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메이지 유신(1868년)이란 무엇일까? 서양과 그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중화 문명의 한계와 위기를 깨달은 일본은 곧장 서양으로 방향을 돌렸다. 일본의 고유 정신에 중화의 기술을 융합하자는 과거의 구호[화혼한재(和魂漢才)]를 일본의 고유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융합하자는 ‘화혼양재(和魂洋才)’로 바꾸고, 서양에 유학생을 보내며 신기술을 연구했다. 서양의 강함에 대한 충격 및 동경과 함께 오랫동안 일본을 지배하던 막부 체계는 신학문에 눈을 뜬 하급 무사들에 의해 무너져 갔다. 그들은 신흥 세력이 되어 신격화한 메이지[明治] 천황을 변화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결국 막부들은 모든 권한을 천황에게 바치고 일본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다.
메이지 유신의 시작과 현재 사이에, 일본의 전 총리인 아베 신조가 그토록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이란 한 인물이 있다. 그는 에도 막부 사무라이 정권의 병학가(兵學家)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한창 공부할 때 읽었던 『신론(新論)』이란 책에서 일본이 신성한 신의 나라, ‘신국’(神國)이었음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쇼인이 느꼈던 충격과 감동은 제자들을 통해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안중근이 최고의 원흉이라 여긴 이토 히로부미,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 지침인 〈교육칙어〉를 발표한 일본 의회 최초의 총리 야마가타 아리토모, 세계의 모든 토지와 인민은 천황의 것이라며 천황 중심의 제국주의 근대화를 추진한 기도 다카요시, 한일 병탄을 추진한 가쓰라 다로 총리 등, 메이지 신정부를 이끌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 앞장선 이들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다.
오랜 시간 상징적인 제사장 정도로 기억됐던 일왕을 태양신의 유일한 직계 자손[만세일계(萬世一系): 신의 혈통이 천황을 통해 끊김 없이 지속됨]으로 만들고, ‘세상에 현현한 살아 있는 신’(現人神)으로 포장했다. 이를 근거로 천황(天皇: 스메라미코토)을 천하의 통치자가 될 운명으로 만들고,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 끼어 넣어 신격화했다. 그리고 ‘태양신인 천황의 지배하에서 천하는 한집안[八紘一宇]이 된다’는 세계 정복의 제국주의 파시즘을 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이 때문에 미 군부는 일본이 패하자 히로히토 일왕에게 국민 앞에서 ‘인간 선언’을 종용했다. 천황을 태양신의 후예이자 현신으로 믿고, 전 세계에 욱일승천하는 ‘욱일기(전범기)’를 흔드는 광신도 같은 믿음이 제국주의 파시즘의 중추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을 바탕 삼아 사회를 군사 조직화하고 제도를 근대화한 것이 바로 ‘메이지 신법’이다.
신앙의 영역으로 승화된 메이지 유신은 강력했다. 정치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신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복종 외에는 모두 신성모독이다. 천황은 일본이란 나라 그 자체이며[國體論], 천황과 일본을 지키기 위한 죽음은 신성한 순교와도 같았다. 이에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는 죽음을 영광스러워했고, 꼬붕[分家, 臣藩]으로 복속시킨 조선 역시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자 했다. 때문에 조선의 풍속과 관습을 메이지 민법식으로 바꾸고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 황국신민화 정책(조선 백성을 일본 천황의 충실한 신민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