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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닮은닮지 않은

호세 데 리베라 & 조르주 드 라 투르


테네브리즘 기법(Tenebrism)이 있습니다. '어두운' 또는 '신비로운'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tenebroso (어두운 방식)'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기법을 지칭하고요. 테네브리즘(Tenebrism)은 화면 전반을 어둡게 처리하고 ,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강렬한 빛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기법은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효과를 주어 작품에 신비롭고 극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특히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격렬한 명암 대비를 통해 극적인 표현을 강조합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배경은 어딘지도 모르겠고 오로지 인물에게 떨어지는 빛만으로 사건과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게 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습니다. 바로크 미술을 시작한 카라바조의 초기 팔로워라고 할까요. 각각 프랑스에서 혹은 스페인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활동했습니다. 낮처럼 강렬한 카라바조의 작품과 달리 밤처럼 부드럽고 소박한 빛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감미로움이 첨가된 빛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Rour, 1593-1652, France)와 호세 데 리베라( Jose de Rivera, 1591-1652, Spain)의 그림을 살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z9E2buuU90





Vic-sur-Seille,France/Communes.com





조르주 드 라투르(Geortes de la Tour, 1593-1652)는 17세기 바로크시대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 당시 유럽의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던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후 북부유럽 화풍을 담당하게 될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와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화가입니다.




라 투르는 이탈리아에서 카라바조의 조명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부분 조명기법을 작품에 적용했습니다. 자신의 작품 안에 촛불을 켜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촛불의 화가'라고도 부릅니다.





그가 받아들인 빛은 종종 내면을 비추는 듯한 조용함이 충만해 있습니다. 위선과 질투, 허세가 가득한 세상을 풍자하는 풍속화를 그렸고,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명상과 묵상을 상징하는 종교화에도 능해 당대에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거의 입체파 화가와 같이 단순화된 성격으로 구성된 인물들을 묘사했고요. 그의 종교화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요하고 사색적인 평안함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라투르는 1593년 프랑스 북쪽지방의 Vic-sur-Seille 태생입니다. 운 좋게도 스폰서가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질의 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고, 순기능으로 작품 주문도 많아졌습니다.






로렌 공작의 후원을 받아 1630년대 후반에 루이 13세의 눈에 띄게 됩니다. 침실에 있던 다른 그림을 다 내보내고 라 투르의 작품 한 점만 걸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루이 13세(Louis XIII, 1601-1643)는 1639년에 라 투르를 파리로 불러 천 프랑과 '왕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 경'이라는 칭호를 하사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Q7WOLamY4



Valence, jativa,Spain/Wikimedia Commons






에스파냐의 화가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는 스페인 발렌시아 근처 샤티바 출신입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로 건너가 활동한 화가이자 판화가이고요(1611년). 파르마를 거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했으며, M.de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와 A. 카라치( Anibale Carracci, 1560-1609)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빛과 어둠과 뚜렷한 대비를 통해 견고하고 입체적인 형태를 창조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채택했습니다. 직접접이고 사실적인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MNLLcJLt_gs4jK2sH0CLlCAxzplDbfCN3MSINgJMJSzxLMUuvCw20Ggqyo0rSJf9zkvjL4eislkKVm5vYnqG7g.webp 나폴리 /나무위키(1282-1799)



나폴리 왕국은 잠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1503-1713). 스페인 통치 하에서 나폴리는 스페인 제국의 중요한 경제적, 군사적 자원으로서 기능을 했습니다. 과도한 세금 부과로 인해 나폴리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지요(1647).




1619년경 호세 데 리베라( Jose de Rivera, 1591-1652)는 나폴리에 머무르며 그림 제작에 전념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호세 Jose'를 이탈리아식으로 '주세페 Jusepe'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구도'에 뛰어났던 그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 스파뇰레토(Lo Spagnoletto: 에스파냐 꼬마= 작은 스페인 사람)'라고 불렀습니다.






