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여행)
오늘 이렇게 우리가 그랜드 월드로 싸파리 투어(Safari Tour)를 가고자 하는 이유는 오로지 세리 때문이다.
더도 덜도 아니고 오로지 이유라곤 한가지뿐으로 ‘동물을 유독 좋아하는 작은손녀 세리’ 가 이유의 전부이다. 녀석이 푸꾸옥에 싸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부터 이미 우리 가족의 첫나들이는 무조건 ‘싸파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병아리들은 이천에 살고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들 가족들은 매년 (애버랜드 연중 이용권)을 사서 항상 이용하고 있다.
애버랜드를 이용할 때마다 아들이 겪는 고충이 ‘세리는 일단 사파리행’을 요구하고, ‘태리는 무조건 놀이동산’을 강하게 요청한다. 그런 결과로 이제 싸파리의 사자와 호랑이가 세리 얼굴은 기억할 정도(?)가 되었고, 태리는 디즈니랜드가 아니면 웬만한 놀이기구에 다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오죽하며 지난여름에 이모가 기어코 태리만 데리고 홍콩 디즈니랜드까지 데려갔을까? 이모는 지쳐서 쓰러질 지경인데 태리 혼자 그야말로 디즈니랜드를 모조리 휩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아들이 내놓는 타협책은 세리는 엄마와 싸파리, 태리는 아빠와 놀이동산을 일단 가고 나서, 온 가족이 다시 모이면 카라비안 베이에서 파도 풀을 타는 것으로 애버랜드 나들이를 마감해왔다고 한다.
달라도 너무너무 다른 자매. 이게 화인지 복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할아버지에겐 가끔 벅차다는 것뿐.
작년 나짱 여행에서도 우리를 탈출한 꽃사슴을 다짜고짜 달려들어 꼬리를 움켜쥐려다가 꽃사슴이 놀라 달아나고, 여행객들과 관리사들을 당황시켰던 우리 세리가, 이번 썬월드에서도 꽃밭에 나타난 도마뱀을 움켜쥐려 덮쳤는데 놀란 언니 태리가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는 통에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 버렸다.
‘언니가 소리를 지르니까 꼬리만 남기고 도망가 버렸잖아? 잡을 수 있었는데........’나와 할머니를 포함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여행객들 모두가 그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말았다. 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세리의 저돌성을 도대체 어떻게 깨우치게 해주지?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벌어지려나?
아.이.고.세.리.야.할.아.버.지.좀.살.려.주.라.
어이없음에 그저 기가 찰 수밖에.
그런 세리를 생각하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딸(겡구)과 아들의 태도다.
저런 세리가 있음에도 어쩐일인지 아들네 집에는 강아지도 없고 고양이도 없다. 겡구(며느리)도 아들도 한사코 집에서 동물 기르는 것만은 결사반대라고 하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물론 세리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한 적은 몇 번 있었다.
아득해진 아주 먼 과거에, 아들이 세리만하던 시절에 우리 아들도 애완견을 기르고 싶다고 울고불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잠시 강아지를 입양해 보았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돌려보냈다. 집에 있을 때는 정말 동생을 돌보듯이 위해주었는데, 유치원을 가고 집이 비워졌을 때, 장시간 혼자 심심해하고 혹시나 인기척이 나면 마구마구 짖어대고, 심지어 앞집에서 뭐라하기까지 하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 못 보겠어요. 원래대로 돌려보내 줘요’라고 했다. 그래서 딱 한 번 강아지를 길렀던 추억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 후로 동물을 이뻐하기는 하지만 기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던 아들 녀석이 세리의 유별난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집에서 동물 기르는 것만은 한사코 안된다고 하니........ 거 참 신기할 수밖에. 할아버지는 세리가 원한다면 기를 수 있을것 같은데? ㅎㅎㅎㅎㅎ.
‘할아버지. 동물원까지 아직 멀었어요?’
우리 세리가 많이 지루하고 힘에 겨워졌나보다.
하긴, 즈엉동 롱 비치 정류장에서 17번 빈버스에 오른 지 50분이나 지났음에도 버스는 여전히 그랜드 월드의 도심을 뺑뺑이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좀 전에 버스 정류장을 저만치서 비켜 지났음에도 도심의 유명 호텔들을 모두 연계시키려는지 도심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버스에 탄 성인 여행객들의 표정도 다들 비슷비슷했으니 어린 병아리들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남았다.
롱 비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을 때,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뒷좌석의 일렬로 이어지는 너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버스가 쯔엉동 번화가에 정차할 때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여행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야시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버스는 흡사 우리나라 70년대 통학버스 풍경으로 변모해 있었다.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부모에게 결국 자리를 양보하고, 여기저기 어린이들을 끼워 앉게하고, 점차 피난 열차 모습으로 지루하게 이동을 하다 보니 에어컨이 켜져 있음에도 슬슬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리가 지쳐가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원이라니? 윤세리 동물원을 영어로 다시 생각해봐.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게?’라고 동생의 지루함을 눈치챈 언니 태리가 끼어들었다.
