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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an 23. 2022

읽기의 완성 : 재생산을 위한 밑작업, 초사(抄寫)

자신을 보는 거울 속 또 다른 나메타인지     


중국 전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최고의 병법으로 꼽히는 『손자병법』에는 적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자는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者, 白戰不殆), 

 적을 알지 못해도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 싸움마다 반드시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인지하는 ‘내 위의 또 다른 나의 인지 기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초월해 있는(Meta), 내 위의, 또 다른 나인 메타인지란 존재는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즉, 사람은 누구나 거울 없이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듯이, 우리도 메타인지라는 인식의 거울을 들지 않고서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다.           


메타인지를 활용한 초사(抄寫독서법     


이것은 독서에도 똑같이 통용된다. 모든 활동에 목표가 분명하면 효율성이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독서를 할 때 책을 읽는 목표가 분명하고, 또 필요로 하는 분야나 주제를 명확히 알며, 내가 알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 좋다. 나아가 내가 책을 읽는 목적, 알고자 하는 분야, 내 지식의 양과 깊이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나에 대해 분명히 아는 메타인지의 눈으로 책을 보면, 책 한 권을 읽어도 더 많은 영양분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메타인지의 눈을 뜨게 만드는 데 좋은 독서법이 바로 초사(抄寫)법이다.      

초사란 ‘필요한 것만 뽑아 기록하다’는 의미의 초(抄)와 ‘베끼다’라는 뜻의 사(寫)를 합한 말이다. 즉, 초사란 “일부분을 빼내어 씀, 필요한 것만 뽑아서 적는”것을 의미한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 발췌와 비슷하지만, 목적에 맞게 가려 뽑아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비슷한 것으로 정약용이 즐겨 했다는 ‘초서(抄書)’법이 있다. 초서란 책의 일부 내용을 빼내어 기록이나 책으로 남기는 것을 말한다. 초서가 내용과 문맥에 맞게 추리는 작업이라면, 초사는 나의 필요에 맞게 문장이든, 내용이든 베껴놓는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면 독서를 할 때 왜 초사라는 작업이 필요할까? 

초사를 하려면 평소 자신의 주요한 관심사를 분명히 인지하고, 책을 읽으며 이 내용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이것은 나의 메타인지를 작동시킨다. 그로 인해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내용이라도 나의 메타인지를 통해 내게 필요한 다른 측면의 모습이 발견되곤 한다. 그것은 바로 초사법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횡재이다.      


초사를 통한 지식의 되새김질이 주는 선물일이관지와 활연관통   

  

옛날에는 인쇄가 어려워서 책이 굉장히 귀했다. 대부분은 직접 필사하여 소장하거나, 누군가 필사한 것을 사거나 얻곤 했다. 또한 책의 종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대개 유·불·도에 관한 경전류나 역사책,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의 문집 등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주요 독서법은 소수의 책이라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강독(講讀)이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논어』라는 책을 본다면, 일단 『논어』 전체를 다 외우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훈장님이나 스승님 앞에서 외운 내용을 읊으며 자신이 이해한 깊은 뜻을 풀어 보고, 그 내용에 대해 주변의 학인들과 토의나 토론을 해보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베껴 적는 필사를 하고, 또 요약해서 따로 적어두거나 하여 틈틈이 보고 또 보며 되새김질을 했다. 


이처럼 책을 통째로 외우고, 전체나 필요한 부분을 필사하며 ‘한 문장-한 단락-전체 내용’의 의미를 궁리하며 밝혀가는 독서법은 깊이가 있는 책을 내면화할 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어떻게 보면 무식한 독서법 같지만, 이같이 책을 궁리해보면서 중요한 부분을 따로 적어두고 되새김질해 보는 습관은 내면의 체계를 어느 순간 환하게 관통하게 하는 ‘유레카’와 같은 일을 만들어 낸다.


