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 엄마 쉬잔 발라동

산 호세 (San Jose)로 볼 일 보러 가는 둘째 아들을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Hollywood Burbank Airport, 구 밥 호프 공항)에 내려주었습니다. 백팩 하나 둘러메고, 운동화 차림으로 2박 3일 가볍게 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비행기 이륙 한 건가?' 하면 벌써 내려야 하는 대략 1시간 조금 넘는 비행거리입니다.






우버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제가 잠깐 여유가 있어 그 시간이면 움직일 수 있겠다 싶어 아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대답하는 모양새로 눈치껏 짐작도 해보며 요즘 근황을 나름 체크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편안해지기까지 나름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급증하는 코로나 환자로 인해 바깥출입이 제한되던 시절,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이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그동안 준비해 오던 길에서 그만하고 다른 길을 가겠다고요.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버티는 것이 힘들었던가 봅니다. 그 길이 가장 옳은 길이라 생각하고 김칫국부터 미리 마시고 있던 저와 남편은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배신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들 얼굴 쳐다보기가 한동안 싫었습니다.





아마 옆집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따져 묻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야지."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을 겁니다. 왠 걸요?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그 말이 쏙 들어갑니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러하듯, 남들이 꽃길이라 생각하는 그 길로 한눈팔지 말고 가주길 은근히 바랬던 거죠.





'자식 덕보고 살겠다는 건가?' 싶은 속물근성이 제 밑바닥에도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있었나 봅니다. '나는 아니야.'가 '너, 맞거든.' 하며 그동안 보려 하지 않았던 손가락 하나가 저를 찌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길이 아이에게 정답이야. ' 하며 철석같이 믿고 다른 대안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우둔한 엄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아이는 분명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을 텐데, 저는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습니다. 출발선에 선 아이는 보지 못한 채, 제 마음은 이미 골인지점에 먼저 가 자축하고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꽉 막힌 공간에서 둘째도 부모인 우리도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폭탄선언 한 이후 하는 행동들마다 번호를 매겨가며 쌍심지가 켜질 정도로 못마땅했습니다. 정작 아이의 얼굴은 전보다 편안해 보이는 데 부모인 제가 기가 쏙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3년간의 시행착오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저 딴것 하려고 가던 길 포기한 거야. 이런 ~' 화가 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늘 좋은 재료로 해 주던 반찬도 치사하게 부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챙기던 아이의 주변 일상을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뒤로 빼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하지만 앙큼하게 '너도 한 번 느껴봐.' 부모인 '을'이 할 수 있는 사소한 복수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때 용기 있게 말하고 가던 길을 멈춰 준 아들이 고맙습니다. 부모 노릇, 아들 노릇 더 어긋나기 전에 얘기해 줘 말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임을 시간으로 태도로 보여줘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쪼끔은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구 아들 녀석이 부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 허파에 바람을 빼고 둘째를 '있는 그대로' 봐주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왜 그렇게 어렵던 지요! 늘~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부모라는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커가는 아이로부터 또 한 수 배우고 함께 성장합니다.




오늘은 엄마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과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작품을 찾아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K11U_AZCyE







1871년부터 1914년 사이의 파리를 '벨 에포크 The Belle Epoque'라고 부릅니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죠.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에서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이 이루어졌던 황금기를 말하고요. 이 시절은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예외적으로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동안 프랑스는 산업혁명과 함께 기술 발전을 경험합니다.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꽃피기 시작하고요. 벨 에포크 시기에 프랑스의 도시, 특히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습니다. 이 시기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는 시기로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갔습니다.




문학과 사상이 발전하고 ,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던 시기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으로 인기를 끌던 시기이고요. 정치적으로 제3 공화국의 형성과 함께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주요 정치 사건들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팡이 혐으로 기소된 사건으로, 증거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사회를 극심하게 분열시켰습니다. 결국 드레퓌스는 무죄로 판명되었으며,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의 반유대주의, 군부의 권력 남용 등 다양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비평가와 구매자 모두에게 퉁명스럽고 무시당했을 수 있지만,
"위대한 예술가"였다.