‘우리 지금 동물원 가는 것 아니야?’ 세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동물원과 비슷한데........ 애버랜드에 가서 너가 아빠랑 버스타고 어디를 가지?’
그때였다. 버스 안내 방송에서 ‘싸파리’ 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툭 튀어나왔는데, 그 억양이 우리가 흔히 하는 ‘싸파리’가 아니라, 베트남 특유의 억양으로 ‘싸아~~ 파아~~~뤼’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하! 그제서야 어떤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두 자매가 박장대소하면서 동시에 운전기사의 안내방송 억양대로 ‘싸아~~ 파아~~~뤼’를 연발한다. 이제 그랜드 월드 터미널에 도착을했는데, 여기에서 사파리로 가는 버스(V1. V2. V3. V4)로 갈아타면 된다는 안내방송이었다.
녀석들은 그 베트남식 억양이 무척 인상적일만큼 재미있었는지 버스에서 내려서도 연실 흉내를 내며 재미있어 한다.
그런데 이곳에 버스에서 내리면 또 한 번 난리통이 벌어진다.
무료 셔틀 버스가 운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택시와 트램의 호객행위가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적나라한 그런 현실에 대한 설명은 이미 많은 여행객과 블로거들이 구구절절 세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10분 정도를 기다려 버스에 승차를 했는데, 역시나 싸파리로 가는 이 버스도 도심의 유명 호텔과 리조트들을 모두 휘젓고 다니면서 들리느라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끔 만들었다. 거기다가 어찌나 중도에서 타는 사람이 많았는지 다 태우지 못하고 억지로 문을 닫고 출발할 정도였다.
어찌어찌해서 우리를 태운 버스는 마침내 싸파리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엄청난 변수가 또 불어닥치고 말았다.
변수의 시작은 사파리에 들어가려고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데 있었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한낮 시간이었는데 몰려드는 여행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하지만 늘어선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무더위 때문에 가족 중에 한 명만 줄을 서고 나머지 가족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기 마련인데, 어린이때문에 주로 사파리를 찾는 나름의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를 구입하는 전제 조건에 키를 기준으로 한다는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100cm 이하는 무료이고, 140cm까지가 어린이에 해당한다. 140cm 이상이면 무조건 성인 요금을 징수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규칙 때문에 혼돈의 극한까지 이르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가족여행인데 막상 표를 끊으려고 하니 자신의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소리를 지르고 아우성이 벌어진다. 당연히 진행은 중단되고 만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워서 키를 재는데, 140cm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사람들이 또 이래저래 시간을 지연시킨다. 러시아 일행들의 경우 동행이 15명인데 아이들이 8명이다. 어수선하고 시간만 잡아먹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어처구니가 없다. 지친다. 지겹다.
나는 애초 처음 줄을 섰을 때, 도와주는 외부의 관리자에게 먼저 우리 아이들 키를 재고 스티커 메모지에 숫자를 받고 사인을 받아 두었다. 할머니와 손녀들을 에어컨이 있는 기념품 가계로 아이 쇼핑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내 차례가 겨우 돌아왔을 때, 그냥 메모지를 내밀었고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표를 구입했다.
‘겨우 살았다’고 안도하면서 병아리들을 찾아서 싸파리 입장을 하려고 기념품 매장에 들렀는데 아뿔싸...... 기어코 또 일이 터져 버렸다.
우리 세리의 성정을 그만 경황이 없어서 간과해 버렸던것이다. 기념품 매장이 어떤 곳인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할만큼 귀엽고 예쁜 물건들이 한 껏 치장을 마친 채로 전시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던가?
평소 세상의 모든 귀엽고 예쁜 인형이며 장난감 모으기에 열심인 우리 세리에게 지금 머문 공간이 온갖 귀여운 동물들의 인형과 장난감으로 가득한 사파리 기념품 매장이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벌써 두세 번을 돌아본 녀석의 눈빛에는 점찍어둔 1번 2번이 너무나 분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제 지급해 준 용돈이 지금 제 손에 있지 않은가? 할머니가 나름으로 열심히 경제 개념을 설명했다지만, 작금의 눈치를 보자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설익은 바램이었지 싶다.
대.략.난.감.
이를 어쩐다?
세리가 떡하니 고른 물개 인형의 가격이 4십오만동이나 한다. 거기다 크기가 웬만한 강아지만 하다.
