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3, 오늘 스타트업
지난 화요일, 그러니까 3월 11일 한국의 대표 엑설러레이터이자 이니시스를 창업한 권도균 대표가 이끄는 프라이머의 데모데이를 다녀왔다. 공공에 있을때 봤던 여러 데모데이나 지난 2월 앤틀러, 그 이전의 다른 많은 데오데이 들에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몇가지 보였다. 이미 공공에서 사람 동원은 해볼 만큼 해봤다. 기업 550개에 1,000개가 넘는 부스가 들어오는 전시회 PM을 해봤기 때문에 행사에 대해서는 적어도 공공 분야에서 운영하는 행사에 대해서는 도가 틀 만큼 텄다. 트러스가 세워지면 얼마나 들어가는지, LED 패널을 올려 세우면 얼마나 들고 공중파 출신인지 기상 캐스터 출신인지에 따라서 사회자들 인건비가 하루 80만원에서 1천만원 까지 뛰는지 같은 것들을 꿸 만큼 꿰고 있는게 나다. 그런데 민간에 나와보니 그렇게 배웠던 공공의 기술이나 견적들이 종종 무용하다고 느껴지는데 이번 프라이머 데모데이는 퍽 특별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바로 옆 회의실에서 로봇산업 지원사업 관련 설명회를 해서 그 인원들이 유입됐을 수도 있고 역삼 팁스타운과도 두 블럭 거리라 접근성이 좋은 것도 이유로 찾자면 찾을 수 있다. 몇번 미팅했던 네이버 클라우드 담당 매니저 모습도 보였는데 처음 봤을 때 말하길 임대료가 비싸도 강남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게 그 이유인가 싶었다.
내가 해본 행사 중에 전시 행사 말고 동원 없이 별다른 유명인이나 연사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릴 채운 건 처음이었다. 물론 공공에 있을 때 500명 정도 채우는 행사를 보고 또 운영한 적이 있지만 그런 행사들에 참가 인원들은 대부분 동기가 필요하거나 동원된 사람들이다. 예컨대 상을 받기 위해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직원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오거나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채우거나 등등. 프라이머 데모데이는 특별한 키노트도 없었고 로비에 꾸며진 부스들도 냉정하게 말하면 퍽 눈에 띄게 잘 꾸며진게 아니었다. 무대도 요새 스타트업 판에서 많이들 하듯이 발표용 화면과 중계 화면이 다였고 양쪽 벽으로 쏘이는 빔에도 프라이머 이미지 말곤 없었다. 그 마저도 적게 잡아도 4~5천만원 정도가 들기는 하겠지만.
권도균 대표 말씀대로 이 자리의 주인공은 스타트업이고 절실하게 자기들 서비스를 보여주러 나온 창업자 말곤 사실상 아무 것도 볼게 없었음에도 사람이 가득찼다. 심지어 몇팀이 발표한 사이 중간중간 빈 자리가 있으니 껴서 앉으라는 멘트를 하기도 할 정도로 많았다. 투자심사역을 비롯해 젊고 나이든 창업자들 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그야말로 데모데이라고 할 만한 모양새.
어제 우리 영감님이랑 밥을 먹다가 말했다. 제가 학부때부터 발표 많이 봤고 또 많이 해봤는데요, 살면서 처음으로 정갈하게 발표한다는 게 뭔지 알았습니다. 정말이다. 나는 언론학 전공에 광고학 부전공이다. 대학때 4년 내내 말싸움만 했고 열개 넘게 나갔던 공모전에서 발표도 많이했다. 노조위원장이었으니 사람들 앞에 좀 많이 섰겠나? 게다가 전시회 업무 하면서도 피티며 발표할 기회 정말 많았다. 어디서나 말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어디서나 사람들 앞에서 서는 걸 전혀 주저하지 않는 게 나다. 이날 발표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했던 발표들이 전부 잘못된 것처럼 느꼈다. 그만큼 잘 준비돼 있는게 보였다는 얘기다.
지난번 앤틀러때도 느꼈지만 발표자들은 AC들이 제안한 프로세스에 따라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나름대로 전략적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앤틀러는 조금 더 자극적이다. 멘토링한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아야 수수료를 딸 수 있는 사업구조다 보니 팩트를 왜곡하는 것도 느껴졌다. 우리는 어떤 사실들 사이에 많은 이해관계와 또다른 사실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다. 앤틀러 발표에서는 투자자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사업에 필요한 팩터들 만을 조합해 장표를 꾸민게 눈에 보였다. 순간적인 판단을 한다면 해당 발표에 속을 수도 있겠는 것이 투자자들 대부분은 해당 분야(흔히 우리가 섹터라고 부르는 사업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제한적이고 창업자들은 어쨌든 해당 섹터를 열심히 공부 했을테니 더 많은 지식이 쌓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투자자들을 속일 만한 요인들을 발견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번 프라이머의 발표도 그런 점이 있었다. 언론학도이자 인권변호사를 꿈꾸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언어의 작동에 늘 관심을 기울여왔다. 스타트업 분야에 들어와서 그리고 유튜브가 사고의 중추를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와서 내게 언어를 다루는 일은 점점 더 큰 과제가 된다. 예전엔 카피라이터나 혹은 소위 엘레베이터 보고를 하던 기획자들이나 고민하던 의제(agenda)와 섹시한 문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요즘이다. 프라이머 데모데이의 발표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밀도 있고 견고하게 가다듬어진 언어들로 보였다. 그저 시나리오를 써시 읽는 수준이 아니라 투자를 받기 위해 한 땀 한땀 철저하게 가다듬고 그 순서와 단어의 온도들 같은 구체적인 영역들 까지 관리하는 게 눈에 보였달까.
