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연합뉴스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GB300’에 삼성전자의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탑재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수차례 품질 테스트 실패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삼성이 마침내 세계 최대 AI 반도체 공급망의 문을 열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의 세일즈가 통했다”는 평가와 함께, 기술과 영업이 맞물린 역대급 복귀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납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엔비디아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주력 파트너로 두고 있었고, 삼성은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수년간 ‘승인 대기자’ 신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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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미국 GTC 행사에서 삼성의 HBM3E에 ‘Jensen Approved’라며 서명했을 때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이후 품질 검증에서 연이어 낙제점을 받으며, 황 CEO가 올해 초 CES 2025 무대에서 “HBM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이재용 회장은 그 직후 “독하게 다시 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반도체 총력전이 재개됐고, 삼성은 상반기 새로 설계한 샘플을 제출했다.
수개월간의 재검증 끝에 엔비디아는 GB300용 HBM3E 탑재 승인을 내렸다. 업계는 이를 “삼성이 기술적 한계를 뚫었다”는 신호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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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삼성 역시 엔비디아의 GPU 5만 장을 구매하기로 한 부분이다.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다지는 ‘맞손’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이를 자사 AI 전환(AX) 프로젝트와 데이터센터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오픈AI와 함께 구축 중인 포항 AI 데이터센터 서버에 엔비디아 GPU가 쓰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DX 부문장 직무대행은 “2030년까지 업무의 90%에 AI를 적용하겠다”고 밝히며 AI 전환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재용 회장의 미국 출장도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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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8월 무죄 확정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젠슨 황 등 주요 기업 인사들을 잇달아 만나며 직접 협상에 나섰다. 귀국길에서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고 왔다”던 짧은 한마디가 현실이 된 셈이다.
이번 계약이 즉각적인 시장 판도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업계는 차세대 HBM4로 이동 중이다. 그러나 삼성의 엔비디아 공급망 재진입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되찾은 신뢰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제 그 문이 어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지, 반도체 전쟁의 다음 장을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