1630년대에 그의 양식은 변화하여 색채가 점차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1640년대에는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이며 재정적으로도 불안해졌습니다. 그의 말년에 그림들은 주제와 구성적인 면에서 덜 극적이며 온화해졌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의 불운한 사람들을 주된 묘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1599-1660)나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Jose de Goya, 1746-1828)처럼 말입니다.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 1635/ wikimedia commons The Clubfoot, 1642/wikipedia



The cardsharp by Caravaggio,1594/wikipedia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다이아몬드 에이스가 있는 속임수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 (1635-1638) 작품입니다. 뛰어난 표정묘사가 압권입니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카드놀이 사기꾼 A card sharp >(1594)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그려진 작품입니다. 마치 이 테이블 위로만 조명을 비춘 듯이 밝습니다. 주변의 어둠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어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하지요.




Tutt'Art(출처)





도박, 속임수, 점쟁이 등을 주제로 그린 풍속화 들 중 하나입니다.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력 덕분에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얀 얼굴, 매끈한 피부, 한껏 치장한 모습의 그녀, 모르는 척 술을 따르며 상대의 패를 슬쩍 말해주고 있는 여종,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벨트에 꽂아뒀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슬그머니 내보이는 남자. 그들의 신호를 관객인 우리도 아는데... 쯧쯧, 앳된 부잣집 도련님만 모르고 있네요.




새틴에 자수를 놓은 고급 옷차림의 도련님은 지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봅니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패만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귀한 집 도련님의 금화는 순식간에 저 남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우리도 한수 거든 셈이 되었네요. 비슷한 버전이 또 하나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인기가 꽤 있었나 봅니다.









/Artble. Various Illustrations of clubfoot/Historical picture Archive


/Artble The Culbfoot/Medium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vera, 1591-1652)의 < 내반족 소년 The Clubfoot Boy>(1642) 작품입니다. Clbufoot(클럽풋)은 보시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발이 안쪽으로 돌아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발 변형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옷차림으로 보면 거지인데 표정만큼은 왕자입니다. 거리 귀퉁이에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궁색한 모양새로 구걸하는 모습이 우리가 그들을 향해 가진 상상력의 한계일 텐데 말입니다. 저 아이보다 가진 것이 많은 우리들 역시 저렇게 맑게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될까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적을 텐데 말입니다. 소년의 맑은 미소만큼은 훔치고 싶을 정도로 환하네요.




어깨에 걸친 목발, 작은 키, 그리고 라틴어로 쓰인 ' 구걸 허가서'가 보입니다. 당시 나폴리에서 의무적이었던 구걸허가서에는 " 하느님의 사랑으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적혀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지만 의기양양한 모습이 그의 현재 처지를 잊게 합니다.




리베라가 전성기 시절 그린 작품으로 소년에게 당당한 몸집을 선물해 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인간적인 위엄과 낮은 시점이 그를 더욱 커 보이게 하고요. 느슨한 붓질로 더욱 부드럽게 표현된 풍경이 소년을 훨씬 더 두드러지게 해 줍니다. 사람들의 개성에 인간애를 담아 사실적으로 전달할 줄 알았던 리베라만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3OG4vL2JY









The Newborn Child, 1645-1648, Museum if Fine Arts of Rennes/ Obelisk Art History

Lo Spagnoletto by Jose de Ribera, 1648/ The MET




조르주 드 라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The Newborn Child>(1645-1648) 작품입니다. 빛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빛과 어두움 또는 명암 대조법)의 표현을 극단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의 인위적인 빛(초)을 사용하여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카라바조 작품의 경우 빛이 화면 밖으로 스며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드라투르 작품은 그림 속 촛불, 바로 화면 안에 그 빛이 있습니다.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내부의 촛불은 관람자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풍부한 색감과 섬세하게 표현된 사물 그리고 주인공들의 시선과 구성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더 겸손하고 낮은 곳으로 이끕니다.





