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수도의 구불구불한 주름 속,
모든 것이 , 공포마저도 매혹으로 변하는데,
나는 내 타고난 성미에 못 이겨 숨어 기다린다,
늙어 빠져서도 매력 있는, 기이한 생명들을.
(...)
망가졌어도, 그 눈은 송곳처럼 꿰뚫으며,
한밤의 물 고인 웅덩이처럼 번들거리니,
반짝이는 것에는 어느 것에나 놀라 웃어대는
소녀의 거룩한 눈을 그들은 지녔다.
-<키 작은 노파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중 -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의 "키 작은 노파들"은 그의 시집 <악의 꽃>(1857)에 포함된 작품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시집으로, 현대 시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지요. 초판은 공중도덕과 미풍양속을 문란케 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아 여섯 편의 시가 강제로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삭제된 여섯 편을 수정해 내놓는 대신 서른다섯 편의 시를 더하고 구성을 달리하여 1861년에 재판했습니다. 주로 인간 존재, 고뇌, 사랑,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한 보들레르 특유의 세계관과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악의 꽃>은 총 51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고, 6개의 나름의 주제와 감정적 흐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은 배경지식 없이 펼쳐 들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지적 호기심으로 골라놓으셨다면 몇 장 읽어 내려가다 덮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번역자의 해설에 절대 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무튼 고통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듯이 그는 첨예한 대립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 존재의 복잡함을 표현합니다.
여성혐오증이 있는 그에게 있어, 작품 속 노파들은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자 그의 시에서는 우호적인 시선을 받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보들레르의 시적 소재가 되어준 여인, 아이, 예술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인의 아름다움은 찬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위험하고 악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보들레르입니다. 그런 그가 젊은 육체에서 벗어난 늙은 여인의 몸에서 어떤 성숙함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어릴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젊은 과부가 된 어머니의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며 썼는지도 모를 일이고요. 오늘은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구스타브 모로(Gustave Noreau, 1826-1898)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작품을 찾아가 봅니다.
구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u, 1826-1898)가 1850년대에 일하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 회화에서 지배적인 몇 가지 조류가 있었습니다. 실제 인물과 주제의 묘사를 강조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사실주의 와, 눈이 본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자연주의, 그리고 인상주의가 있었습니다.
나는 만지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내가 느끼는 것뿐이다.
-구스타브 모로-
인상주의가 득세해 가던 1880년대 이후 등장한 '상징주의 '의 지향점을 밝힌 모로의 한 문장입니다. '사물의 보이는 모습을 넘어선 숨겨진 진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어떤 의도나 계획에 의해 모였다기보다는 아카데미즘, 인상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산업 문명 자체를 비판하면서 나타난 사조입니다.
그들은 인간 내면의 감정, 욕망, 감각과 꿈과 신화의 시각적 표현이 1차적 목적이었습니다. 즉, 상징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모방'을 통한 사물을 재현하는 미술에 종말을 고한 사조이기도 합니다. 주제면에서도 고전주의나 인상주의와 결을 달리합니다. 인간 내면의 감정과 감각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했으니까요. 성경, 신화, 꿈, 전설, 그리고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도 다양합니다. 탐미적인 경향도 지니고요.