지금 당장 사야 하겠다는 세리와, 이렇게 일찍 써 버리게 하면 차후로 태리가 뭔가를 살 때마다 옆에서 나름의 태클이 걸릴 수도 있겠으니 심사숙고하라는 언니의 경고와 이걸 지금 샀다가는 사파리 구경에 장애물이되겠으니 나중에 나올 때 다시 들르자는 할머니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팽배하다. 결국에 세리가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가세하여 ‘세리 용돈은 세리가 무엇을 사든지 아무도 상관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복잡한 사파리 여행을 해야하니 가벼운 차림으로 돌아보고 나오면서 기념품 가계에 꼭 다시 들를 것을 할아버지가 약속할게. 지금 사놓은 것을 맡겨놨다가 그때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야.’라는 선에서 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벌써 세리는 풀이 팍 죽은 것이...... 아무래도 오늘 스케줄은 망칠 것 같은 조짐이 생기기 시작한다. 왜????? 슬픈 예감이 어떨지는 이미 잘 알잖아??????
겨우 달래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싸파리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또 순회하는 트램 앞에서 인파가 넘쳐나고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정말 지친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는가?
일단은 없던 인내심까지 다시 꺼내서 녀석들을 다독이고 꼬득여서 싸파리 투어를 계속한다. 트램을 타고 돌면서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쥬트램 코스를 시작했는데, 악어 먹이 주기. 원숭이 먹이 주기. 코끼리 먹이 주기를 갔음에도 별반 반응이 없다. 아예 동물에게 줄 먹이를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오늘 싸파리 투어가 폭망했음’이라는 뜻이다.
사파리는 무슨........ 재미없는 동물원이었던 것이지 뭐.
그랬음에도 악어를 지나 이구아나와 왕도마뱀 구역에 들어서자 잠잠했던 세리의 호기심이 다시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이미 흥미조차 잃은 태리는 입구의 의자에 주저앉아 쉬고 있을테니 다녀오라고 한다. 점점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더운지? 족히 30도는 넘었지 싶다.
좀 전에 아들이 한국엔 온통 폭설이 쏟아지고 무척 춥다고 했는데 말이다. 추워도 지* 더워도 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거기다가 지금 태리도 지* 세리도 지*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개뿔! 싸파린지 동물원인지 오늘은 다 싸그리 개뿔이여. 도대체 이걸 어떻게 뚫고 나가지?’
‘어이? 거기 지극히 높으신 곳에 앉아계신 양반 말이유? 좀 도와줘 봐유? 시방 참으로 난감하잖아유? 할아버지 찬스 하나쯤 맹글어 줘봐유. 이렇게 부탁해유?’
사파리 버스 탑승장에 이르렀을 때, 세리는 완전히 생기를 되찾았다. 애버랜드의 기억을 떠올렸고, 푸꾸옥 싸파리가 베트남에서 가장 큰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규모도 크고 동물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충분한 호감과 기대를 보였다.
그런데 반대로 태리는 지금 무덥과 지루하고 별반 재미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는데, 덮쳐서 지금 할머니의 수술한 무릎 부위에 통증이 재발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진퇴양난이다.
에어컨이 들어오는 사파리 버스에 그냥 가만히 앉아서 15분 정도 돌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당장 아픈 다리를 쭉 펴서 주물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태리는 다 귀찮아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하고, 세리와 할아버지만 사파리 구경을 다녀오라고들 한다. 세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파리를 가고 싶은 표정이다.
이렇게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서 우리 영악한(?) 꼬리 4개 달린 중간계 여우 태리가 불쑥 나섰다.
‘윤세리. 언니 말 좀 들어볼래? 지금 너가 싸파리 버스 타고 돌아보고 싶은 것은 잘 알겠는데, 할머니가 수술한 무릎이 다시 아프셔. 그러니까 너가 양보해서 이쯤에서 오늘은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 대신 돌아가면서 아가 매장에 들려서 너가 원하는 물개 인형을 사고, 호텔에 돌아가서 오후 내내 풀장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거야. 할머니 무릎 치료도 하고 쉬시면서 같이 수영장에서 실컷 노는 게 어때?’
이제 모든 공은 세리에게 넘어갔다. 녀석의 표정이 지금 사뭇 심각하다.
‘언니야 알겠어. 그럼 버스에 타기 전에 매장에서 물개 인형부터 사는 거다? 그리고 호텔 수영장에서 할머니 무릎 치료하면서 실컷 노는 거야? 약속했어?’
‘대신 너의 용돈으로 지금 물개인형을 사는만큼, 내일부터 언니가 용돈으로 무엇을 몇 번을 사든지 너가 탐내거나 뭐라하기 없기다? 약속이야?’
‘알았어. 오늘 물개인형만 사면, 똑같은 액수니까 언니 용돈으로 무엇을 사든 아무말도 안 할게.’
