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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고 싶어서 고시원에 살아본 적 있나요?

통근시간과 맞바꾼 고시원에서의 기억


나는 일알못이었다. 그래서 고시원에서 살았다. 볕이 들지 않는 1.5평짜리 작은 방에 나를 욱여넣은 건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일알못 :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부서에서 가장 큰 예산을 차지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일을 막 배우는 사람이었지만, 외부의 이목을 끄는 문제를 책임져야 했다. 그 일을 잘 해내고 싶었기에, 자발적으로 야근을 시작했다. 10시가 넘어야 이용할 수 있는 야근택시를 거의 매일 탔다. 여직원 휴게실에서 눈을 잠시 붙이고, 회사 매점에서 아침을 먹으며 출근하던 날도 많았다. 어느 날은 정말 집에서 잠들고 싶었다. 더 이상 회사에서 잠들기 싫었다. 콜택시를 불렀지만 택시는 답이 없었다(그땐 카카오택시가 없었다).


히치하이킹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섰다. 하지만 8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중 빈 택시는 없었다. 두 개 정도 떨어진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고 용변을 보는 모범택시 기사님이 보였다. 기사님의 볼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외쳤다.




기사님, 저 좀 집에 데려다주세요!

"안 돼요, 이건 서울택시라 다른 지역 승객을 태울 수 없어요."


제발 저 좀 태워주세요. 저 정말 집에 가고 싶어요!




그렇게 간절히 집에 가기를 바란 적은 없을 것이다. 밤 12시, 서울 모범택시가 경기도 어느 시골 골목에 도착한 것은 비밀로 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다. 야근해도 택시가 잡히는 곳에 살아야겠다고.


우리 회사는 외진 곳에 있었기에 회사 코 앞으로 거처를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옆동네 고시원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신입 월급에서 월세를 감당하려면 35만 원짜리 고시원 방 한 칸이어야 했다. 마침내 회사까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의 방 하나를 구했다. 일을 끝내고 조금이라도 일찍 잠들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고시원의 공용 밥솥 안의 누런 밥알도, 한 입 베어 물면 건강이 나빠질 것 같은 중국산 김치도, 움직일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스프링 매트리스도. 그렇게 10여 년 전 이 맘 때쯤, 나는 고시원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내가 당시 살던 고시원 방과 꼭 닮은 곳(출처 : 연합뉴스)



고시원에 입성한 후에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일의 양이 줄어든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예산집행률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고, 예산집행실적 점검회의에서는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예산 집행률이 주요 안건 중 하나였다.   

예산집행률 : 올해 편성된 예산 중에서 실질적으로 집행된 예산의 비율을 측정하는 지표

예산집행실적 점검회의 : 예산집행률을 점검하고 연말기준으로 예상되는 잔여 예산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회의. 기관장 주재로 매월 열리며, 모든 경영진과 전체 부서장이 참석한다.    


할수록 더 늘어나는 것만 같은 업무를 해내기 위해 내 몸과 시간을 갈아 넣었다. 예산집행률, 그게 뭐라고. 예산집행률 100%를 달성하기 위해 평일엔 '고시원-회사'만 오가고, 그것도 부족해 주말 중 하루는 꼭 출근했다. 회사에 갈 일이 이렇게 많으니, 통근시간이 1시간 줄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며, 나는 자발적 회사인간이 되었다.


시키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회사인간의 미덕이다. 결과적으로 내게 주어진 일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 장재용, '회사인간' 중에서-


이제 택시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일도, 휴게실에서 자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두 다리를 편히 뻗을 수 있는 건 언제나 고시원 복도 불이 다 꺼진, 밤 11시를 넘겨서였다. 바닥에 누우면 비상구 불빛이 고시원 방안 창문에 어스름히 비쳤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의 예산을 모두 집행한 후에야 고시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저 고시원에서 3개월 살았더니 일잘러가 되었어요!


고난과 역경을 거쳐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많이'한 사람이 되었다. 내게 남은 건 3개월치 고시원 고지서와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홀로 눈물을 삼키며 기안했던 지출결의서 수십 장뿐이었다.


'야근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할 능력이 10년 전의 내게는 없었다. 나는 시간을 온전히 투입하는 것 외엔 방법을 모르는 요령 없고, 이해력이 부족한, 일알못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이다. 흘러넘치는 일을 두 팔 가득 안고 어쩔 줄을 몰라 벌벌 떨었다. 그래서 회사 가까이 살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방식으로는 오래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주말 근무를 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인 나에게, 괜찮냐며 어깨를 '톡' 건드린 동료의 손길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업무분장을 조정해주지 않은 팀장, 그리고 매번 혼자 칼퇴해 버리는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공공기관=워라밸'이라는 공식을 보란 듯이 깨버린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힘들면 힘들다고 꼭 말하라고,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라고.

끙끙 앓으며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해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기 위해 그 좁은 방에 나를 밀어 넣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책 한 권, 꽃 한 송이 사는 것도 사치인 공간에 내 삶을 맡기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대문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기사(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10613582730998)

본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기사(https://academy.mk.co.kr/news/view.php?year=2019&no=16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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