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 소개하고 싶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이면 벌써 풀벌레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급해집니다. 빨리 서둘러야겠어요.
발렌시아지도, 123RF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입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박쥐가 그려진 Valencia C.F. 축구팀을 먼저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네요. 한국의 이 강인(2018-2021) 선수가 잠시 머물렀던 팀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 호야킨 소로야(Joauin Sorolla y Bastida,1863-1923)를 소개합니다.
<바닷가의 아이들>,1910. <작은 돛배>,1909
<발을 다친 아이>,1909
<수영하는 아이들>,1905
사내아이 궁둥이를 스치고 간 빛 좀 보세요. 너무 생생해 바지 둘둘 걷어 올리고 뛰어들고 싶지 않나요? 누군가에게 있음 직한 어린 시절 추억 한 자락 끄집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벌거벗은 채 바다가 주는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아이들의 행복감이 보고 있는 제 입꼬리도 소리 없이 올라갑니다.
작은 돛단배 혼자 띄우고 놀고 있는 저 아이, 미래의 해군 제독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요.
‘아이코, 저런.’ 정신없이 놀다 다쳤나 봐요.
“나 , 이 발가락 너무 아파. “
“그래, 어디 어디 한번 봐.
어~~ 진짜 아프겠다. “
왠지 이런 대화들이 둘 사이에 오고 갈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파도와 한 몸이 되어 리듬을 타는데 이 꼬맹이는 그래도 아픈 친구 곁을 지키며 공감해 주는 모습이 예쁩니다.
개인적으로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기억이 있어 물을 무서워합니다. 겨우 겨우 커다란 대야에 물 받아 족욕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지요. 그런데 호야킨 그림 속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이 벌써 풍덩하고 아이들 곁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천진난민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쳐옵니다. 바다가 주는 자유를 놀이를 하듯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부럽습니다. 구태여 연출하지 않아도 빛과 굵은 붓터치로 현장에 와 있는 듯 표현해 준 호야킨 작가의 마음에 큰 하트 덩어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 바닷가 양쪽 끝에 커다란 나무 박아 놓고 빨랫줄 걸어 캔버스를 이리저리 옮기며 자신의 고향 발렌시아 바닷가의 아이들을 그리고 있을 호야 킨 작가를 상상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선물한 그림에서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 아닐까?’하며 슬며시 떠올려 보기도 하고요.
<말의 목욕>,1909 <return from fishing>,1894
<Fishing nets>,1893
<selling mellons>,1890
개와 함께 바닷가를 걸어 본 적은 있습니다. 일상을 깬 바다 내음에 데리고 간 개들도 기뻐 날뛰는 모습이 데려오길 잘했다 싶었거든요. 바닷바람에 털을 날리며 바다 냄새를 맡던 아빠개 '천둥이'의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자기 보다 몇 배 큰 말을 데리고 매일 하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고삐를 단단히 쥐고 바다 목욕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제법입니다. 생각하지 못한 모습에 신선했거든요.
귀가하는 어부들의 돛단배를 소 두 마리가 끌고 뭍으로 나오는 모습도 퍽이나 인상적입니다. 코뚜레에 매여 밭 갈고 이랑 사이를 누비는 소만 보았지 배를 끌어당기는 용도로 소를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소가 스페인에 가면 멘붕 오겠다.’살짝 웃기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소로야표 움직이는 파도의 모습 좀 보세요. 밀려오는 파도에 옷 젖지 않으려면 빨리 도망가야겠어요.
고향 발렌시아를 배경으로 다양한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소로야 작가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독립한 상태였고 미국과의 전쟁에 져서 쿠바와 필리핀 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어부의 어망을 손질하는 모습은 다 같은 가 봅니다. 빨랫줄에 걸려 만세를 부르고 있는 투박한 주인장의 옷가지들, 이웃이 잠깐 지나가다 들렀는지 반쯤 보인 이웃의 잘린 모습, 묻는 말에 대답하는 듯 옆으로 돌린 할머니 자세, 할머니 머리에 애교스럽게 얹힌 붉은 꽃, 그리고 볼 품 없는 살림살이를 가지런히 핀 다양한 꽃들로 이 집의 누추함이 조금 균형을 잡는 것 같습니다. 한 무리들 속에 멜론을 파는지 자신의 얘기를 파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이 꽤 진지합니다. 아침부터 기타를 들고 자세를 잡는 베짱이 주민도 보이고요.