휴!!!!
일단은 상황정리 끝!
아쉽기는 하지만, 일단 이번 푸꾸옥 여행에서 (사파리 투어)는 이것으로 완전 종료. 어딘가 모르게 시원섭섭한 마음이 생기는것은 왜일까?
‘그런데 할아버지. 어제 포도를 다 먹었는데 오늘도 포도랑 망고 좀 사주시면 안돼요? 어제 사신 제 음료수엔 탄산이 들어있어서 못 먹었어요.’
‘킹콩마트 다녀와야 더 싱싱한 것을 고르겠는데? 탄산 없는 음료수를 고르려면 같이 갈래?’
‘너무 멀어요. 할아버지가 대신 다녀와 주세요. 아셨지요?’
‘세리랑 같이 가야 할아버지는 힘이 나는데?’
‘오늘은 안되겠어요. 수영장에서 할머니랑 운동해야 하거든요. 대신 내일은 같이 갈께요. 아셨죠?’
헐!
아무래도 우리 윤세리 엉덩이에 그새 여우 꼬리가 하나 생겼나보다. 아마도 이건 틀림없을 거야. 에구 이 어여쁜 악마구리야.
숙소에 돌아와 병아리들을 수영복으로 갈아입혀 풀장으로 쫓아내듯 떠밀어 넣고 나서 허겁지겁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배달의 민족을 나선다.
왜냐하면, 일단은 무조건 킹콩마트를 먼저 다녀와야 내게 놓인 책무의 일부가 어느 정도 마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지금 이 할아버지는 기꺼이 그런 책무를 감당하기 위해 여기 너희 곁에 존재한단다. 너희들이 알아주건 아니건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날씨는 한여름 폭염인데 17번 버스는 낌새도 보이지 않고, 널려있는 택시들을 혼자 타고 다니기는 싫고....... 그럼 뻔한거 아니야. 걸어가야지.
터덜터덜 킹콩마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근데........ 세리가 아까 '동물원' 이라고 했지? 태리는 '싸파리' 라고 했고, 동물원과 사파리가 무슨 차이가 있지?
사실 나는 그 차이를 이미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
세리의 (동물원)과 태리의 ( 싸파리) 중에서 여기 푸꾸옥은 누가 맞는 것일까? 물론 분명 현장의 표기(간판)는 싸파리였다. 하지만 어쩌면 모두 맞기도 하고, 굳이 따지자면 조금씩 틀리기도 한 것이 아닐까?
내 방식대로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라면, 푸꾸옥의 '동물원'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장사(사업)를 하기 위해선 '사파리'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요즘 '사파리'엔 사람들이 찾아가겠지만, '동물원'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동물원)은 말 그대로, 그리고 우리가 흔히들 알고있는 그 (동물원)을 가리킨다.
그런데 태리가 말한 (동물원)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 (싸파리)는 아니다. (동물원)의 영어 표기는 '쥬(zoo)'다. 영화 <쥬만지>나 <쥬라기 공원>의 '쥬'가 바로 (동물원)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그럼 '싸파리(Safari)'는 또 무엇이냐? 굳이 따져물어 (Safari)와 (Zoo)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것이냐?
그 기준을 나는 이렇게 본다.
애버랜드가 처음에 (용인 자연농원)으로 문을 열었을 때였다.
자연농원 안에는 동물원 구역이 만들어져 있었다. 다양한 동물들 중에서 맹수가 아닌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 동물원 구역에서 사육되며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 동물원 구역의 안에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사육되는 별도의 구역이 설치되었고, 그 구역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안전장치가 갖추어진 차량을 이용해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바로 그 구역을 구분하여 특별하게 부르는 이름이 바로 (싸파리)였다.
(동물원)과 (싸파리)는 바로 그런 기준으로 나뉘어 설명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 기준이 많이 애매모호해졌고, 그냥 통상적인 포괄적 표현으로 (싸파리)를 당연하다는 듯이 쓰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런 기준으로 구분을 한다.
더군다나 ‘사파리(Safari)’라는 단어에는 그리 썩 느낌이 좋지 않은, 왠지 모르게 약간은 불쾌하다거나 괜히 꺼림직한 애환의 내막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차라리 그냥 ‘동물원(Zoo)’라고 불렀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사실‘사파리(Safari)’라는 단어에는 아프리카의 애환과 흑인들의 피와 눈물로 점철된 흑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서양의 백인들에 의한 아프리카의 침략과 수탈과 노예사냥의 역사가,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실제로 재현되었던 참혹한 식민지배의 현장이 바로 사파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파리(Safari)’라는 용어의 근원은 스와힐리족(Waswahili)의 언어에서 처음 등장했다.
