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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에 피어난 메이지 천황의 꿈

일본 역사왜곡의 뿌리 : 진구 왕후의 삼한 정복설

by 소정 Sep 16. 2021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세계를 정복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일본의 몽상은 뿌리가 깊다. 720년에 완성된 일본의 고대사서 『일본사기』는 다른 한·중 역사서들과 연대조차 맞지 않고 내용도 반쯤은 판타지다. 일본 사학계조차 『일본사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사기』는 오랫동안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주기적으로 열광시켰다. 바로 진구[神功] 왕후 이야기 때문이었다.      

 시기조차 명확치 않은 신라 초기 어느 시절, 왜국에는 진구라는 신과 통하는 왕후가 있었다. 진구는 어느 날 꿈속에서 신라를 치라는 신탁을 받고 남편 추아이[仲哀] 천황을 설득했다. 하지만 추아이는 요지부동하다가 결국 천벌을 받아 급사하고 말았다. 당시 만삭이었던 진구는 천황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급히 군사를 모아 신라를 치러 갔다. 그러자 바람이 배를 밀고 물고기들이 배를 떠받들어 금세 신라까지 도착했다. 진구가 신라 땅에 상륙하자 곧 거대한 해일이 신라 한복판까지 밀어닥쳤는데, 그걸 본 신라왕은 두려움에 탄식하며 곧장 항복했다고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신라왕 曰) “내 듣건대 동쪽에 신국(神國)이 있는데 일본(日本)이라고 한다. 또한 성왕(聖王)이 있는데 천황(天皇)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 나라의 신병(神兵)일 것이니, 군사를 내어본들 어찌 방어할 수 있겠는가!”   
   

이 소식이 퍼지자 백제와 고구려는 진구의 군세를 염탐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항복하며 조공을 맹세했다고 한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바로 진구 왕후의 ‘삼한 정복설’이다.         

      

이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메이지 유신 주역들의 가슴에 같은 꿈을 새겨 넣었다. 메이지 유신이 한창이던 1881년, 일본은 최초로 인물화를 넣은 고액권 지폐를 발행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진구였다. 한반도 정복의 야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즈음인 1882년, 일본은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강압하여 ‘제물포조약’과 ‘조일수호조규속약’을 맺고 도성 내에 일본 공사관을 설치했다.)


지폐에 그려진 진구왕후지폐에 그려진 진구왕후


일본은 조선·중국과 달리 과거제도가 없었다. 그런 시험제도보다는 언제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익히고, 한 분야의 일인자가 되어 영주의 눈에 뜨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천한 신분이었음에도 최고 수장인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관백(일본 천황을 대신하여 정무를 총괄하는 귀족의 최고 지위)이 될 수 있었다. ‘강함’을 숭상하고, 실질적인 ‘기술과 실력’을 중시하는 풍조는 학문적 개방성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바탕을 만들었다. 때문에 갑자기 출몰한 외세와 불공정 계약을 맺으면서도 강하다고 판단한 서양을 배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신문물을 배우며 생긴 자신감은 ‘삼한 정복설’이란 옛 망상을 떠올리며 제국주의 파시즘을 키워 갔다. 또한 군국주의로 빠른 근대화를 이루어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꿈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현실화되어 갔다. 유교 경전만 달달 외워 과거를 보고, 주자학의 벽이단론(闢異端論: 정통을 지키고자 다른 학문을 이단으로 몰고 배척하는 사상)에 빠져 쇄국과 위정척사가 힘을 얻었던 조선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현재까지도 우리 민법에는 일제가 남긴 메이지 민법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념과 문화는 아직까지도 메이지 유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현재 우리 안의 반목과 친일 문제의 근원을 따져 보기 위해서는 메이지 유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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