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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청기사가 다리를 건너
우리에게로 왔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 프란츠 마르크




The Magic Mountain by Thomas Mann/ 나무위키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1955)의 장편소설 <마의 산 Der Zauberberg>입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은 1924년에 쓰인 작품으로 그의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아내가 병에 걸려 스위스 다보스의 한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3주간 문병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단편으로 쓰려했으나 집필 중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그 바람에 총 12년이나 걸려 완성된 책입니다.





이 작품은 분량도 많고 독일 작가들 특유의 사유로 읽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건조하고 긴 문장에다 이중적 의미로 재미가 없습니다. 특히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등의 영향을 받아 해박한 그의 지식에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 내용 중 세템브리니(이탈리아인, 진보)와 나프타(유태계 폴란드인, 보수) 와의 논쟁 부분은 머리에 쥐가 날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남자입니다. 한스는 엔지니어로 조선소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촌인 요하임 침센이라는 남자가 있고요. 그는 군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인물입니다. 한스와 요하힘이 지내게 되는 요양원의 원장은 베렌스라는 의사입니다. 그들이 머무르는 공간은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요양원이고요. 그 요양원에는 세템브리니라는 이탈리아 인이 있고, 요양원 부근에 하숙집에 기거하는 나프타(유태계 폴란드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스는 이 요양원에서 쇼샤(러시아계)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는 나중에 페퍼코른(네덜란드 커피사업가)이라는 남자와 함께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고요. 이들 일곱 명이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의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군생활 중 건강악화로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는 요하임 침센. 요양원 전체를 휘어잡을 정도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페퍼코른(네덜란드 커피사업가)의 자살. 충격으로 다시 요양원을 떠나버리는 쇼사부인. 논쟁 끝에 서로 감정이 상해 결투를 버리고 권총 자살로 마감하는 나프타(유태계 폴란드인 ). 한스가 이 요양원에서 생활한 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요양원 식구들, 그리고 주인공 한스가 독일군에 징집되어 참전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소설 속 '산(요양원)'은 복합적 의미를 가집니다. 주인공인 한스가 처음엔 빨리 산을 내려가려고 하지만, 결국 그는 요양원에 적응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안주'하고 싶었던 거지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 한스에게 '산'은 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작품의 후반에 이르러 '산'은 아래 세상과 달리 '인간성'을 간직한 곳으로 그 의미가 확대됩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주인공 한스와 사촌 요하임의 모습입니다. 군인이 되고 싶어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하산했고, 건강 악화로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요하임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한스의 경우는 절대로 요양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전쟁이 그를 요양원에서 밀쳐내고 결국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 점입니다. 한편 성공한 사업가로 인생의 전성기에 건강악화로 요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페퍼코른의 모습입니다. 그를 통해 작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뼛속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1955)은 작가에게 있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같다고 해서 그 시간이 가진 의미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표현합니다. 이 소설을 써나가면서 굉장히 짧은 시간을 길게 묘사하기도 하고, 상당히 긴 시간을 단 몇 줄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은 길게, 긴 시간이라도 별 의미 없는 시간은 짜게 묘사합니다. 예를 들면, 한스에 대해서 그가 요양원에 오고 나서 첫 3주간은 아주 길게 서술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기 전 몇 년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늘은 독일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st Vudwig Kirchner, 1880-1938) 작품을 살펴봅니다. 그들은 동갑내기입니다. 마르크는 1차 세계대전에서 36세의 나이로 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했고, 에른스트는 나치의 '퇴폐미술가"라는 꼬리표로 깊은 우울증에 빠져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58세).