- June Rose <Suzanne Valadon: Mistress of Montmartre>,1998






수잔 발라동(Suzanne Valdon, 1865-1938)은 '벨 에포크 The Belle Epoque'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시절'에 태어났지만, 발라동 인생 전반부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발라동은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 그들의 재료이자 장식품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림이란 또 다른 문을 통해 '벨 에포크 '시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발라동은 1865년 프랑스 베신느(Bessines) 출신으로 가난한 세탁부의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파리로 이사해 6살 때부터 어머니의 세탁 일을 도와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수도원 운영 학교를 잠시 다녔지만, 11세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녀는 모자 제조가게, 장례식 화환 만드는 공장, 야채 파는 시장, 서빙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1880년 15세 때 몰리에르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활동 중 공중 그네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다시는 곡예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생계를 위해 발라동은 친구 소개로 모델 일을 얻게 됩니다. 당시 파리에서 이름을 떨치던 상징주의 화가 피에르 퓌비 드 샤반(Pu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의 모델로 시작합니다. 그 시절 남성 화가의 모델이 된다는 건 순수하게 모델만 하는 걸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남성 화가들은 모델을 하녀처럼 부렸습니다. 발라동은 샤반의 집에 살며 모델, 하녀, 연인 1인 3역을 맡았습니다.





발라동은 어릴 적 집 벽, 종이조각, 혹은 길거리에 몽당연필이나 석탄 덩어리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문득 자신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혼자 스케치 한 그림 몇 장을 샤반에게 보여줬고요. 샤반은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며 발라동의 도전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발라동은 평소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샤반의 민낯을 본 후 고민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납니다.








왼쪽. self-portait,1883/wikipeida 오른쪽. Portrait of Maurice Utrillo,1921





Image of Suzanne Valadon with her son, Maurice Utrillo/Bridgeman Images





자화상 속 강렬한 눈 빛의 두 사람은 어머니와 아들입니다. 18살, 어릴 적 낳은 아들이라 둘은 마치 친구 같습니다. 왼쪽 그림은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의 자화상이고, 오른쪽 그림은 엄마 발라동이 그린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Maurice Utrillo, 1883-1955)의 자화상입니다. 당시 남성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관념적인 모습과 사뭇 다른 자화상입니다. 그림 속 발라동은 그녀의 얼굴을 부각하며, 강렬한 푸른 눈의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다부지고 집중력 있는 표정에서 그녀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나고요.






자화상은 발라동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기회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담아냈고요. 단순한 초상을 넘어서, 발라동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발라동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른쪽 그림은 그녀의 아들인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를 주제로 한 초상화입니다. 발라동 특유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는 초상화입니다. 그는 어머니 쉬잔 발라동의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화가 르느아르로 추정). 몽마르트르의 음습한 거리에서 어릴 때부터 술에 취해 성년이 되기도 전에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어머니가 권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의 길로 접어듭니다. 어머니 발라동은 그런 아들의 인물적 특징과 함께 내면적 감정도 효과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아들의 고유한 개성과 정신적인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초상화입니다. 아들 역시 유명한 화가로 성장했고, 주로 몽마르트르의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발라동의 아들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발라동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모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몽마르트르 화가들 사이에 발라동이라는 이름은 금세 퍼졌습니다. 화가들은 어린 나이에 온갖 풍파를 겪은 소녀에게서 그녀만의 내면을 느꼈고 그것을 표현해 내려했습니다. 15살 때부터 모델일을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등의 인상파 화가 모델로 1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왼쪽. 르누아르, 'Dance at Bougival', 1883/오른쪽. 툴루즈 로트렉의 'The Hangover', 1889/ARTLECTURE Contemporary Art'







왼쪽 그림은 르누아르가 그린 '부지발의 춤 Dance at Bougival'(1883)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로트렉의 ' 숙취 The Hangover '(1889) 작품이고요. 두 작품의 모델은 수잔 발라동입니다. 같은 모델이지만 작가의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 부지발의 춤 Dance at Bougival>(1883)은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르누아르의 말처럼 흥겹움, 즐거움이 묻어납니다. 부지발(Bougival)은 파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센강변의 지역으로 모네, 시슬레 , 피사로 등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모여 그림도 그리고 교류를 하던 곳입니다.





센 강변의 부지발(Bougival)의 야외식당에서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홍조 띤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네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또한 느껴지고요. '무지개 팔레트', '행복한 화가'라는 별명답게 아름다운 대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던 르누아르의 작품입니다.