스와힐리 부족은 아프리카 중부지역의 동쪽 해안에 드넓게 퍼져 거주하면서 어업과 수렵 생활을 해왔는데, 부족의 남자들이 초원이나 정글을 몇 날이고 쫓아다니면서 커다란 짐승을 사냥하는 수렵 활동을 ‘사파리(Safari)’라고 부르는 데서 기인하였다. 그러니까 본래 사파리라고 하면 대자연 속에서 동물을 그냥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나운 맹수들을 사냥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다.
그 스와힐리 부족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에 세워진 나라들이 오늘날의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콩고. 부룬디 등이다. 흔하게 (동물의 왕국)에 늘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초원지역이다.
이 지역이 이집트 문명권의 나일강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바다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던 열린 지역으로, 중세에 이미 인도 상인들이 드나들며 목재 교역을 시작했다. 이어서 찾아 온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서 이슬람교가 전해지기도 했다.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에 진출하려던 포루투갈이 스와힐리 일대를 지배하면서 수탈이 시작되기 시작되었다. 더불어 신대륙 발견 이후로 이 일대에서 아프리카 흑인을 사냥해 노예로 팔아 부를 이루려는 노예시장의 핵심 거점이 되었다. 이후로 유럽 열강들의 본격적인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지역이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며, 그 결과가 지금 케냐 탄자니아 독립전쟁이나 잔지바르 사태의 결과로 탄자니아 분쟁이 거듭 계속되는 등, 아프리카의 혼란과 분쟁으로 이어지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과 최소한의 인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류의 죄악이 과연 어떤 것인지 실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현장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사파리(Safari)'에는 그런 우울한 그림자가 이면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파리(Safari)’를 생각하면 항상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나에게는 있다.
물론 거기에는 긍정과 부정의 지극히 상반되는 평가와 의미가 포함된다. 어쩌면 그를 제외하고는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열풍처럼 번졌던 ‘사파리 신드롬’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상과 지성이 맞부딪힌 스페인 내전이라는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전쟁터에 뛰어들어 그 경험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소설을 썼다. 도전적 마초 기질로 무장된 전형적인 개척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아메리칸의 상징으로, 아프리카에서 맹수 사냥에 유독 강력하게 집착했던 ‘사파리 사냥’을 넘어서 ‘사파리 룩’을 탄생시키고 ‘사파리 투어’를 대중화까지 시킨, 극과 극의 평판을 넘나들던 그는 아프리카 사파리 체험을 통해서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해 ‘아프리카 자연의 훼손과 몰락’에 지대한 공과 업적을 남겼다. 인생 후반에 바다낚시에 심취해 쿠바 인근의 카리브해에서 요트를 타고 다니며 거대 참치 사냥을 즐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를 써서 끝내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풍운아이다.
인간과 인간의 군상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전쟁터와 인간과 거대 맹수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사파리와 인간과 거대 참치가 바다라는 대자연을 사이에 두고 한바탕 전쟁을 벌이기 까지, 이렇게 전쟁 3종 세트를 불후의 명작으로 남긴 희대의 마초맨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종국엔 자신의 엽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헤밍웨이의 삶은 불록버스터급 한 편의 사파리 영화 그 자체였다. 광활한 초원에서 거대한 맹수와 오로지 신무기 엽총에 사운을 건 인간 사이에 냉혹한 전쟁이 벌어진다. 죽느냐 죽임을 당하느냐가 당면한 전부다.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늘 그렇게 살았다. 하여 그의 내면엔 항상 생존을 위한 마초 냄새로 가득했다.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것을 목격한 후에, 그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코끼리와 사자를 사냥하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노년엔 카리브해에서 거대한 참치와 싸우면서 중간에 불가항력적 운명과도 같은 바다를 상대했다. 이제 더 나아갈 곳이 없었음인지.......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사냥의 마지막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승리자이고 했지만, 어쩌면 영원한 패배자였다.