fio0e0BNTLCnA2t0AjXQxw9bsv8s_W7Flw6w9sHQp4buPmhrfDxG6aua5lD2XAEJVrW8Nbz61SIF-0wpKYlWwA.webp 나무위키



https://www.youtube.com/watch?v=MLhDLL3MjSs







https://www.youtube.com/watch?v=qOrggUVTJDA






바이에른(Bayern ) 주 뮌헨( Munchen0/123RF




바이에른(Bayern)은 독일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독일에서 가장 큰 주이며 뮌헨이 주도입니다. 바이에른은 독일 내에서 경제 규모가 크고 소득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고요. BMW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동쪽으로는 체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뮌헨(Munchen)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도시로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옥토보페스트와 아름다운 공원, 다양한 미술관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1157년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사자가 베네틱토회 수도사들에게 시장을 열도록 허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158년에는 화폐 주조소를 설립하였고, "수도사들의 장소"라는 뜻의 'Munichen'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806년 바이에른 왕국이 수립되면서 뮌헨은 예술, 건축, 문화, 과학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Portrait of the sons of the artist by Wihelm Marc, 1884/ Artprinta




볼살이 통통한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풍경화가였던 아버지 빌헬름 마르크 (Wihelm Marc, 1839-1907)가 그린 형 폴 과 동생 프란츠의 모습입니다.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의 어머니는 독실한 칼뱅주의자 개혁교회 신자였습니다. 부모의 엄격한 가르침은 그에게 평생 동안 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대를 잘 타고났으면 좋으련만,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1880-1916)는 그런 면에서 안타까운 화가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쟁터에 징집되었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는 유력한 화가 명단을 작성해서 즉시 후방으로 배치하거나 징집을 면제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의 이름이 최상단에 적혀 있었고요. 이런 구제 명령서가 그에게 전달되던 그날 프랑스 전선에서 사망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6jLW-hLPU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1880-1916)는 독일에서 칸딘스키(Wassil Kandinsky, 1866-1944)와 함께 처음으로 '독일 표현주의'를 열었습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독일 표현주의 예술 운동은 사실 묘사를 뛰어넘어 감정과 아이디어에 영감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운동의 기초는 현실과 자연에 대해 보다 새로운 묘사에 중점을 둔 이전의 다른 운동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1911/ Lenbachhaus





1911년 '푸른 말'을 그린 그 해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는 뮌헨에서 바실리 칸딘스키 (Vasily Kandinsky, 1866-1944)와 함께 의기 투합하여 추상적인 형태와 대담한 색상 사용을 강조한 미술 운동 그룹 '청기사 파 Der Blaue Reiter'를 창립했습니다. 그들의 전시 및 출판 활동을 의해 지정한 예술가 그룹이자 명칭입니다. 통일된 스타일이 없는 표현주의 화가들의 느슨한 연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그림에는 세속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이 그룹은 예술의 정신적 가치 회복, 회화에서 색상의 심리적 사용, 원시 미술과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진 동료들 모임이기도 했습니다.




1911년 12월 뮌헨의 모데르네 갤러리 탄하우저에서 첫 번째 공식 청기사파 미술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그룹은 해체되었습니다. 멤버의 일부가 사망하거나, 스위스로 망명, 바우하우스 디자인 학교의 강사, 그리고 러시아로 돌아가는 등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Lenbachhaus/wikipedia


original.jpg?ar=16:9&fit=crop Lenbachhaus Gallery and Museum in Munich/Dwell





독일 뮌헨에 가시면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렌바흐하우스( Lenbachhaus)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청기사파 예술 작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보물의 핵심은 1914년 바실리 칸딘스키의 제자이며 예술적 동지이고 연인이었던 화가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unter, 1877-1962)의 기증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녀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이자 '청기사'파의 중요한 여성작가였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연인이었던 칸딘스키 초기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모아 기증했습니다.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 굵고 검은 윤곽선으로 내면의 정서를 풍경과 인물, 정물에 담아내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렌바흐하우스 도시 미술관(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

https://www.youtube.com/watch?v=QpC2VjgvFms









Map of Germany/ RailPass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Vudwig Kirchner, 1880-1938)는 바이에른( Bayern) 주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g) 출신입니다. 공부를 위해 그의 나이 21살 때( 1901년) 독일 드레스덴(Dresden)으로 이사합니다. 드레스덴 (Dresden)의 왕립 공업 대학 (Konigliche Technische Hochschule)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습니다. 23살이던 1903년에는 뮌헨 (Munchen)의 미술 학교에서 회화를 배웠습니다. 1911년까지 드레스덴에서 살다 베를린으로 이주합니다.