상징주의 미술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는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 퓌비 드 샤반(Pierr puvis de Chavanes,1824-1898),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과 주제를 탐구하며 상징주의의 틀 안에서 다양성을 발휘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STiM4ibntE
구스타브 모로는 신화와 상상 속에 대한 집착 혹은 원초적인 관념 등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재성, 물리적 세계의 불완전성 등을 강조하던 플라톤의 사고에 동양적인 표현을 더해, 보이는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시각적 상징들을 세상에 불러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pZ119KXT8M
귀스타브 모로 파리 국립 미술관( Musee national Gustave-Moreau,Paris)입니다. 상징주의 화가 모로( Gustave Noreau, 1826-1898)의 작품 전용 미술관이지요. 프랑스 파리 9구의 라 로슈푸코 길 (rue de la Rochefoucauld14)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원래 모로의 거주지였습니다. 1895년 그의 결정으로 스튜디오와 1층 아파트가 그의 작품 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곳에는 모로의 생생한 그림과 드로잉, 수채화 및 조각품이 소장 전시되고 있습니다. 생전에 이 집 문턱이 닳도록 출입하던 사람 중에는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로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이 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는 (1826-1898)는 평생 동안 8,000 작품 이상의 그림, 수채화 및 드로잉을 제작했습니다. 부유한 중산층의 아들이었던 모로는 특별히 그림을 팔 필요가 없었고, 게다가 그의 생전인 1903년에 자신의 기념 미술관을 연 덕 분에 대부분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이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Musee Gustave Moreau/Pinterest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1826-1898)는 1826년 파리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축가인 그의 아버지는 모로가 고전 교육을 받도록 하였고, 재능 있던 음악가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허약하기만 하던 모로를 정성을 다해 헌신적으로 돕습니다. 13살 때 누이인 카밀이 병으로 죽었고, 모로도 병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 15세 때 모로는 부모 덕분에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르고 그곳에서 비잔틴 유물을 포함해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맛보게 됩니다.
파리에 돌아와 에콜 데 보자르에서 3년 간 공부했습니다. 1848년과 1849년 두 번, 그는 프랑스 예술원이 수여하는 유명한 로마대상 (Prix de Rome) 후보에 올랐지만, 두 차례 모두 실패합니다. 모로는 로마 대신 몇 년 동안 루브르 미술관에 처박혀 그림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851년 모로는 테오도르 샤세리오 (Theodore Chasseriau, 1819-1856)와 친구가 되었는데, 이 친구는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ninique Ingres,1780-1867)의 문하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길 14번지의 이 친구 집 바로 옆에 3층짜리 건물을 사서 스튜디오와 화실로 꾸며 주었고 이 집이 오늘날 모로 미술관( Musee National Gustave Moreau)입니다.
The Two Sisters by Theodore Chasseriau,1843/Beaux Arts Magazine
친구이자 멘토인 테오도르 샤세리오( Theodore Chasseriau ,1819-1856)와 5년을 넘도록 사귀며 함께 그림을 그렸던 이 귀중한 시기가 모로에게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적 미학의 요소를 자신의 바탕으로 삼았던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테오도르의 작품 속 누나 아델(31살)과 여동생 알린(21살)의 모습입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보이는 그녀들은 언뜻 봐서 구분이 어렵습니다. 장미를 든 모습이 누나 아델입니다. 고전주의 대가 앵그르에게서 벗어나면서 점차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자의 대표자인 위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천재는 박명하다고 모로의 친구이자 멘토 테오도르는 1856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멘토이자 친구였던 샤세리오(Chassriau)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잠긴 모로는 이탈리아로 가서 르네상스시대의 걸작 예술을 연구하면서 광범위하게 여행을 시작합니다.
왼쪽. Oedipus and the Sphinx,1864/wikipedia 오른쪽. The cyclops, 1914/wikipedia
Simplykalaa
영웅의 가슴을 발톱으로 기어올라가는 스핑크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전 그림 속 스핑크스와 사뭇 다른 모습이지요. 상체 부분만 클로즈업하면 마주 선 두 사람은 마치 연인 같습니다. 하지만 그림 아랫단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그녀에게 희생된 수많은 피해자들의 툭 튀어나온 손과 발을 통해서 말입니다.
모로(Moreau)의 성숙기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그리스 신화의 명장면을 과감하고 새롭게 해석한 작품입니다. 비극적인 영웅 오이디푸스가 코린트(Corinth)에서 막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Laius)를 죽이고, 자신도 모르게 신성한 예언을 이행하면서,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Jocasta)와 결혼하게 될 곳, 테베(Thebes)로 가는 도중에 맞닥뜨립니다. 여자의 머리와 젖가슴, 희생된 새의 화려한 깃털, 사자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스핑크스가 다가와서 말을 걸고 있는 장면입니다.
