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도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지 않아요.
승진에서 누락됐다. 연차가 쌓인 누구나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승진에서 제외되다니…. 확인하고 또 확인해 봐도 승진명부에 내 이름은 없었다. 대신 두 기수 밑에 후배가 승진했다. 이로써 난 입사 동기뿐만 아니라 후배에게도 승진에서 밀리게 됐다.
인사발령이 뜨자마자 사무실 구석구석에서는 사설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사내 메신저와 탕비실을 막론하고 온통 승진인사 이야기뿐이었다. '이번에 승진한 가장 아랫기수 직원의 부서 평가가 작년에 1등이었다더라', '왜 특정 부서 직원만 승진시켜 주냐' 등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누군가는 인사실에 공식적으로 이의제기를 할 거라고 했다. '나도 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말았다. 회사생활하면서 가장 만나지 않으면 좋을 인사실과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정을 겪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년도 인사평가에 대한 이의제기가 승진인사가 끝난 뒤에야 진행되고 있었다. 이의제기를 통해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심은 동료들의 따스함 앞에, 쏟아지는 유리병 속 알약처럼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회사 선배라 미안해”
“내가 좀 미리 챙겨줄걸 그랬네”
“이번에 당연히 승진할 줄 알았어!”
진심이 듬뿍 담긴 위로에 보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속상했다. 그런데 속상함보다 더 큰 건 창피함이었다.
‘나 정말 역량이 부족한 직원인 걸까?’
‘살면서 뭘 해도 남보다 뒤처져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날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그래도 나만 승진 명부에서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게 다행인 건가?’
온갖 감정과 생각이 뒤엉켰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새롭게 경영진에 오른 회사 리더들이 승진 인사를 혁신하겠다고 했단다. 승진대상자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기획재정부에서 받아온 직급별 승진 최대 인원도 채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준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작년엔 규정화되지 않은 인사 매뉴얼을 근거로 승진 대상이 아닌 사람을 승진시켰다. 올해는 또 어떤 기준으로 승진자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늘 그렇듯 이해할 수 없는, 알려고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법이다. 차라리 확실한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연공서열대로 승진하게 해 주지!
고백하건대, 승진한 몇몇 선배들을 보며 ‘그래, 이런 선배도 승진했는데 내가 안 될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내가 저 사람 보단 낫지’라고 생각했었다. 선배들은 연차대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내가 입사하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리가 된 그다음 해에 과장 직급을 단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번엔!
올해 승진하지 못했다는 건 다음 승진까지 꽤 많은 것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기들과 몇십 만원씩 차이나는 월급, 먼저 승진한 후배를 ‘과장님’ 대신 부를 다른 호칭을 고민하는 시간, 승진하지 못한 자와 승진한 자 사이에서 눈치 보는 후배의 고맙지만 불편한 마음까지. 툭 꺼내놓기엔 어렵고 생각하면 낯 뜨거운 순간들마다 몸과 마음이 한껏 쪼그라들었다. ‘어차피 때 되면 다 승진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하고 쉬운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공공기관 승진이 연차순이냐고 묻거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게 하라’라고 외치고 싶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서울대학교 슬로건에서 따옴.
올해 열심히 하면 내년엔 승진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항상 회사 일에 소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내 일과 회사를 애정하는 만큼 좌절감이 컸다. 회사에서 받은 부정적인 유인으로는 도저히 업무 의욕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승진은 실력과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다고 회사가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도.
시간과 성취가 비례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지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승진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도 우스운 일 같았다. 영원히 내가 승진을 못할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한 군데서 조금 늦어졌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인간은 아니니까.
결국 나를 키우자고 생각했다. 회사 말고도 나를 정의할 수 있도록, 홀로 설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키우자고. 그게 인고의 시간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좋은 고과를 받기 위해 티 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 대신, 회사로부터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나를 가꾸는 데 집중했다.
마침 회사 일 말고도 몰입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때 즈음 시작한 대학원 과정과 제2외국어 공부는 나의 훌륭한 도피처가 돼주었다. 늘어가는 동그라미 개수와 높은 학점은 일에서 얻은 성취보다 더 달콤했다. 그렇게 다음 승진까지의 1년을 살아냈다. 마치 그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원칙인 것처럼.
그렇게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를 줄타기하며 '올해 승진 인사가 언제지?'라는 생각을 잊었던 어느 날, 승진자 명부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하지만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회사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물었어도 흉터는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승진과 동시에 지난 1년간 내 삶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승진 인사 소식에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물에 젖은 책처럼 쭈글쭈글해진 마음으로 먼저 승진한 후배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급여 통장에 찍히는 월급 앞자리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회사를 향한 노력이 부정당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다음 승진을 기다리는 1년 동안 ‘저 선배도 승진했는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이제 승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깊숙이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승진이 제외된 선배에게는 한껏 힘을 실어 응원의 말을 보탤 수 있었고, 휴직으로 몇 차례나 승진이 밀린 후배에게는 더 깍듯이 대하게 되었다. 사무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취약한 지점을 지나고 있을 이들에게, 나만이 건넬 수 있는 배려와 위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연공서열대로 승진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증거가 됐다.
그리고 그것이 승진하기 전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믿는다.
연차대로 승진하지 않길 잘했다.
이미지출처 : https://ppss.kr/archives/241768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