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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Sep 28. 2021

일제가 꿈꾼 여성 교육의 목표 : 현모양처론(2)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교와 주자학의 이상적 여성성     

 유교의 이상적 여성상은 ‘효부열녀’(孝婦烈女: 효성스런 며느리, 여공[女功]과 가사에 충실하고 정숙한 아내)였다. 유학은 삼강오륜을 중시했는데 특히 효(孝)를 모든 덕목의 근본으로 삼았다. 주자학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부계 혈통 가문(성씨)의 영속성을 중시하고, 혈통의 순수성을 담보할 여성의 열(烈: 절개, 지조)을 강조했다. 효는 가깝게는 부모 봉양부터 멀게는 조상 봉제사까지 아우른다. 때문에 유교에서 ‘좋은 여성’이란 시댁 어른들을 평생 봉양할 ‘효성스런 며느리’의 이미지였다.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은 여기에 평생 재혼하지 않고 시댁에 뼈를 묻을, 한 가문에 대한 충성과 정절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자식 양육과 교육에 대해서는 ‘엄부자모’(嚴父慈母: 엄하게 바로잡아주시는 아버지와 자애롭게 훈육해 주시는 어머니)라 하여 부모의 역할을 모두 강조했다. 그리고 조선은 오랫동안 학문[文]을 중시하여 남녀 불문하고 어짊[仁]과 지혜를 갖춘 ‘덕’(德)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일본 이에[家] 문화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근대적 여성상 : 현모양처론     

반면 일본의 전통적인 ‘이에 문화’는 혈통의 유지보다 이에 전체의 유지와 영속성을 더 중히 여겼다. 때문에 이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친자식을 두고도 더 훌륭한 양자를 들이거나, 데릴사위로 대를 잇거나, 아예 여성 당주를 세우기도 했다. 그렇기에 ‘좋은 여성’이란 역시 이에의 유지와 계승에 보탬이 되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오랜 무사 정권의 영향으로 사무라이 정신[大和魂: 야마토 다마시]을 숭상했다. 사무라이 정신은 본질적으로 ‘강함’을 추구하는데, 강함의 기준은 곧 ‘남성다움’이었다.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이미지는 조선보다 더욱 확연히 구분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메이지 정부는 근대화의 요구와 군국주의 야욕에 걸맞은 근대적인 여성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일단 당시의 여성상은 언젠가 반드시 결혼하여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을 전제로 했다. 그들이 생각한 근대적 여성이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생산하고 양육하여 훌륭한 천황의 신민으로 길러내고 국가에 헌신케 하는 ‘총후보국, 총후부인’이었다. 총후보국(銃後報國)이란 ‘전장의 후방에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며, 총후부인이란 ‘남자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난 뒤 후방의 일을 내조로써 책임지는 부인’이란 의미다. 그리고 그런 요구에서 나온 것이 바로 ‘양처현모론’이었다. 


 그렇다면 양처현모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선 남편을 즐겁게 할 기예와 내조 능력을 가진 재주 있는 아내이다. 예쁘게 수예를 놓고 집을 꾸미며, 효율적이고 깔끔한 살림 기술로 ‘집은 즐겁고 편안한 곳’이란 만족감을 주는 아내. 일본 정원처럼 다소 인위적인 ‘상냥함, 귀여움, 요염함’으로 남편의 ‘남성다움’을 오염시키지 않은 채 즐거움을 주는 여성. 또한 바깥 일 하는 남편이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가족 돌봄과 자녀 교육을 전담하는 아내.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길러내 진충보국(盡忠報國: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헌신하는 현명한 어머니. 이것이 바로 메이지 시대 양처현모의 이미지였다. 

즉, 첫째가 집 안에서 즐거움을 주며 가사를 전담하여 내조하는 ‘아내의 역할’(양처)이었고, 둘째가 육아와 자녀 교육을 전담해 황국신민으로 키워내는 ‘훌륭한 어머니’(현모)의 역할이었다. 이로 인해 20세기 일본은 ‘바깥일은 남편의 일, 가사와 자녀 교육은 아내의 일’이라는 양분화된 성 역할을 정착시켰다.       

      

현모양처론: 19세기 후반 일본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양처현모론’을 기반으로 한다. 집안을 잘 운영하여 남편을 편안히 해주고, 기예 등을 익혀 남편을 즐겁게 위안하는 ‘어진 아내’. 그리고 황국신민화 교육을 자녀들에게 성실히 수행하여 가족들이 일제에 의용봉공(義勇奉公, 국가나 사회를 위해 힘을 다해 희생함)하게 하는 담대하고 ‘현명한 어머니’를 말함. 


보통 일제시대를 식민통치의 성격에 따라 초기 10년간의 무단정치 시기(헌병경찰제도, 토지조사사업, 회사령, 조선교육령 등), 3·1운동 이후의 문화 정치 시기(보통경찰, 산미증산계획, 내선융화정책 등), 그리고 1930년대 이후의 대륙병참기지 시기(민족말살정책, 내선일체 및 황국신민화정책 등)로 구분한다. 

