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커튼 사이로 맨발을 디밀 듯 아침 햇살이 빼꼼히 들기 시작했다. 밤새 고여 있던 묵은 공기를 흔들며 노인이 일어섰다. 환자보다 먼저 일어난 보호자들이 침상을 두른 커튼을 열고 기지개를 켰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뼈마디를 찾아 주섬주섬 새로 맞추듯 사람들은 고단한 몸을 일으켰다.
"밥 나올 시간 다 되었어. 어서들 일어나."
노인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느껴졌다. 퇴원하면 새 장가나 가야겠다고 떠들던 호기(豪氣)는 여전했다.
4인실 병실엔 빈 침상이 없었다. 대부분 관절 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들이었다. 주로 50대와 60대 남자 환자들이었는데 노인만 80대 초반이었다. 노인은 수술 경과가 좋아 천천히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 속도가 빨랐다.
"영감님, 대단하십니다. 워낙 근력이 좋으시니까 금방 회복하시네요."
같은 방 환자들이 모두 노인을 부러워했다.
"이래 봬도 내가 맹호부대 출신이야. 나 죽으려면 한참 남았어."
굵고 걸쭉한 목소리가 군가(軍歌)처럼 수시로 튀어나왔다.
"어이. 거기 마포 친구, 거기 대방동 친구, 굿모닝이여. 구웃모오닝!"
노인은 굿모닝을 외치며 병실 안 화장실 문을 밀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2분 후에 노인은 화장실 안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