모로는 많은 화가들로부터 계승된 역사화의 비유를 훨씬 뛰어 넘어서 상징적인 디테일의 밀도와 모호함을 제공합니다. 모로에게 대중들과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졌던 작품이고요. 모로는 이 작품에서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작품에 깊이와 복잡성을 부여했습니니다. 그의 색채 사용은 감정의 미묘함을 전달하며, 신화적 장면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품은 복잡한 구성과 상징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으며, 오이디푸스의 담대함과 스핑크스의 매혹적인 위협이 조화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스승인 앵그르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08-27)의 작품과 비교해 봅니다.
Oedipus and the Sphinx by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08-27/Louvre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낮에는 두 개, 저녁때는 세 개인 것은? "
"사람"
"두 자매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서로를 다시 낳는다, 둘은 누구인가? "
"낮과 밤"
근육질의 자신감 넘치는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조목조목 맞히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오이디푸스의 모습에 스핑크스도 짐짓 놀란 모양입니다. 어둠 속에 몸의 일부만 빼꼼히 드러난 걸 보면 말입니다.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그의 스승인 신고전주의 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림입니다.
앵그르는 대칭과 비례를 중시하며, 인물의 표현에서 강렬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서도 이러한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인물의 자세와 표정은 고전적이면서도 극적인 느낌을 주며, 앵그르는 이것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은 색상 대비와 명암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인물 간의 긴장감을 강조합니다. 오이디푸스의 결단적인 표정과 스핑크스의 위협적인 자세는 서로 대립하는 느낌을 주고요.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on Redib, 1840-1916)은 꿈과 환상의 세계를 그린 화가입니다. 르동의 그림은 모네, 세잔, 고흐 등 동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것은 현실 저 멀리에 있는 환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으로 꿈, 무의식, 환영의 이미지들이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는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환영과 환상 그리고 상상의 파편으로 가득 채워진 르동 특유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Bordeaux/ Melbourne Wine House
와인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출신입니다. 1840년 르동은 어머니의 지병으로 태어나자마자 인근 메독 지방 페이럴베이드의 외삼촌 집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1살까지 지내게 됩니다. 타고난 병약함과 외로움, 어색한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울하고 내성적인 소년으로 성장합니다. 혼자였던 르동은 고독 속에서 시, 철학, 미술 등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점차 현실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관찰자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자신이 구성한 세계 속으로 들어갔고 문학과 자연의 신비를 연결고리로 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창조,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The Cyclops(Redon),1914/wikipedia
그리스 신화를 알면 그림이 더 잘 읽힙니다. 오딜롱 르동의 작품 <키클롭스The Cyclops>(1914)는 고전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으로, 폴리페모스(polyphemus)가 갈라테이아(Galatea)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인 바다의 요정 갈라테이아(Galatea)가 목신 판과 강의 요정 사이에서 태어난 목동 아키스(Acis)를 사랑하는데 이때 갈라테이아를 사랑하는 키클롭스(Cyclops: 외눈박이 거인)족 폴리페모스(polyphemus)가 이를 보며 그들의 사랑을 질투합니다. 목동 아키스(Acis)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질투한 폴리페모스는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그들에게 바위를 던져 아키스를 바위에 깔려 죽게 합니다. 오직 갈라테이아만 살아남아 죽은 애인의 피를 강으로 변화시켜 그 강을 관장하는 정신이 되게 합니다.
폴로페모스(polyphemus)는 본래 부정적인 관념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 작품 속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의 모습이 아니라 다가갈 수 없는 여인을 잃어버린 우울한 존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 눈으로 사색하며 지긋이 응시하는 모습은 숫기 없는 선한 모습으로 애잔한 느낌도 듭니다. 반면 갈라테이아는 거인이 들어갈 수 없는 아주 좁은 동굴 속으로 피신하여 진주빛을 발산하며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르동의 이 작품은 고전 신화에서의 키클롭스라는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아키텐 지역의 민속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인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키클롭스>는 판지 위에 유채로 그려진 후 나무에 부착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법은 르동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반영하며, 그가 사용하는 독특한 색채와 조명 효과는 작품의 감정과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신화의 재현을 넘어서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르동은 이야기를 통해 폴리페무스의 갈망과 두려움을 표현하며, 갈라테이아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녀의 무관심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은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이와 같이 오딜롱 르동의 <키클롭스>는 신화적 요소와 개인적 감정, 그리고 예술적 기법이 어우러져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0LSI1hBo90
왼쪽. Orpheus,1865/ pinterest 오른쪽. Closed eyes, 1890/오르세 미술관
같은 제목의 레비의 <오르페우스 죽음 Death of Orpheus>(1866) 작품과 비교해서 보겠습니다.