<어린 왕자>를 남긴 생떽쥐베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vicomte de Saint-Exupéry)가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공군 조종사로 군복무를 했었다는 이야기와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은 헤밍웨이의 신화나 전설과 같은 이야기에 보태져 유럽과 신대륙의 백인들에게 ‘아프리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좀 난다 긴다 하는 백인이라면 적어도 아프리카 체험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아프리카 체험의 최고봉이 바로 사파리였던 것이다. 아프리카까지 날아간 남자라면 적어도 사파리 룩을 걸치고 흑인 하인들을 서너 명 거느리고 초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거대한 맹수 몇 마리쯤은 잡아야만 하는, 그리고 그 장면을 멋진 흑백 사진으로 담아와야만 ‘멋진 남성’‘남자다운 남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멋진 사파리 사진 한 장은 롤렉스 시계 보다도, 요트 한 척 보다도, 유럽의 고성 한 채보다도 더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멋지게 보이고 싶은 수많은 백인 남성들이 떼를 지어 아프리카로 ‘사파리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결과는 아프리카가 회복 불능으로 심하게 훼손되고 희귀 동물들이 도륙되거나 삭쓸이 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사자와 호랑이와 표범과 기린과 코뿔소와 코끼리가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거기에 더하여 이 사파리 열풍의 결과로 코끼리 상아나 악어가죽 등이 큰돈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제 사파리 투어는 조직적인 밀렵으로 확대 재생산되기에 이르고 말았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온갖 추악한 만행의 민낯 바탕에는 항상 저렇게 사파리의 그림자가 서려있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동물원 하면 ‘돌봄’의 의미가 떠오르는 반면, 사파리 하면 ‘죽임과 파괴와 불법’이 먼저 떠오른다.
사파리(Safari)의 본질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택한 사냥을 위한 여행이었으나, 자연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와 같은 마구잡이식 사냥이 허용되지 않고 엄한 처벌이 뒤따랐기에 점차 사라져 갔다. 덕분에 오늘날 사파리는 저니(journey. 여행 여정)라는 의미로 자동차나 트럭이나 버스 등을 타고 주로 초원이나 너른 동물원에서 야생 동물을 주로 관찰하는 육로 여행의 의미로 변모하게 되었다. 애버랜드나 여기 푸꾸옥 그랜드 월드의 사파리 투어처럼 말이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원초적인 사파리의 향수에 젖어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소위 빅 5 게임(Big five game)이 아프리카의 곳곳에서 은밀하게 자행되고 있다. 여기에서의 빅 5는 사냥의 대상이 되는 다섯가지 맹수로 꼽히는 사자. 표범. 검은코뿔소. 아프리카코끼리. 아프리카 물소를 가리킨다. 헤밍웨이의 후예를 자부하는 그들은 이 유별난 파행적 만행을 ‘대형사냥(Big-game hunting)’대회라 부른다. 여기에서 도를 넘으면 가끔 영화에서 등장하는 실제의 인간 사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어쨌거나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는 푸꾸옥 그랜드 월드의 사파리 투어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상태에서 아쉽게 돌아 나올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지만, 이런 사파리의 구린 속내를 속속들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밖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드디어 킹콩마트가 나타난다.
‘어떻게 하면 우리 병아리들에게 뭐든 맛있게 먹일 수 있을까?’라는 것만이 지금 할아버지에게 남겨진 숙제다.
포도랑, 망고랑, 망고스틴을 골라 담는다. 콜라를 사고, 탄산이 없는 음료를 사고, 쌀과자에 처음 보는 과자 꾸러미도 사고, 그랬음에도 혹시 더 뭐가 없을까 하고 그 넓은 킹콩마트를 거의 수색하다시피 살펴본다.
바리바리 배낭에 담고 양손에 노란 봉투 가득 담고 숙소로 겨우 돌아왔는데 할머니 왈, ‘김하고 김치는 찾아 봤어?’
이거야 정말 미치고 팔딱 뛰겠다.
그렇게 찾아보고 쫓아다녔으면서....... 왜 김하고 김치는 쏙 빠트렸지?
할아버지는 어떤 자괴감에서 괴로워하는데, 우리 병아리들은 그야말로 물놀이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아무려면 어때? 지금 한창 재미있게 물놀이에 빠져있는데......... 빌라의 풀장은 그야말로 우리 가족만의 전용 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도 얼른 들어와서 우리랑 같이 물놀이 해요.’세리가 재촉한다.
더워 죽겠는데 할아버지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돼. 벌써 저녁때가 되었잖아. 할아버지는 또 아르바이트하러 배달의 민족을 나가봐야 해. 이것들아. 너희들이 식당에 같이 가서 이거 저것 맘껏 골라 먹던가, 아니면 시원하게 도전이라도 해 본다면 할아버지가 배달의 민족까지는 안 해도 되잖아? 너희들 정말 끝까지 이럴래?
마트에서 사 온 것을 숙소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는....... 다시 큰길가 식당거리로 나선다.
‘이번엔 뭘 사다가 먹여보지?’
그날 우리는 아예 수영장 파라솔 아래에서 배달해 온 음식으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물놀이를 원없이 즐겼다.
'아들아. 우리는 절대로 병아리들을 어떻게든 굶게 만들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 주렴. 이 사진을 증거로 제출하마.'
