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제는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문화에 메이지 민법의 호주제를 도입(1921년)하여 전쟁 동원을 위한 인적 자원의 파악과 통제를 쉽게 하고자 했다.
일본의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 1857~1892]는 『도요신문[土陽新聞]』에서, 「이에에 호주가 있는 것은 전제정치의 작은 모형이다」는 글을 싣기도 했다.(최석완 역, 『일본 여성의 어제와 오늘: 성, 사랑, 가족을 통해 본』, 2017, 어문학사, p.253.) 메이지 민법이 진행한 이에 제도, 즉 호주제는 사무라이식 이에 제도를 천황 사상과 결합하는 한편,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서양의 가부장제와 뒤섞은 것이다.
호주제는 몇몇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이 땅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을 바꿔 갔다.
첫째, 호주제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하며, 가독권(家督權: 가장의 권한)의 상속은 장남에게만 가능했다. 딸만 있으면 첩의 아들이나 양자를 들여 상속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들을 핑계로 첩을 갖거나 호주를 이어 가려면 원치 않아도 양자를 들여야 했다. 이에 딸만 있을 때 첩을 들이거나 양자를 얻는 일이 당연시되었다.(메이지 민법 제970조)
둘째, 호주의 지위와 모든 재산은 가독(家督)을 상속한 장남에게 단독 상속됐다. 때문에 가장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상속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지위는 더욱 낮아졌다.(메이지 민법 제964조)
셋째, 여자가 혼인하면 법적 무능력자가 되어 대부분의 법률관계로부터 배제됐다. 때문에 남편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법률 행위도 불가능했다. 즉, 소송이나 직업 계약 등도 불가능했다.(소송, 신고 등의 법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 메이지 민법 제14조)
넷째, 유산 상속 등 아내 소유의 특유재산과 벌어오는 모든 임금은 남편에게 관리 권한이 넘어갔다. 때문에 딸에게도 균분 상속하던 오래된 전통은 사라지고, 아내는 가장의 소유물이 되어 갔다.(메이지 민법 제801조)
다섯째, 아내에게만 엄격한 정조 의무를 두어 간통하면 처벌받고 이혼의 원인이 됐다. 하지만 남편은 유부녀와 간통해서 형사처벌을 받았을 때만 이혼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남자의 외도와 축첩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낳게 했다.(메이지 민법 제813조 제2·3항)
여섯째, 미성년 자녀의 친권은 아버지에게만 주어졌다. 때문에 이혼하면 어머니는 자식과의 인연도 끊어졌다. 따라서 자녀는 아버지의 소유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메이지 민법 제877조)
일곱째, 호주는 가족이 사는 곳을 지정할 권리, 혼인과 입양을 허락할 권리가 있었다. 또한 가족이 복종하지 않으면 호적에서 제외시킬 권한이 있었다. 때문에 며느리의 경우 호주인 시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결혼과 이혼이 불가능하고, 잘못하면 호적을 파 버릴 수도 있었다. 더불어 호주는 남성에게만 상속되었기에 시아버지나 장남인 남편이 사망하면 시동생이 호주가 되거나, 그조차 없으면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시댁과 남성의 권한 및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메이지 민법 제749~750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