<Mother>,1895. <Clotilde in a gray dress>,1900
<바닷가 산책>,1909, 아내와 큰 딸
소로야의 아내 사랑, 가족 사랑은 유별난 것 같습니다. 무역일을 하셨 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콜레라로 일찍 떠나보냅니다. 금속공예를 하는 이모부와 이모 보호아래 자라게 되고요. 그래서일까요. 자신의 아내가 된 클로틸데(Clotilde Garcia del Castillo)의 초상화 작품들, 800여 통이 넘게 아내에게 보낸 편지, 아들딸을 모델로 그린 다수의 작품들 속의 그의 가족 사랑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막내딸 엘레나의 탄생을 기념하기도 하고, 아내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미인의 모습으로 우아하게 그리기도 하며, 발렌시아의 뜨거운 햇볕아래 양산을 쓰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흰 드레스의 큰딸 마리아와 아내를 그려 뉴욕전시회에 엄청난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청년이 된 소로야의 아들이 연극배우 라켈 메예르(Raquel Meller)에게 반했는데, 마침 소로야가 라켈 메예르의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 소로야는 여배우의 초상화를 두 점 그려서 하나는 그림을 주문한 여배우에게 , 하나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성공한 화가로, 다정 다감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소로야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하듯 소로야 역시 초기작품은 사실주의 경향의 역사화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수갑을 찬 엄마의 모습을 그린 <죄의 여인>, 매춘으로 팔려가는 내일이 없는 여인들 <매춘부> 등 어둡고 슬픔에 찬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밸라스케스의 작품에 매료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며 르네상스 미술의 빛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되고 파리의 인상주의를 접하며 그의 그림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의 태양을 가져오는 그림'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 나이에 유럽과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희고 넓은 백사장에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바닷가 발렌시아를 배경으로 귀여운 아이들과 여신느낌 물씬 풍기며 해변을 여유롭게 거니는 흰 옷차림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담아냅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와는 또 다른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로 외광을 표현합니다. 빛의 변화를 탐구했던 것은 분명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비슷할지 몰라도 빛의 효과를 탁월하게 나타내면서도 그림의 대상을 뭉개지 않고 분명하게 표현한 것은 그만의 독보적인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슬픈 유산>,1899
소로야가 1990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출품해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림 속 두 아이가 목발을 짚고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난 채 수도사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당시 '슬픈 유산'이란 단어는 매독을 유전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콜럼버스 원정대가 유럽으로 귀환한 이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매독이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빠른 매독의 확산으로 이 아이들은 엄마 태중에서 이미 감염이 돼 기형아로 나온 아이들인 셈이지요. 치료를 위해 장애아들을 돌보시던 한 수도사가 아이들을 부축해 발렌시아의 바닷물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 1위 입상
파리 조르주 쁘띠 갤러리 500여 점 전시를 (1906) 성공시키며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미국 뉴욕전시 대성공(1909)으로 뉴욕의 '히스패닉 소사이어티(Hispanic Society of America)'재단을 세운 아처 밀턴 헌팅턴(Archer Milton Huntington)에게서 스페인의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 수 있는 풍경과 문화를 담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게 됩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중남미의 문화를 연구하는 재단에서 그들의 건물을 소로야의 작품으로 장식하고자 했던 거지요. 이런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소로야 역시 스페인 곳곳의 모습을 발품을 팔아 열심히 스케치를 하며 <스페인 지방(Vision of Spain,1913-1919)>연작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열정이 몸에 무리가 갔던 모양입니다. 이듬해인 1920년 초상화를 그리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1923년 사망에 이릅니다.
2천 점이 넘는 그의 작품을 소로야의 아내가 스페인 정부에 기증하고 현재 화가 소로야가 살 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성공한 화가가 살던 집을 그의 작품과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도 선사합니다.
저 멀리 시원한 발렌시아 바다와 연인들 그리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그려낸 호야킨 소로야 작가의 마음을 닮은 푸른 파도가 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시원하게 일렁거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