Emile Le'vy, Death of Orpheus, 1866/Wikimedia Commons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 (Orpheus)는 리라의 명수입니다. 그의 수금 소리 연주는 산천초목은 물론 짐승까지도 감동시켰습니다.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 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수금을 연주해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키고 눈물짓게 해 아내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러나 오는 길은 간단치 않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게 됩니다.
슬픔에 잠긴 오르페우스는 도취 상태로 산과 들판을 헤매고 다니면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며 미친 듯이 춤추고 노래하던 마이나데스(Maenads) 패거리들에게 목이 잘리고 그 머리는 바다에 던져집니다. 오르페우스의 목은 흐르고 흘러 그리스 북방 레스보스( Lesbos) 섬까지 가게 되고 트라키아( Thracian ) 여인에게 발견됩니다.
작품 속 화면의 우측은 확 트인 공간을 따라 멀리 떨어진 강이 보입니다. 좌측은 큰 바위로 막혀있고요. 이렇게 대조적인 배경에 그려진 젊은 트라키아여인의 팔 위에는 리라가 있고, 그 주위에는 비극의 주인공인 오르페우스의 머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 장면은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 위에 담는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이교도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로가 그 당시 고고학 간행물이나 일상적인 여행담 속에서 찾아낸 모티프로서 , 자신의 느낌과 이러한 장식물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과학적으로' 신화를 재현한 작품입니다.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작품<Closed Eyes>(1890)입니다. 이 작품은 르동의 색채 변화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입니다. 모델은 화가 르동의 아내 카미유(Canille Falte)이고요.
상징주의 그림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어깨를 드러낸 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듯한 여인은 마치 바다의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평온함 느낌입니다. 감은 눈은 세상과의 단절을 나타내기도 하고요. 내부를 관조하는 듯한 꿈과 같이 신비롭고 모호하고 암시적인 이미지이입니다. 특히, 여성의 얼굴을 둘러싼 다양한 색채가 감정을 강조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끕니다.
왼쪽. The Apparition(환영), 1876/wikipedia 오른쪽 . Eye Ballon, 1878/Arthur.io
Gustave Moreau / Smarthistory
구스타브 모로(Gustave Noreau, 1826-1898)의 <환영 The Apparition>(1876)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조리-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가 장르를 정립한 소설, <거꾸로 A Rebours,1884>에서 이 그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후 미술과 문학 모두에서 상징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경내용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은 유대의 헤롯(Herod) 대왕이 그의 친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Herodias)와 결혼하는 것을 비판하자 감옥에 갇힙니다. 헤롯은 그를 처형하는 것에 대해 주저했지만, 여왕은 단호했고, 왕의 생일을 계기로 그녀의 계획을 밀어붙입니다. 그녀는 왕의 생일파티에서 그녀의 딸 살로메(Salome)에게 춤을 추게 했고, 아름다운 청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호의로 요청했습니다.
모로는 풍부한 세부적인 건축 환경 안에 다수의 작은 형상들을 배치했습니다. 세례자의 머리는 일반적인 회화에서처럼 쟁반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광채를 내며 공중에 떠 있습니다. 매혹적인 자태의 살로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말입니다.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 같기도 하고요. 이러한 구성으로 모로는 여러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신화나 성서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화폭에 담았던 모로는 살로메를 통하여 마력을 지닌 여성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상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다른 역할로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모로의 화풍은 그 당시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했을 때 독창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색감이 특징적입니다. 그는 보통 강한 대비 색상을 사용하여 감정적이고 극적인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 환영 The Apparition>에서도 그러한 색상의 활용이 두드러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LIna Munte as Oscar Wilde's Salome in its first production/wikipedia
성서 속 모티브는 화가, 작가, 그리고 음악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당시 유럽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Salome'에 열광하던 시절입니다. 발표 당시 극심한 논란을 일으켰지요. 미국의 한 신문에서는 이 작품이 "불쾌한 창작물"이라고 혹평까지 했습니다.