또한, 당시 17살의 수줍고 싱그러운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이런 순간을 포착해서 화폭에 담아낸 화가의 솜씨도 대단하지만, 그런 화가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수줍은 듯 기쁜 모습을 표현해 내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의 한계에 부딪혀 심각한 고민을 하던 시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앵그르적 고전주의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Dance in the City by Pierre-Auguste Renoir, 1883/wikipedia



The Umbrellas by Pierre-Auguste Renoir, 1881-86, National Gallery, London/wikipedia





비슷한 시기 발라동을 모델로 한 르누아르의 작품입니다. 르누아르에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발라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쉬잔 발라동&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웹뉴스







발라동은 자신의 육체에 화가가 감탄한다는 것과 자신이 작품 속 일부로 기여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나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 또한 깨닫게 됩니다. 화가들이 자신을 그릴 때 그들의 방식을 가까이에서 눈여겨보면서 자화상과 자신의 누들을 그렸던 발라동은 르느와르에게 그림을 보여준 뒤 바로 쫓겨납니다.





그 후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어 아들 위트렐로를 낳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르느와르가 아버지라고 했지만 그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고 합니다. 40대인 르누아르가 발라동을 집중적으로 자신의 모델로 쓰던 시기입니다. 이후로도 르누아르의 모델로 5년 정도 더 함께 작업합니다.







Toulouse Lautrec/wikiepdeia오른쪽 The Laundress by Toulouse Lautrec/Singulart








르누아르를 떠난 발라동에게 새로운 남자 툴루즈-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가 다가옵니다.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 예술가였습니다. 어린 시절 사고와 유전적인 문제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키 150cm의 인물이었습니다. 그 역시 발라동 못지않게 마음의 상처가 가득했던 인물입니다. 로트렉은 발라동의 내면에 소용들 이치는 감정들을 읽어냅니다. 화려한 그림 속 모델의 뒷모습에 감춰진 처절한 현실을 보았던 거지요.






그래서일까요? 로트레크가 그린 발라동은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포샵하지 않은 민낯의 발라동 모습이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보입니다. 로트레크는 발라동이 연습 삼아 그린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발라동이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로트레크는 친구였던 화가 드가에게 발라동을 데려갑니다. 발라동은 드가 밑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웁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발라동에게 예술적 멘토가 되어줍니다. 그 역시 발라동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녀를 격려하며 에칭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녀의 예술작품을 구입해 주기도 합니다. 발라동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도와주는 로트레크에게 반하여 청혼합니다만 그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Portrait of Erik Satie,1892-93by Suzanne Valadon/WikiArt.org







당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릭 사티( Erik Satie, 1866-1925)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이 초상화는 발라동의 뛰어난 예술적 역량과 사티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적 요소와 발라동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발라동은 사티의 표정을 포착하여 그의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구도로 사티의 캐릭터를 강조하고 있고요. 사용된 색상의 조화는 그의 고유한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티의 상징적인 특징들을 잘 담아내는 방식으로 그의 이미지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사티는 당시 이국적인 일본풍의 유행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지닌 인물로, 발라동은 그의 복잡한 감정을 작품 속에 녹여내었습니다. 초상화 속 사티는 진지하면서도 고독한 표정이 느껴지며, 이는 그의 예술적 고뇌와 복잡한 내면을 암시합니다. 비록 6개월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로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두 사람입니다. 사티는 발라동과 헤어진 후 죽을 때까지 연애하지 않았습니다. 초라한 방에 발라동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벽에 걸고 붙이지도 못할 편지를 썼던 에릭사티의 사랑은 음악으로 남아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bXrpy4EHY





에릭 사티의 <벌거벗은 소년들 Gymnopedies>(1888)입니다. 세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기악곡입니다. 사티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고유한 분위기와 간결한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사티가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작곡된 곡입니다. 이 곡의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고, 고대 그리스에서 소년들이 벌거벗고 춤추는 축제를 가리킵니다.




Erik Satie, Le chat noir et Suzanne Valadon





출처:Quest-France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가 발라동을 위해 작곡한 곡 중에 <난 너를 원해Je Te Veux>가 있습니다. 에릭 사티를 몰라도 들으면 아주 익숙한 선율의 음악입니다. 사티가 발라동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감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감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센티멘탈한 왈츠 리듬을 특징으로 합니다. 사랑에 대한 열망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비극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여러 아티스트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해석되어 다양한 형태로 감상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bT9DeULzU4










Portrait of Maurice Utrillo , his grandmother and his dog by Suzanne Valadon, 1910 /Alamy





엄마 쉬잔 발라동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지만, 당시 어린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는 할머니에게 맡겨진 채 더 음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열악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아들 위트릴로는 14세부터 술을 마셨습니다. 18세에 이미 주정뱅이가 되었고요. 어릴 적 배운 음주 습관은 거의 알코올중독에 가까웠습니다. 그를 술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엄마 쉬잔 발라동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됩니다. 그 해결책으로 내민 것은 작은 그림엽서와 물감들입니다. 그녀는 아들 위트릴로에게 데생과 회화 수업을 시키며 늪에서 빠져나오게 합니다.







