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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Sep 26. 2021

일본식 호주제가 우리에게 남긴 것

이 글은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자로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창작지원작에 선정되었고,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텀블벅 펀딩도 300%를 달성하며 성공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산업화시대의 폐단으로 왜곡된 현재의 전통문화/가족문화의 원형을 밝히고,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갔던 한국 역사 속 여성문화와 양성조화의 문화를 밝히는 데 앞장서는 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에는 이보다 더 알차고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일제가 종용한 호주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리고 새삼스럽게 호주제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새겨보아야 할 필요는 무엇일까? 


 첫째, 가족 구성원들의 왜곡된 역할과 이미지를 고착화했다. 일본 사무라이의 이에[家] 문화와 서양의 남녀 차별적인 가부장제가 접목하여 나온 것이 호주제라는 것이다. 본래 일본 무사 가문에서 종자(宗子)인 당주(當主: 당대 가독권을 가진 호주를 부르는 일본식 표현)는 분가들에 대한 군사적 통솔권을 가지고 있었다. 호주제의 독특한 특징인 ‘가독’이란 개념은 ‘집안의 총독’이란 의미이다. 곧 가장(家長)은 군대의 총독처럼 가족에 관한 강력한 통솔 권한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강한 남성상과 온순하게 내조하는 여성상, 그리고 부모에게 절대 순종하는 자녀상을 만들었다. 때문에 힘들어도 강한 척하는 남성, 부당함에도 침묵하고 순종하는 여성, 부모에게는 그저 “네”라고 말하는 부자 관계를 만들어냈다.


 둘째, 메이지 민법에 담긴 군국주의 정신은 가족문화를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군대 문화는 대장을 중심으로 서열을 정하고, 상명하복(上命下服: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의 원칙으로 조직 계통을 단순화한다. 호주제 역시 가독의 권한이 매우 강했기에 구성원들은 가장의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가정의 관습과 사유 구조는 그대로 사회로 연결된다. 호주제가 위계를 중시한 상명하복의 가족문화를 만들어냈듯, 조직 문화에서도 선후배의 위계를 따지고 상명하복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도 연배가 높은 분들은 직장 생활과 가정에서 상명하복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주자학의 종법적 사고에 메이지식 호주제가 만나 가족 간의 권력 서열을 강화하고 여성의 지위를 급격히 하락시켰다. 종법에도 서열 관계는 있었지만 주로 제사나 의례 등에 사용되는 서열일 뿐이었다. 며느리는 언젠가 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어 나름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삼종지도가 있어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효(孝)로써 순종해야 했다. 하지만 호주제에서 여성은 철저한 무능력자였다. 호주는 남성만 가능했기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라도 들여야 했고, 시동생이나 미성년자 아들이 호주가 돼도 여성은 법적 권한이 없어서 호주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때문에 여성의 지위는 실질적으로 하락했고, 군림하는 가장과 남성을 만들었다. 


 넷째, 호주제는 일본의 가족문화인 이에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 가독은 일본의 이에 문화에서처럼 가족의 오야붕[親分, 큰집 같은 개념]이 되어 모든 통솔·결정권을 갖고, 가족 구성원들은 꼬붕[分家, 작은집 같은 개념]이 되어 절대 복종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정치적으로 확장하여 천황가는 총본가, 국민들은 분가로 규정했다. 즉, 천황에 대한 효와 충성을 강조하는 가족국가관을 이식하여 ‘지도자는 곧 어버이’라 여기며 전체를 위해 충심으로 헌신하는 전체주의 사고를 갖게 만들었다.


 다섯째, 일하는 여성을 낯선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에 문화가 규정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은 ‘밖에 나가 일하는 남성과 집에서 내조하는 여성’이다. 전쟁기에 여성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충실한 병사를 많이 낳고 길러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다산한 여성을 표창하거나 우량아 대회를 열어 널리 권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기혼 여성은 법적 무능력자였기 때문에 직접 직업 계약을 맺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여성이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따라서 남성처럼 큰일을 하는 여성의 모습은 점점 낯설고 어색해졌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소유화하는 관념을 정착시켰다. 가족 구성원들의 결혼, 이혼, 이동, 상속, 직업 계약 등에는 호주의 허락과 동의가 필수였다. 어려운 집안을 돕고자 딸이 공장이나 식모로 갈 경우, 계약은 당사자인 딸이 아닌 호주가 해야 했고, 여자에게는 재산 관리 권한이 없었기에 월급의 관리 권한도 호주에게 있었다. 이처럼 거주를 결정하고 법적 계약을 맺을 모든 권한이 호주에게 있었기에 의당 가족은 호주의 소유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혼한 전처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데서 일어나는 범죄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이다.      


 현재의 가족법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생소한 내용이지만 2008년까지 우리 부모 세대는 이러한 제도하에서 살아왔다. 이처럼 비근대적인 호주제를 일본에서는 이미 1947년에 폐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헌법불일치 결정이 내려지고 2008년 시행되기까지 지난한 다툼을 겪어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 실시한 황국신민화 정책이 많은 이들의 관념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호주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민족의 전통’이라는 오해 속에 의미 없이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그리고 호주제가 폐지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호주제의 흔적은 우리 가족문화에 여전히 굳건하다.          



자연에 호주제가 있다면 호주는 남성일까? 여성일까?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이자 생명 다양성 전문가인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자연계 동물들 참 많이 관찰했는데 동물들 사회에는 호주 제도라는 게 없더라. 근데 만일 내가 호주 제도를 동물들 사회에서 발견한다면 호주는 영락없이 암컷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연계는 암컷이 중심이기 때문에”라면서, 덧붙여 가장은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고, 성씨도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 문화가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라 전해 주고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가족문화를 만들어 가려면 기존의 낡은 관념은 정리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뿌리에는 전통이란 이름을 한,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여전하다. 친일 청산 없이는 새로운 역사로 나아갈 수 없듯이, 왜곡된 관습의 본질을 직시하고 청산하려는 노력 없이는 새로운 가족문화도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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