다리 파, 브뤼케 파(Die Brucke)는 독일 표현주의 그룹 중 가장 먼저 형성된 그룹입니다. 1905년부터 1913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드레스덴 공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네 명의 20대 청년들에 의해 결성되었고 드레스덴에 설립되었습니다. 독일 각지에 있는 젊은 세대가 널리 결집하기 위하여 다리를 건넌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멤버 중 키르히너는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 알프레드 뒤러 ( Albtecht Durer, 1471-1528)를 찬양하며 뒤러의 목판 인쇄 미술을 당대에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그의 미술 작업은 시작됩니다. 다리 파는 동양의 풍속화,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원주민의 원시 미술과 뭉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PL0kZrDLAw









The Tower of Biue Horses, 1913/WikiArt.org Street Berlin,1913/wikipedia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1880-1916)의 푸른 말의 탑 <The Tower of Blue Horses>(1913) 작품입니다. 그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지요( 1945년 작품이 실종된 상태). 그림 정면에 파란 말 4마리가 머리는 왼쪽으로 돌린 채 서 있습니다. 노란색 배경에 주황색 무지개가 있고 가슴에 초승달이 그려진 말이 으뜸가는 말인가 봅니다.






프란츠 마르크는 인간과 자연 세계, 인류의 운명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동물들을 그의 화폭에 불러왔습니다. 특히 '말의 이미지'로 가장 유명하지요. 자연과 동물은 그를 기쁘게 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의 동물 그림은 거의 명상에 가까운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에게 동물들은 영적이었고 현대에 잃어버린 것을 소환해 재배치하는 수단이었습니다.





The Berlin Street, 1913/wikipedia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의 <베를린 거리 The Berlin Street>(1913) 작품입니다. 번잡한 베를린 거리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길을 걷는 남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고요. 왼쪽 여성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어 주변 남성들의 검은 옷과 대조를 이룹니다. 배경 속 남성들은 구별하기 어려운 덩어리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뚜렷하지 않은 얼굴 특징으로 인해 관람자는 여성들에게 더 집중하게 됩니다. 키르히너는 인물들의 피부를 분홍색과 주황색으로 표현하고, 배경에 파란색과 분홍색 색조를 사용하는 등 부자연스러운 색상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색조는 독일 표현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키리히너의 날카로운 선과 거친 붓놀림이 눈에 띕니다. 기울어진 원근법과 대조적인 대각선 구도는 왜곡과 활발한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관람자는 마치 사람들이 캔버스에서 쏟아져 나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키르히너가 그림 속 두 여성들을 현대 도시의 상징으로 선택한 모양입니다. 그는 20세기 현대 생활의 모든 모순, 흥분과 위험,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감을 이 그림에 담았냈습니다. 그는 강렬한 색상들이 서로 충돌하는 방식으로 불협화음과 불안감을 드러냈고요. 또한 구도를 기울이고 압축하여 원근감을 무너뜨려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일부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 두 여성은 베를린 거리를 거니는 매춘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은밀하게 곁눈질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늦은 밤거리를 남성 동반자 없이 외출하는 모습, 그들의 움직임과 몸짓은 시선을 끌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은밀하게 접근하려는 남성들의 숨은 시선도 느껴지고요. 키르히너에게 매춘부는 베를린이라는 대도시의 현대성과 양면적 경험, 즉 화려함과 소외, 친밀함과 고립, 그리고 상품화된 사회를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ivDUWFaX0








Street, Dresden,1908/MoMA






키르히너의 < Street, Dresden>(1908) 작품으로 붐비는 거리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4명의 인물이 관람자를 향해 서 있습니다. 키르히너는 인물들의 얼굴을 가면처럼 묘사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는 여성들의 옷에 색상 대비를 사용하여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도시의 풍경도 묘사되어 있고, 왼쪽 상단에는 군중이, 오른쪽 상단에는 여성을, 그리고 불친절하게 쳐다보는 두 남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키르히너는 과장된 왜곡과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여 불안감과 긴장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붓놀림과 끔찍한 분홍색을 사용하여 드레스덴 거리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인물들의 채색된 윤곽선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감을 나타나고요. 이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도시의 혼란스러운 에너지와 긴장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fZu--psur8