나는 나의 작품에서 시든 꽃내음이 풍겼으면 좋겠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생드니 운하 Canal de Saint Denis/Flickr






아들 위트릴로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며 주변 몽마니 풍경과 세느강변의 풍경 등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1903년, 가을부터 다음 해 겨울까지 150 점 가량이 그려집니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술에 절어 살았던 몽마르트르 시절 그의 그림들은 색상도 짙고 거칠며 어둡습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쳤던 시간이지요. 그저 영혼만은 잃지 않기 위해 붙들고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고요. 인상파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아들 위트릴로의 작품 시기를 크게 4개의 시기로 분류합니다.


몽마니 시대(1903-1905)

인상파시대(1906-1908)

백색시대(1908-1914)

다색시대(1915 이후)



백색시대에 그려진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그림들이 더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 가장 많이 나온 '백색시대'작품들을 살펴볼까요.







Montmartre street scene,1909/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위트릴로가 누비고 다녔던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입니다. 흰 건물과 집집마다 엷은 때가 묻은 희끄무레한 벽, 어둠침침한 거리, 인적이 드문 거리, 쇠살문이 닫혀 있는 호텔, 교회 등 우울한 정서가 풍부하게 녹여져 있는 그림입니다.






코탱의 골목 L'lMPASSE COTTIN,1910/French Art Collection




이 <백색 시대>야 말로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창조성이 절정에 이른 시기입니다. 음주벽은 여전했지만 걸작품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그림 코탱 골목은 <백색시대>의 작품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으로 꼽힙니다. 20대 초반의 소외된 청년이 좁은 골목길에서 이런 벽 같은 건물과 계단 앞에 서면 느낄 수 있는 깊고 외로운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직선에 의한 구성은 '백색시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la petite communiante eglise de deuil,1912/ Reproduction Gallery





교회 벽면의 흰색이 세월에 바랜 손때가 묻은 독특한 색을 띠고 있습니다. 위트릴로는 팔레트의 백색 물감에 회반죽을 섞어 넣음으로써 그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돌벽이나 파사드의 질감에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위틀릴로가 그린 많은 교회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그는 교회를 그리는 자체를 신앙의 표현이나 기도의 연장으로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이렇게 까지 깊숙하고 풍요롭고, 침묵의 정취로써 표현한 작품이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함입니다. 위틀리로가 지닌 내면의 맑은 에너지와 화가로서의 무르익은 솜씨가 훌륭하게 일치한 작품입니다.





Church sauare in Montmagny by Maurice Utrillo/Arthive







위트릴로는 1912년 코르시카 여행 이후 점차 색채가 짙어집니다. 그의 독특하고 미묘했던 백색 시절의 우울이 깃든 서정성은 서서히 사라지고요. 당시의 많은 화가들이 남쪽을 여행하고 오면 그 충만한 지중해의 햇빛과 따뜻한 공기의 영향으로 밝고 원색적인 다양한 색채를 이용하곤 하는데 위트릴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색채는 선명해지고 이전보다 명성도 올라갔지만 <백색시대> 가지고 있던 그만의 독특함은 점차 사라지며 매력을 잃습니다.










The Blue Room, 1923/wikipedia




쉬잔 발라동의 < The Blue Room>(1923)입니다. 누드의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하셨다면 실망하셨겠습니다. 예쁘지도 않은 살집 있는 여인이 핑크색 상의와 줄무늬 파자마 차림으로 파란 침대 위에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입니다. 침대 위에 놓인 빨강, 노랑의 크고 작은 사이즈의 책이 그녀가 지적인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남의 시선은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말입니다. 자의식 강한 모델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이 그려내고 싶었던 여성 본연의 자유로운 모습입니다. 발라동이 평생 동안 자신의 육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모델로 활동하며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였고, 이 작품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Asnieres street/WikiArt.org



The Factory at Asnieres by Vincent Van Gogh/Useum




아스니에르(Asnieres)는 산업지역이었지만, 센 강을 따라 산책이나 물놀이를 즐기는 파리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나들이 장소입니다. 멈춘 듯 차분하고 조용한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그림과 고흐( Vinxent van Gogh, 1853-1890)의 그림을 비교해 보세요.