한 겹 한 겹 헤롯왕 앞에서 벗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는 이 이야기를 각색하여 <일곱 베일의 춤 The Dance fo the Seven Veils>이라는 오페라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습니다. 원작의 환상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는 당시의 예술 운동과 맞물려 많은 에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L2fGdfG3X0
https://www.youtube.com/watch?v=fw3CqYDILyw
꿈과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며, 르동의 독특한 화풍과 심미적인 세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입니다(오른쪽). < Eye Ballon>(1878)은 시각과 인식을 탐구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눈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눈은 지식, 인식, 그리고 진실을 탐구하는 인류의 욕망을 나타냅니다. 눈이 떠 있는 풍선 형태로 묘사되는 것은 위태롭고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르동의 전체적인 예술 철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 The Smiling Spider, 1881/DailyArtMagazine 2. The Crying Spider/DailyArt Magazine
Spirit of the Forest(Specter from a Giant Tree), 1880/Arthive
어둡고 침묵하고 상상이 가득했던 시절 그린 작품들입니다. 1870년부터 1880년 대 말까지 그려진 '검은색'이라고 불리는 첫 작품 세계는 르동의 우울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절 대부분의 작품들이 색채를 통해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검은색을 통해 정신적인 것을 전달하고 했습니다.
식물학자인 아르망 클라보를 통해 '종의 기원'을 읽으며 동식물의 중간상태, 미생물에 특히 관심을 가져 이후 '검은색'시절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기이한 형태의 생물체, 동물과 식물이 혼합된 일상에서는 마주치기 어려운 대상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당시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이 고전과 신화에 빠져 있을 때 대조적으로 르동은 잘린 머리,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거미, 하늘을 떠다니는 안구 등 그로데스크 한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목이 잘린 머리를 지상의 제약에서 해방된 창의적인 영혼의 이미지로 생각했습니다.
Guardian Spirit of the Waters, 1878/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검은색 작품 중 < Guardian Spirit of the Waters>(1878)은 르동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한 작품입니다. 르동은 상징주의 시인, 문학가들과 교류하며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1842-1898),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 등의 작품에서 환상적 이상과 깊은 서정의 원천을 찾았습니다. 특히 르동은 미술과 문학의 상징주의, 의학, 고고학,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위에 자신만의 환영과 환상으로 배합해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는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탄생이었습니다.
르동이 만든 상상의 세계는 원시적 감정, 공포, 슬픔, 환희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을 부각했죠. 이는 칼 융이 말해던 자아를 극복하기 위한 능동적 상상이자 의식 너머의 것이었습니다. 결국 르동이 창조한 환상의 세계는 인간의 삶과 진실에 닿으려는 예술가의 욕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르동은 이를 위해 보는 이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낯선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Portrait of Ari Redon,1898/The Art Institute of Chicago
후반에 들어 르동은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거칠고 탁한 색이 아닌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화사한 색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했던 그로데스크 한 이미지는 점차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르동의 개인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아들이 태어나면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르동은 고향 보르도를 자주 방문하여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벼워진 색채만큼이나 주제도 자연, 신화, 종교 등으로 바뀌었으며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화폭 위에 펼쳤습니다.