https://www.youtube.com/watch?v=AKUoguM8VNg




Franz Marc Museum, Kochel am See/wikipedia



Two Women on the Hillside,1906/wikipedia. Marzella, 1909-1910/wikimedia Commons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1880-1916)의 언덕 위의 두 여인 < Two Women on the Hillside>(1906) 작품입니다. 1906년 여름, 프란츠 마르크는 코헬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곳에서 두 화가를 만나지요. 동료 예술가인 마리아 슈노르 (Maria Schnur, 1907-1908 )와 마리아 프랑크( Maria Franck,1913-)가 모델입니다. 두 사람 다 각각 다른 시기에 그의 아내였습니다.




마리 슈노르는 흰색 드레스와 파란색 자킷을 입고 앞쪽에 앉아 마리아 프랑크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흰 옷을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쓴 채 초원에 누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밝은 색상의 넓은 브러시 스트로크, 뭉개진 붓질, 캔버스의 풍경은 깊이를 모호하게만 암시하는 넓은 색 띠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르크가 앞으로 사람과 자연을 한 가지로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눈에 띄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마르크는 실제와 같은 재현 대신 장면의 분위기를 포착하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스타일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그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롭고 공생적인 관계를 보여주려고 시도했으며, 언덕의 곡선이 마리아 프랑크의 곡선에 반영되어 인간과 자연의 친밀함을 강조합니다.





Marzella, wikimedia commons







키르히너의 < Marzella> 작품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소녀의 불안정한 시기를 묘사하며, 벌거벗은 채 무릎을 가리고 관람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깡마른 몸과 대조적으로 짙은 눈 화장과 붉은 립스틱이 어색해 보입니다. 과도기적 단계로 여인의 관능미와 어린 시절의 순수함 사이 애매한 위치의 처한 소녀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흰색 리본은 어린 시절의 덧없음을 상징하고요. 부자연스러운 색상과 의식적인 몸짓은 구도에 불안감을 더합니다. 이 작품은 에드바르뭉크( Edvard Munch, 1863-1944)의 <사춘기 >(1895)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두 그림의 차이점이라면 불안과 두려움을 묘사한 뭉크의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 Marzella>는 관람객을 응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Pbberty by Edvard Munch, 1894/X









The Yellow Cow, 1911/wikipedia. Nollendorfplatz, 1912/Wikimedia Commons







프란츠 마르크의 <노란 소 The Yellow Cow>(1911)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마르크가 결혼을 앞두고 아내 될 마리아를 위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노란 소 한 마리가 화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밝고 부드럽고 명랑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결혼 선물치고 특이합니다만, 프란츠는 두 번째 결혼에서 느꼈던 여성의 풍부한 안정감을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아내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여성성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서요.





프란츠 마르크는 동물을 통해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색채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마르크는 색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노란색은 여성적이고 관능적인 의미를, 파란색은 남성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 붉은색은 열정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색채상징은 <노란 소 The Yellow Cow>(1911)에서 여성성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Franz Marc& Maria Frank, 1908/pinterest




https://www.youtube.com/watch?v=yhUn6N9JQiU










Nollendorfplatz/ Byron's Muse -WordPress.com




Berlin/Royal Literary Fund




https://www.youtube.com/watch?v=T5FabbMRMwM







< 놀렌 도르프 광장 Nollendorfplatz>은 키르히너가 여성 누드에서 대도시 묘사로 주제를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익명의 군중과 도시의 소외감을 드러냅니다. 그의 작품의 특징적인 구도 및 기술적 원칙인 수평선 반전과 각진 형태의 구성이 드러난 작품입니다. 삐뚤어진 시각과 충돌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색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키가 크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획일화되고 단조로운 도시 풍경과 융합되어 있고요. 빠른 붓놀림은 도시 생활의 속도감과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놀랜도르프 광장 기념물 분홍색 역삼각형 Gedenktafel Rosa Winkel, Nollendorfplatz/ Manfred Brueckels/wikipedia






<놀랜 도르프 광장 Nollendorfplatz>은 동성애자의 천국 지역입니다. 식당과 술집, 바 카바레들이 모두 동성애자 집결 장소로 유명한 곳이지요. 광장 근처 역 건물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성애자 추모 기념물이 있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피를 더럽힌 불순분자로 유태인과 함께 동성애자들도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 Rosa Winkel)을 달고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거든요.