Meister Drucke/ Wikimedia Commons(안나)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종교화에는 등장인물이 최소화되어있습니다. 앳된 모습의 성모 마리아, 성모의 어머니 안나 혹은 산파로 추측되는 여인 그리고 아기가 전부입니다. 간결하고 소박한 그림이지만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동그란 이마와 오뚝한 콧날, 신생아의 표현이 놀랍습니다. 다만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배내옷이 너무 타이트해 보여 숨 쉬기가 곤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기를 꽁꽁 싸매 놓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의사들은 이런 배내옷이 아기의 신체 발육과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이 먹혀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화가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전개되던 아기 예수를 공경하는 움직임을 당대 농촌 여성의 복장과 배경 속에 버무려 놓았습니다. 이 그림은 풍속화를 흔히 그렸던 네덜란드 화가 나 프랑스의 르냉 형제 작품으로 오인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 그림은 세속적 풍속화와 종교화의 경계선 위에 있는 작품입니다.





호세 데 리베라의 < Lo Spagnoletto>(1648) 작품입니다. < The Holy Family with Saints Annne and Catherine of Alexandri>(1648)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요.




성모 마리아는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성입니다. 아들의 탄생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가엾은 어머니지요.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불쌍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어머니가 됐습니다. 가끔 플랑드르 화가들 중 붉은색 망토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주로 작품 속에서 푸른 계열의 망토를 걸치고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오른편 성 가족과 함께 왼편의 성 안나(성모 마리아 어머니)와 알렉산드리아의 카트리나의 모습도 보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동정녀 순교자로 작품 속에서 못이 박힌 바퀴와 함께 주로 등장합니다.




800px-Michelangelo_Caravaggio_060.jpg Michelangelo Caravaggio,1595-1596/wikipedia








The Fortune Teller, 1633-163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Women Gladiators, 1636/Museo del Prad



kr.pinterest.com/ ipernity
The Fourtune Teller, 1633-1639 /1st Art Gallery




라 투르의 많은 작품은 소실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만, 소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종교화와 달리 <점쟁이 The Fortune Teller >(1633-1639) 같은 풍속화에는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부유해 보이는 남성이 쭈글쭈글 점쟁이 노파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네준 모양입니다. '네가 속을 줄 알고...' 의심스러워하는 남자의 눈빛을 읽었는지 , "한 번 믿어 보세요. 도련님"라고 점쟁이 할멈이 젊은이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 사이 젊은 여인 두 명이 작업에 들어갑니다. 주머니에 손을 대 값나가는 물건을 슬쩍하려 합니다. 숨도 안 쉬고 눈치를 보며 금붙이를 자르려는 여인의 모습도 보이고요. 탄탄한 관찰력과 인물의 심리묘사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17세기 카라바지오풍 화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주제입니다.






Women Gladiators,1636/wikipedia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의 < Women Gladiators>(1636) 작품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칼 끝으로 찌를 것 같은 두 여성 검투사의 치열한 전투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로마 시대 여성들의 격투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성 검투사들은 고대 로마 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들은 검투 경기장에서 싸우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고 사회적 통념에 도전했습니다. 여성 검투사들의 존재는 당시 여성에게 기대되었던 역할 즉 가정 내에서의 역할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검투 경기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도 신체적 , 정신적으로 강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은 사회 일각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중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로 여겨졌습니다.





이로 인해 법적 제약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후 11년에는 20세 미만의 자유 여성의 검투 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고, 기원후 200년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모든 여성의 검투 경기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법적 제약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려는 시도였으며, 동시에 여성 검투사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tiktok.com/@history_with_amy/video/7477965265825828119





The Repentant Magdalen, 1635/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agdalena Penitente,1641/wikipedia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 The Repentant Magdalen>(1635) 작품입니다. 무릎 위 해골에 두 손을 모으고 촛불을 응시하고 있는 참회하는 막달레나의 모습입니다. 라 투르의 대표작인 작품으로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의 로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 엄숙함마저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명암의 대비를 통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보는 이들의 감정을 흔들어 깨우는 고요함과 심오함이 깃든 작품입니다. 그녀가 살아온 행적과 행실과는 관계없이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성경 안에서 보이는 모습 또한 다양하고요. 이른 아침 달려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 발치에 앉아 손님 접대로 분주한 언니 마르타와 달리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두려워 도망치는 제자들과 달리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여인 마리아. 오른쪽 호세 데 리베라( Jose de Rivera, 1591-1652)의 추악함이 강조된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 등도 있고요.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묘사하면서 여성 특유의 감미로움을 더한 작품입니다.