태리 세리와 함께 여행을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나면 항상 가장 먼저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주변의 맛집과 마트부터 둘러보고 파악을 해두는 일이다. 그야말로 특이하다 할 만큼 유별난 녀석들의 먹성 때문이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개성과 먹성을 가진 우리 꼬마 여우들. 성격이 다른 성인 열 명을 에스코트하는 것보다도 우리 병아리 둘을 담당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이 이 할아버지의 솔직한 고백이다. 아들은 항상 그냥 내버려 두고 방치하듯 대하라고 한다. ‘배고프면 언젠가 뭐든 먹을 것이고, 심심하거나 지치면 하지 말래도 알아서 움직일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쉽지, 할아버지가 되어서 아무 일도 아닌 듯 멀뚱이 쳐다보고만 있는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결코 아니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아빠가 매번 그냥 쉽게 애들 요구를 들어주시면 안 돼요.’라고 따지고 드는 것 같은데, ‘아들아. 내가 이미 과거에 너한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길렀던 사람 아니냐? 그런데 말이야. 그게 아들한테는 됐었는데 손녀들한테 안돼? 안되게 되어 있어. 거기엔 아무런 어떤 이유가 없어. 그냥 안된다니까? 너도 이담에 할아버지가 되어봐라. 그럼 차차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지금 내가 애들 이야기를 죄 다 쉽게쉽게 들어주는 것도 없어? 다 요구를 들어보고 따져보고 설명을 하고, 나름 깐깐한 할아버지 노릇을 힘들게 하고 있다니까? 내가 결코 호락호락 만만한 할아버지는 아니거든? 그냥 대화를 많이 하는 할아버지일 뿐이야. 모든 원칙은 너를 키울 때랑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니까?’라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다.
‘아빤 과거에 저를 대했던 때와는 전혀 달라보여요. 애들이 이야기만 하면 어떻게든 다 들어주시잖아요.’라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이 녀석이 혹 지금 아빠를 비난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니라니깐? 아빠가 지금 얼마나 깐깐한 할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데, 쩔쩔 매는건 어디까지나 너의 엄마지 엄마.’라며 할머니를 슬쩍 끌어들여 돌파구를 찾아본다. 그럴 때 예상치 못했던 딸(며느리)의 감추어 둔 비수가 가슴으로 날아와 박힌다.
‘태리 세리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자주 찾고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늘 아버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하필 이 타이밍에....... 겡구야, 시방 시아버지 칭찬을 하는 거니 아니면 보내버리려고 하는거니? 넌 도대체 누구편이니?
어쨌거나 그런 이유와 배경으로 숙소를 정했다 싶으면, 금방 그 일대의 맛집이며 마트의 어린이용품이나 음료나 아이스크림 등등의 재고까지 파악을 미리 완벽하게 해둔다.
지난해 나트랑의 경우 인근 마트의 쵸컬릿 아이스 그림. 바나나 아이스크림. 포도 아이스크림. 딸기 아이스크림의 재고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거기다 어느 정도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들의 시그니처 메뉴는 물론 우리 입맛을 기준으로 한 메뉴의 우선순위까지를 꿰고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평소에 해외든 국내든 어디가 되었던 오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친해지는 스타일이다 보니. 주변의 식당과 슈퍼와 커피숖 등은 거의 오랜 단골이나 마찬가지로 금방 서로 격이없는 사이가 되고는 한다.
하룻밤을 지난 처지로 여기 고디바 빌라를 드나드는 골목 양쪽의 식당이며 슈퍼며 카페치고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그저 눈만 마주치면 하루에 열 번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되었다.
어쨌거나 병아리들을 건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아래 할아버지는 맡겨진 임무대로 오늘도 부지런히 배달의 민족이 되어 테이크 아웃으로 음식을 포장해 나른다.
사실 이골목에서 원픽으로 찍었던 레스토랑은 <The Hẻm - Café - restaurant> 이었다.
여러 여행 블로그나 여행잡지에도 올라있을만큼 인기있는 맛집이다. 주소는 ‘ Hẻm Chùa ông, Cửa Lấp, Phú Quốc,’ 이다.
비록 골목 깊숙이 안쪽에 자리잡은 아주 작은 식당이지만 나름 분위기로 있고 아주 깔끔한 매력적인 로컬 식당이라고 해야겠다. 음식도 훌륭한 편이다. 다양한 음식들이 그냥 평범하다기 보다는 조금은 여행자들을 위해 정제되고 개선된 느낌으로 감칠맛 나고 깔끔하게 다가온다.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권해줄 만한 그런 맛집이다. 어디서 정보를 듣고 찾아 오시는지 한국인 가족 여행자들과 러시아 가족 여행자들이 많다. 간혹 웨이팅이 생기기도 한다. 좌석이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베트남 음식은 주로 다 다른 메뉴를 각각 주문하는 편이고, 또 작은 주방에서 한 사람이 순서대로 혼자 요리를 담당하다 보니 당연하게 시간이 좀 걸리게 됨으로, 어쩌면 웨이팅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기 더 햄은 나에겐 반세오와 스프링 롤과 햄버거와 망고 스무디가 특별하다 싶을만큼 아주 맛있다. 주인의 서비스도 매우 친절하다.