Weidende Pferde,1910/Wikimedia Commons Large Blue Horses,1911/wkipedia



Horse in a landscape,1910/wikipedia




독일연방공화국 우표, <Horse in a Landscape>/123RF






프란츠 마르크의 <말이 있는 풍경 Horse in a Landscape>(1910)은 그의 초기 실험작으로, 순수한 색채를 사용하여 자연 속의 동물과 인간의 우주적인 통합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다이내믹한 색채 감각을 보여줍니다.




마르크는 이 작품에서 녹색과 파란색으로 조화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그 속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을 대변하는 동물인 말을 배치했습니다. 그는 동물을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여, 동물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말이 마치 관찰자의 관점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식으로 말입니다. 말을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 스스로가 말이 되어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Self-Portrait as a Soldier,1915/wikipedia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의 <군인으로서의 자화상 Self-portrait as a Soldier>(1915) 작품입니다. 불안정한 구도, 왜곡된 형태, 부자연스러운 색상 등을 사용하여 전쟁의 공포와 키르히너의 내면적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그림 속 인물들의 핏기 없는 노란색 피부와 퀭한 눈은 절망적인 감정을 강조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그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전쟁에 대한 공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군복을 입은 키르히너의 모습입니다. 잘린 듯한 오른손은 실제 잘린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Self Portrait woth Bandaged Ear >(1889)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요. 이는 전쟁이 그의 정체성에 미칠 잠재적 손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배경에는 나체의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원시주의의 영향을 받은 키르히너 특유의 스타일을 반영합니다. 동시에 전쟁으로 훼손된 남성성과 예술적 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암시하고요.




이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키르히너가 군 복무에서 의학적 이유로 제대된 후 그려졌습니다. 당시 독일은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키르히너 또한 전쟁으로 인한 신경증과 우울증, 약물 및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았고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고통이 작품에 반영되어 , 전쟁의 공포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드러냅니다. 1937년 이 작품은 나치정권에 의해 <창녀와 함께 있는 군인 Soldier with Whore>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조롱받았으며, "퇴폐미술 Degenerate Art"로 규정되어 그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self-Portrait woth Bandaged Ear by Vincent van Gogh, 1889, Courtauld Gallery, London/wikipedia





https://www.youtube.com/watch?v=Kz6Awoq2bXs









Blick auf Davos,1924/Wikimedia Commons/artsy




Davos/ The Feed Blog








키르히너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신경쇠약과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으며 스위스 다보스로 이주했습니다. 다보스에서 그는 자연 속에서 안정을 찾고 예술 활동을 재개합니다. 이 시기에 다보스의 주변 풍경을 그린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 다보스 풍경 Blick auf Davos>(1924)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키르히너에게 다보스(Davos)가 갖는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키르히너 특유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선을 사용하던 이전 작품에 비해 다소 부드럽고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강렬한 색상과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하여 산, 나무, 집 등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화면 전체에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다보스의 자연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키르히너의 의지가 보이는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CcFU-z5Nmk








Tiger by Franz Marz ,1912 / Franz Marc





프란츠 마르크의 <호랑이 Tiger>(1912) 작품입니다. 웅크리고 앉은 호랑이, 불안한 긴장이 캔버스에 가득합니다. 동물을 인간보다 순수하고 고귀하고 영적인 존재로 여겼던 프란츠. 그는 동물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색채를 통해 동물의 감정과 정신을 표현하고, 형태를 단순화하고 기하학 화하여 추상적인 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무겁고 난폭한 물질문명의 색인 빨간색으로 호랑이 주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성적이고 정신적인 파란색도 보이고요. 이러한 색채의 대비는 작품에 긴장감과 역동성을 부여하여 , 호랑이의 강렬한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nI4gnvqz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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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ZRSK9Qmvt0





https://www.youtube.com/watch?v=6g9sbnMphzY





https://www.youtube.com/watch?v=Y21AQwxlv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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