< Portrait of Ari Redon>은 르동 특유의 색감을 잘 활용한 작품으로,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 특징적입니다. 색상의 조화는 인물의 순순함을 강조하며,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르동은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큰 감정을 담아내는 세밀한 붓질을 사용했고, 이를 통해 아리(Ari)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Jupiter and Semele, 1894-95/wikipedia
Jupiter and Thetis, by Dominique Ingers, 1811/wikipedia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의 후기 작품 <주피터와 세멜레 Jupiter and Semele>(1894-95)입니다. 고전 신화에서의 장면을 환상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지요. 그의 특유의 화려하고 복잡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강렬한 색상과 세밀한 디테일이 돋보이며, 신화적 판타지를 실제와 결합하여 마치 꿈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제우스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세멜레의 모습도 보이고, 태어나지 않은 아들 바커스(Bacchus)가 그녀 앞을 날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중심 장면 주위에는 다수의 신화의 등장하는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고요. 일부는 전경에 있는 판(Pan) 같은 인물처럼 고전 이야기에서 옮겨진 것도 있고, 모로 자신의 구상 인물들도 있습니다. 주변 배경의 상징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나타나면서 보는 이에게 강력한 시각적 인상을 줍니다.
아래 앵그르의 작품< Jupiter and Thetis>(1811)과 비교해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모로의 그림 속 제우스의 모습입니다. 앵그르의 작품에서 묘사된 강인한 인상의 제우스는 모로의 그림에서 여성화된 남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9세기말 기존 사회 규범과 도덕을 거부하고, 관능적이고 향락적인 예술을 추구하던 이들은 구스타브 모로의 이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갈망을 채우는 탈출구로 생각했습니다. 남성의 여성화는 모로의 186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Jupiter and Semile>는 로마 신화 속 이야기로 제우스(Jupiter)와 세멜레(Semele) 사이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멜레는 테바이의 왕 카드모스의 딸로, 신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신의 호기심으로 인해 큰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게 되는데, 그 결과 제우스의 신의 위엄과 섬광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모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행을 서정적이고 신비롭게 표현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JMN41MDr3o
Cup of cognition(The Children's cup),1894/Odiolon Redon.org
르동의 작품 < Cup fo cognition>(1894)입니다. 한 아이가 커다란 컵 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익숙하게 사용하는 컵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새롭고 기이한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데스크 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부드럽고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내면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요. 르동의 환상은 이렇게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문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르동은 이 작품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푸르스름한 색상이 지배적으로 사용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작품에는 여러 상징적인 요소도 존재합니다. 컵은 지식과 인식을 상징하며, 어린이가 이러한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배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와 색상들은 상상의 세계와 꿈을 상징하며,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과 창의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왼쪽. Prometheus,1868/wikipedia오른쪽. Portrait of Violette Heymann,1910/wikipedia
구스타브 모로의 <Prometheus>(1868)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상징주의적 작품으로, 인간의 고뇌와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Prometheus"는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인간에게 가져온 티탄 프로메테우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 반역하여 인간에게 불과 지식을 전해주고, 그 대가로 신들에게 심판을 받는 인물입니다.
전체적인 색조는 짙은 파란색과 빨간색이 주로 이루며 예술가의 독특한 비극적이고도 신비로운 화품을 드러냅니다. 작품에는 여러 상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고난을 상징하며, 그의 불꽃은 지식과 진리를 상징합니다. 또 작품의 배경에 나타나는 산과 구름은 혼란과 갈등을 나타내며, 그의 고독한 투쟁을 강조합니다.
이 작품은 오딜롱 르동의 꿈과 무의식을 표현한 대표적인 초상화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오른쪽). 실제 인물인 비올렛 헤이만을 모델로 하여 그려졌고요. 비올렛은 르동의 친구이자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상은 단순한 외적 형태의 전달을 넘어, 비올렛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과 열망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르동 특유의 몽화적인 색감과 구성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배경은 부드러운 색조와 흐릿한 형태로 채워져 있고요. 그녀 주위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요소가 다양한 색상과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상징주의'는 작가들에게 내면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단순한 외부 세계의 재현보다 개인적인 개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구스타브 모로와 오딜롱 르동이 펼쳐 보인 '보이지 않는 세계'의 표현은 동시대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고 후대 사조에 큰 영향을 줍니다( 초현실주의, 야수파, 표현주의 등).
특별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jvPIbB6nq4
https://www.youtube.com/watch?v=HKmNgXOZXQ0
https://www.youtube.com/watch?v=IKyFyUwwz8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