나는 전공이 한국철학이라 퇴계, 율곡, 다산 등 한문으로 된 한국 사상가들의 문집을 자주 보곤 했다. 그런 옛사람의 문집에는 온갖 종류의 경전, 다양한 사서, 시대를 넘나드는 문집 등의 한두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쳐나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온갖 문헌의 내용을 자유자재로 한두 문장씩 꺼내쓰는 그런 문집을 볼 때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박식할 수 있을까 하는 경탄이 솟아오르곤 했다. 그 비결에는 틀림없이 초사법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서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만들어 간다. 품격 있게 표현하자면 ‘사상적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관점도 생기고, 크게는 한 조직이나 사회를 이끌 만한 식견과 교화력도 갖춰간다. 역사 속 위인들 역시 독서를 통해 과거 식자들의 지혜를 내면화하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사상적 체계를 세워갔을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강독하고 초사하며 되새겨 보는 습관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사상체계를 세우고 식견을 넓히는 데 상당한 밑거름이 된다. 다독이든 정독이든, 무수히흐르는 지식 속에서 지식의 단편들을 붙잡아 깊이 있게 되새김질해 보는 탐구는 결국 그 안에서 일관된 통찰을 이끌어 낸다. 일명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 수많은 말을 하였지만 결국 하나의 이치로 전체가 관통된다 논어의 말)”이고, 또 주자가 말한 “활연관통(豁然貫通: 치밀한 이치 탐구 과정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환하게 관통한다는 대학 주석의 말)”이다. 


여러 분야와 다양한 주제의 내용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깊이 있게 탐구하다 보면 누구든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원리를 발견하거나, 다양한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한 문제에 골몰하다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문득 해결책을 깨달은 것과 같다. 이런 것이 바로 지식을 주워 담고 나에 맞게 되새김질해 보는 초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초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의 내면 흐름에 맞게, 필요한 문장이나 문단 등을 뽑아서 기록해 두는 초사는 특히 나만의 논리 개발과 글쓰기에 유용하다. 

나 같은 경우는 어떤 책을 읽든 연필과 포스트잇, 또는 스마트폰을 항상 주변에 준비해 둔다. 나의 생각에 충격을 주거나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부분, 또는 계속 기억할 만한 새로운 정보가 있는 부분은 꼭 갈무리해 둔다. 포스트잇이 좋은 점은 필요한 부분만 적어두었다가 독서노트에 붙여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붙여둔 포스트잇은 추후 글쓰기 등을 할 때 내용의 순서를 잡기 위해 여기저기 자유롭게 붙였다 뗄 수 있어서 편하다. 

예전에는 노트에 손으로 적어 보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어 폴더에 저장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노트를 일일이 열어보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또 찾기도 힘들었다. 사진으로 찍어놓은 경우에도 PC로 옮겨서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용량 문제나 나중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문제가 걸렸다. 

그래서 요즘엔 수고스러워도 간단한 것들은 포스트잇에 적어 독서노트에 붙여두고 내용이 긴 것이나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것들은 한글 문서로 저장해 둔다. 이동 중이라면 노트 프로그램을 열어서 보이스레코딩 후 텍스트 파일로 변환해 두거나, 직접 텍스트 파일로 입력해 저장해 둔다. 그리고 주말이면 한 번씩 스마트폰에 저장된 파일들을 PC로 옮겨 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언젠가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출처: pixHere 무료이미지



초사를 하면서 얻게 되는 것들     


일단 포스트잇에 쓰여져 독서노트 어딘가에 붙여지거나, 문서 파일로 저장되면 다음번에 다른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문서 파일을 붙여 넣기 할 때마다 원치 않아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글에 대한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관련 아이디어나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그에 대한 내용을 또 추가해 둔다. 그렇게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발전해 가며 되새김질을 통해 나만의 일관성을 갖고 교통정리가 되어 간다. 

또한 이렇게 정리된 초사들은 나중에 글감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 찾아 쓰기가 좋다. 그리고 내 생각을 추가하거나, 그것에 연관된 다른 글감을 붙이는 등의 응용 작업을 할 때 작업하기가 편리하다.      


초사 시 주의할 점     


 초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단지 문장만 수집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수집한 문장의 뒤에는 당시 함께 떠오른 생각, 내가 받은 충격이나 새로운 느낌, 그리고 그 문장에 부연할 만한 나만의 생각이나 유사한 것, 반대되는 것 등을 떠오르는 대로 덧붙인다. 주의할 점은 저자의 문장과 나만의 생각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도록 분리해서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그 부분을 사용할 때 저자의 문장에만 정확하게 인용 처리와 출처 표기를 할 수 있어 표절 등을 면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명확히 표시해 두어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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