운 풍경과 부드러운 대기는 시슬레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4pHHpCttcM
St-Mamme's/ France-Voyage.com
< Saint Mammes>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항구 도시로, 세느 강과 루앙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합니다. 시슬리는 이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그린 풍경화 시리즈 중 하나로, 물류와 바지선 교통의 중심지인 이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시슬리의 전형적인 인상파 기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슬리는 순수한 색상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물결 모양의 붓질로 배경의 강과 환경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빛의 효과와 색상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종종 조용한 풍경이나 일상의 순간을 다루며,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성향을 계승하고 있고요.
페데르 모크 몬스테드(Peder Mork Monsted, 1859-1941)의 시선을 통해 지구촌을 누비기도 하고 , 알프레드 시슬리( Alfred Sisley, 1839-1899)처럼 가까운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그들이 전해주는 풍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두 화가들에게 자연은 번득이는 영감과 일상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잡히는 물성을 지닌 자연을 접하기가 힘들지요. 태어나자마자 스마트 폰이나 테크 기계에 노출되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력한 플랫폼에 이리저리 노출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부작용도 많아 보이고요. 오히려 테크기업 직원들은 이런 노출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자제시키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아이러니 같습니다.
뒷걸음질 치며 살 수는 없기에 매 순간 최첨단의 기술이나 지식을 허겁지겁 받아먹습니다. 물성을 지닌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느리고 불규칙한 현상도 필요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한쪽으로 쏠리기 쉬운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대안으로 말입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는 해결책과 분명 다를 테니까요.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기동찬 해결책이 숨 한 번 내 쉴 때마다 가볍게 영감이란 이름으로 스칠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fbAGJg73RM
https://www.youtube.com/watch?v=BRZjQfz8xGQ
https://www.youtube.com/watch?v=55ay41J6C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