공공에서 처음 스타트업 업무를 맡으면서 내가 놀란건 한국이 스타트업 육성 분야에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나라고 특히 공공 분야의 성과는 세계적이라는 점, 다음으로 그럼에도불구하고 최근 몇년간 단 한 개의 실질적 의미의 유니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나마 유니콘 들도 AI 등 테크 분야나 바이오헬스 같은 특정 산업 분야가 아니라 커머스라는 산업 방식 측면에 치중돼 있다는 것도 놀라운 점이다. 쿠팡이나 배민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팡이나 배민이 성공했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같은 영역의 사업에 뛰어든다는 가설이 있을 수 있고 쿠팡이나 배민 같은 커머스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산업적 배경이 있다는 또다른 가설도 나름의 설명력이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전 세계에서 인정 받을 만큼 많은 스타트업을 공공에서 육성하고 있지만 그 분야가 제한적이고 성취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일날 만들어야 할 보고서가 있어서 아홉개의 팀중 다섯개 팀의 발표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개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커머스로 분류될 것이고 한개의 사업은 스타트업이라기 보다는 특정한 섹터에 치중한 사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다른 두개의 사업은 내가 가진 경험과 전문성의 관점에서 볼때 아마 실패할 것이다. 때로 어떤 아이디어들은 개인의 개별적 욕망이 보편한 인간의 양태와 연결돼 특별하게 성공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욕망의 조직이라는 제도가 가진 근본적 야만성을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안 될 것이다. 한 팀은 그 사업 아이템 보다도 이 친구들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갈고 닦은 기능들의 유효성이 향후 어떤 피봇으로 사업 모델을 바꿔 가면서 영향력과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했다.
언론학과 광고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 학부때 읽었던 많은 사회과학책들이 내게 가르친 것들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으로 이끈 건 법률의 세계를 만나면서 였다. 사회과학은 대략 절반쯤만 설명력이 있으면 그럴싸한 이론으로 용인된다. 늘 말하지만 편견과 통찰력은 한끗차이다. 법률의 세계는 다르다. 언론에서는 "야속한 아들, 아버지 칼로 찔러 사망케 해" 라는 제하로 기사가 나오지만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전제하면 "피의자 모씨가 약 15cm 가량의 날카로운 칼날로 아버지인 모씨를 찔렀으며 아버지 모씨는 00시 00분 사망에 이르렀다. 검찰은 존속 살해 혐의로 모씨를 기소하였다." 정도 일 것이다. 이제부터 문제가 된다. 과연 아들은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할 고의가 있는가? 정말로 이 칼에 찔려 사망한 것은 맞는건가? 어쩌면 고약한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게 법률의 세계다. 특히 형법은 국가제도가 개인에 대해 일신 구속을 포함하는 강제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구체적이고 더욱 보수적이다.
창업의 세계에서 사업의 세계에서 이런 언어들은 설 자리가 없다. 자구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이 문장의 문언적 의미, 기존 맥락 속에서 실질적 의미, 그리고 의도와 저의를 살필 시간 따위는 없다. 지금 발표장에 선 저 발표가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돈을 벌게 해줄 수 있는 생각인가 저 친구는 과연 그만한 의지가 있나 같은 것들. 냉정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별다른 객관적 근거는 없는 그런 쟁투들, 그런 쟁투들이 여기서 일어난다. 물론 신기한 건 바로 그런 근거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사람들의 열정들과 판단들이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 두차례 스타트업 붐으로 망해가는 한국 산업계에 산소마스크를 붙여 새로운 호흡을 불러일으키는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엉망진창 같았는데 되더라고요, 알 수 없어요. 그렇다. 섣불리 평가하는 것도 함부로 판단하는 것도 건방진 일이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고 기회는 열정과 노력 위에 행운의 여신이 앉을 때에야 꽃을 피우는 법이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좋다. 자신들의 열정을 믿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 세계를 정복하고 모든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나눠주자 부하는 묻는다. 그 모든 것을 내어놓으면 왕께서는 무엇을 남기셨습니까. 왕은 말한다. 나의 희망이다. 왕의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