무단정치 시기부터 일제는 이 땅에 ‘양처현모’의 여성상을 심어 놓고자 했다. 조선에서 우수한 천황의 국민을 생산하고 교육해내려면 가정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1906년 일본 문부대신은 ‘여성 교육은 그 본분인 양처현모를 양성하는 데 있다’고 공표하고, 1911년부터는 양처현모 교육을 본격화했다.(「여성 고등보통학교 규칙」 또 1938년에는 「고등여학교 규정 개령」을 내놓았는데, 제1조의 내용은 “국민 도덕의 함양과 부덕의 양성에 뜻을 두고 양처현모의 자질을 얻도록 하여 이로써 충량지순한 황국 여성을 육성함에 힘써야 한다”였다. 즉, 일제가 조선 여성을 근대화시킨다는 명목으로 행했던 여성 교육의 최종 목표는 양처현모 양성이었다. 조선 여성들을 천황에게 충성하는 양처현모로 만들어야 남편과 자녀를 병사로 길러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녀자를 감화시키는 데서부터 들어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식민지 정책 또는 종교 정책에 부녀자의 감화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깊다고 생각한다. 주아심(주체적 사고), 자각심이 적은 감정적인 부녀자가 남자보다 훨씬 감화시키기가 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일단 감화된 이상 다시 그것을 고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성이 감화하면 남자는 저절로 감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밑의 밑에서부터 두드려가지 않으면 통치의 근거가 진정하게 되어가지 못할 것이다. 조선인의 가정을 풍화(風化: 교육이나 정치의 힘으로 풍습을 교화하는 것)하는 것은 곧 전 사회를 풍화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야 비로소 우리와 저들과의 감정적 융합이란 것이 영구히 될 수 있는 것이다.” _1910년대 하라가 참사관이 경성여성고등보통학교를 사찰하고 쓴 「조선의 여행」 중 일부     


일제는 여성을 교육하면서 양처현모 교육만 할 뿐, 식견과 견해를 넓히거나 주견을 가질 수 있는 참교육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여학교의 과목은 ‘수신’ 교과를 근본으로 삼고, 양처현모가 되기 위한 기예와 일본어, 일본사 등에 집중됐다. 수신은 기본적으로 황국신민화 교육의 축이었는데, 특히 남성 가장의 명령을 참고 따르는 여성상 등, 아내의 덕을 포함한 국민윤리 교과였다. 1911~22년까지 여자고등학교 수업시간표를 보면 매주 수신 1~2시간, 가사 2~4시간, 일본어 9~12시간, 그리고 재봉과 수예를 10시간씩 배웠다. 

     

“또 전혀 식견과 이론을 주장하여 교도(敎導: 가르쳐서 이끎)할 것은 아니니 조금이라도 식견이 열리면 자기의 주견이 서는 동시에 좋은 일로 알려니와 또 전일의 좋지 못한 일을 싫어하는 마음도 심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_(경성여고보 교장 오타 히데오(太田秀橞), 「신교육을 受한 여성의 처지에 대하여」, 《매일신보》 1916.1.1.     


일제의 현모양처 교육이 남긴 것     

1910년도부터 시작된 일제의 현모양처 교육이 이 땅에 뿌리내린 결과는 ‘외로운 아버지와 가엾은 어머니의 탄생’이었다. 일제 군국주의식 ‘멸사봉공’의 짐을 지고 바깥일에만 전념하는 대신 자유롭게 로맨스를 피우던 아버지들, 가족들에게는 그저 ‘어렵고 먼 아버지’로 남을 뿐이었다. 평생 가사와 내조, 자녀 교육에만 헌신한 어머니들은 ‘평생 고생만 하던 불쌍한 우리 어머니’로 기억될 뿐이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음과 양도 합해져야 새 생명이 잉태된다. 가정마다 합의한 역할의 차이는 다를지라도 상대를 위한 내조와 존중, 그리고 자녀 교육만큼은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녀의 역할을 반으로 나눠 봤자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도 반쪽이 될 뿐이다. ‘남자는 바깥일과 성적 자유, 여자는 가사·육아와 정조’를 천직으로 여기던 역사적 경험을 잘 되새겨 보자. 그러한 가치 속에서 남자도 여자도, 부모도 자식도, 모두가 온전히 행복할 수 있었던가?

이제 일제 군국주의가 만들어 낸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존부모화부부’(尊父母和夫婦: 존경받는 부모와 조화로운 부부)로 대신하는 것은 어떨까? 자식이 존경할 만한 멋진 가치관을 가지고 훌륭한 인생을 사는 부모,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며 화합하는 부부, 그러한 부부가 부모가 되었을 때 화목한 가정과 훌륭한 자손은 응당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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