고흐도 파리시절 자주 찾았던 아스니에르 마을의 거리 모습입니다. 고흐가 파리 북서쪽의 산업 교외 지역인 클리시의 공장들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당시 파리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외곽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아스니에르는 센 강을 따라 공장 지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점이 고흐와 그의 동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지요.




고흐의 그림 속 아스니에르 마을은 들판, 공장, 하늘의 세 개의 수평 띠로 나뉘어 구도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고흐는 이 시기에 '점묘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 던 폴 시냐크(Paul Victor Jules Signac, 1863-1935와 함께 아스니에르에서 그림을 그리며 색채 이론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시도하던 시기입니다.









음악가 에릭 사티와 헤어지고 그녀를 존중하며 그녀가 작품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스탁중개인 폴 모우지스(Paul Mousis)를 만나 결혼합니다. 안정을 찾은 그녀가 이 시기에 다수의 누드와 자화상을 그립니다.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게 되자 드디어 풀타임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편안하게 부르주아적 생활을 즐기던 시절이기도 하고요. 앙드레 우터(Andre Utter,1886-1948))의 등장으로 13년간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납니다.



NYCulture Beat


Peter Paul Rubens, Adam and Eve,1597-1600/Flickr





왼쪽 작품이 쉬잔 발라동의 <아담과 이브 >(1909)입니다. 당시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잡음이 심했습니다. 오른쪽 작품 티치아노의 <아담과 이브>(1550)이고, 아래쪽 작품은 폴 루벤스의 <아담과 이브>(1597-1600)입니다. 차이점이 보이실까요.





이전 회화 속 이브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금단의 열매(사과)의 유혹에 빠지는 이브와 그녀를 저지시키는 아담 대신 발라동이 그린 '이브'의 모습은 나란히 에덴동산을 떠나는 추방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발라동의 이브는 유혹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아담을 이끌고 당당하게 나가는 여인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과 달리 남성의 모습은 어딘가 찜찜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여성 누드모델을 남성화가가 그리던 시대에, 발라동은 남성을 누드모델로 세우고 남녀가 함께 있는 누드를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 아담의 모델이 아들 모리스보다 어린 초보화가 앙드레 우터(Andre Utter)라는 점입니다. 어린 모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에너지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남성화가들을 당연한 듯 바라보던 시선이 여성화가인 쉬잔에게 비난으로 쏟아집니다.








Family Portrait ,1912/Kerry Dooley Younf-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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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폴과 이혼한 쉬잔(44살)은 부르즈아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몽마르트르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작품 속 모델인 아들 친구 앙드레 우터(23살), 아들 위트릴로(26살), 발라동 어머니, 그리고 개와 고양이와 함께 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앙드레 위터(Ander Utter)와 1914년 재혼합니다.





이 특이한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도덕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보기에 '끔찍한 3인조'의 모습인 거죠. 그들은 각자 창작을 하고 힘을 합쳐 판매에도 나섭니다. 팔리지 않던 작품들이 해를 거듭하며 팔리기 시작합니다.




전쟁 이후 아들 위트릴로의 풍경화가 높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불만스럽게도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아들의 그림만큼 많은 돈을 받지는 못했고요. 어머니 쉬잔 발라동은 60대의 외모로 노화가 시작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되게 묘사된 인물들을 매일 그려나갔습니다. 주름과 처짐이 있는 가장 사실적인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뇌출혈로 사망합니다.









교육받은 상류층 여성도 화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 바닥에서 시작해 예술가들의 모델로 마침내 예술가로 성공했던 용기 있는 삶을 살았던 여인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전통적인 남성 관음증적 시선에 도전한 성공한 소수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고요.



모델들을 소유할 대상이 아닌 중히 여겨야 할 사람으로 존중하며, 그들에게 존재하는 복잡한 심리를 성공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영향을 주었던 그녀의 삶이 닫힌 문 밖에 서서 초조해하고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토닥여 주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pe-Ulknhs

https://www.youtube.com/watch?v=hJpgUBD7juE




https://www.youtube.com/watch?v=akF4djKB7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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