Mary Magdalene in Ecstasy by Caravaggio, 1606












800px-Mujer_barbuda_ribera.jpg Magdalena Ventura with Her Husband and Son(The Bearded Woman),1631/wikipedia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의 < Magdalena Ventura with Her Husband and Son>(1631) 작품입니다. 혹은 <The Bearded Woman>이라고도 하고요. 남편 펠리치 디 아미치와 세 자녀 중 막내를 안고 있는 아내 말달레나 벤투라를 그렸습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지요. 근심 가득한 남편보다 더 강인해 보이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긴 수염이 보여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모유 수유하는 엄마의 젖가슴이 노출되어 있고요. '헉'하며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로 그림 속 등장인물은 다모증에 걸린 아내 "막달레나 벤투라(37세)"입니다. 연약한 모습의 남편 펠리치 디 아미치(52세)의 모습도 보입니다.





혹시 양성애자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주변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부를 페르난도 공작은 궁으로 불러들였고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리베라에게 이들의 그림을 부탁합니다. 이에 부응하고자 리베라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막달레나 벤투라와 그 남편 펠리치 디 아미치가 함께 행복한 가정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구경꾼 적인 마음으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사실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최고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O6CxGgfRCY











Saint Sebastian Tended by Saint Irene/ wikipedia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

의 작품으로, 성녀 이레네가 성 세바스찬( Saint Sebastian)의 상처를 돌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1620년대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버전이 존재하고요. 그중 하나는 1634년에서 1643년 사이에 제작된 유화 작품으로 , 현재 베를린의 Gemaldegalerie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작품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원작으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된 버전이 원작으로, 베를린 작품은 그의 아들 에티엔이 일부 수정을 거쳐 그린 복사본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로마의 과부 이레네가 기독교인으로 밝혀져 화살에 맞은 성 세바스탄을 간호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Martyrdom of Saint Philip,1639, Museo del Prado, Madrid/wikipedia


The Martyrdom of Saint Philip,1635/Etsy


12제자/ HD Korean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의 <빌립의 순교 The Martyrdom of Saint Phili>( 1635)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초기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바르톨로메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거듭한 결과 피부의 살과 바르톨로매의 그림에서 항상 등장하는 칼의 모양이 없기에 제자 빌립으로 확정을 하게 됩니다.




800px-Rubens_apostel_bartolomeus_grt.jpg Rubens apostel Bartoimeus grt/wikipedia








빌립(빌립보)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밧줄에 묶여 죽었습니다. 특히 리베라는 이 그림 속에서 대각선과 수직선과 수평선의 기하학적 틀을 세워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빌립의 몸이 오른편에서 왼편 발로 흐르는 대각선의 방향과 두 팔이 묶여 있는 나무와 왼편에서 빌립을 묶는 양쪽의 두 남자 그리고 양쪽에서 서로 구경하는 구경꾼들의 모습은 수평적 구조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구조 속에 빌립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주변 인물들의 표정이 대조적입니다.





오른편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올라가지 않는 빌립을 들어 올리기 위해 발을 안아 올리고 있습니다. 왼편의 두 남자는 묶인 손을 확인하며 줄을 끌어올리는 표정으로 그려져 있고요. 빌립의 팔뚝과 앙상한 모습의 몸, 눈빛 등이 다음 단계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렇듯 더욱 사실적인 묘사로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속에 그 현장에 함께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z5DhwMsS1A&t=2s







https://www.youtube.com/watch?v=cMDo-CsasJ4



https://www.youtube.com/watch?v=aSAGH_X8oFY



https://www.youtube.com/watch?v=2FGL-fqum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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