그랬음에도 나는 결국 조금 아래의 골목 건너편 가계인 <Restaurant Song Nguyên>을 새로운 단골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리상으로 불과 서너걸음 아래인 송 응우옌의 주소는 ‘Tổ 4 ấp, Cửa Lấp, Phú Quốc,'이다.
송 응우엔은 더 햄에 비하여 식당 크기가 훨씬 크고 분위기는 좀 더 로컬스러운 전형적인 베트남의 흔하디흔한 그런 지극히 평범한 식당 분위기와 꾸밈을 가졌다. 하지만 여기는 하루종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꽤나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 얼핏 푸꾸옥의 러시아타운 같다고 할까? 러시아 사람들 만남의 장소로 보여질 정도로 항상 넘쳐난다. 메뉴가 베트남의 모든 음식을 총망라해 보일 정도로 무척이나 다양하고 많은 편인데, 도로변으로 오픈된 아주 작은 주방에서 주인의 남편인 주방장이 그 모든 요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장면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런 식당이다. 오픈된 주방 조리대 옆으로 커다란 가스통을 놓고 불쇼(?)를 벌이는 것을 보고 처음엔 놀라 기겁을 했었다. 모든 요리에 감칠맛이 넘칠 정도로 맛있다. 금새 주방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벗처럼 정이 들었기에 그런대로 맛이며 분위기에 이내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대단히 부지런하고 활달하며 명랑하고 친절한 여성주인 때문이다. 거의 1인다역을 하며 식당 살림을 꾸려나가는가 하면, 특유의 붙임성과 활기와 친절함으로 손님들이 계속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매직을 연출해 낸다. 주머니에 연실 넣었다 뺐다 하는 지페 뭉치를 보자면, 그동안 꽤나 많이 벌어서 이미 부자가 되고도 남았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싶다.
생기넘치는 활발한 여성주인과 묵묵히 일만하는 순둥이형 주방장 남편이 드러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과 전형적인 베트남 로컬식당의 분위기와 풍경이 바로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런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던 (더 햄)에서 여기 (송 응우옌)으로 옮겨온 이유는 바로 소고기 스테이크 때문이다. 손녀 태리가 베트남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상황에서 이곳의 바베큐식 소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은 아주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리가 이 식당의 오징어 튀김이 가장 맛있다고 하기에 무조건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해산물 볶음 쌀국수나 튀김면도 아주 훌륭하다.
혹여 다시 푸꾸옥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추억의 맛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그런 맛집이다.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푸꾸옥 최고의 맛집으로 추천하겠다.
내일은 아무래도 즈엉동 야시장(Chợ Dương Đong Night Maket)을 방문해야만 할 것 같다.
이미 킹콩마트에서 책가방을 고르면서 가격대를 확인한 태리가 즈엉동 야시장 내에 있는 많은 기념품 가계에 들러 비슷한 책가방의 가격을 알아보고 싶은 눈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야시장 매장에서는 어느 정도 가격 흥정을 통해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하고 있는것으로 엿 보인다.
가서 보면 알겠지. 거기다가 푸꾸옥까지 왔으니 해산물이 풍부한 야시장에서 제대로 한 번 랍스터나 킹 크랩에 도전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하다 보면 야시장 난전 특유의 군것질꺼리에 현혹되어 이것저것 먹어볼 수도 있지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없진 않았다. 물론 작년 나짱 여행에서의 처절한 실패의 기억이 채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병아리들은 좀체로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쌩쌩하게 난동 수준의 장난에 한창이다. 벽이 두꺼운 2층 객실이 아니었다면 층간 소음을 걱정해야만 할 정도로 할머니를 대상으로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엔 오늘 하루의 피로나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그런 녀석들을 피해 할아버지는 슬며시 책과 노트 북과 캔맥주를 꺼내들고 베란다로 도망을 쳤는데, 아뿔싸!
베란다엔 모기 몇 마리가 있어서 사람을 몹시 괴롭힌다. 불과 몇 마리뿐 일텐테 지금 당장 몹시 귀찮게 테이블 아래서 다리를 마구 물어뜯는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더니 그새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병아리들이 얌전하게 자기 자리에 누워서 잠잘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곧바로 들어왔을 것을 괜히 모기한테 시달리며 버텼네?
굿나잇 인사를 하는 귀여운 세리에게 할아버지가 볼태기를 내민다.
‘윤세리. 잊은 것 없니?’
쪽!!!
--- 다음 이야기에서 (푸꾸옥 여행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