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하는 동안에 웃음을 참지 못한 건 내 실수였다. 그렇다고 빙충맞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조문하게 되었던 점, 그러다 보니 분향대 앞에 두 줄로 서게 되었던 점, 뒷줄에 서게 된 내가 앞 사람 발바닥을 보고 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런데 하필 앞 사람 양말 바닥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던 점, 절을 하고 일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허리를 세우고 영정 사진을 대하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80세로 영면하신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양말에 구멍이 좀 뚫렸으면 어때.’ 하고 달래는 듯한 얼굴이었다. 고인의 이마와 입 주변엔 잔주름이 많았다. 생전에 웃음이 많으셨던 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랫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숨어 있던 핸드폰에선 매정하게도 ‘군밤타령’이 흘러나왔다. ‘바아람이 분다 바아람이 불어 연평바아다에 어어얼싸 돈바람 분다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여.....’ 놀란 핸드폰 주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상주와 맞절도 하지 못한 채 분향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럴수록 나는 엄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가장 엄숙한 표정으로 폭소(爆笑)를 참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연코 설사(泄瀉)를 참아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고인(故人)이 향년(享年) 80이라 하니 뜬금없이 요즘 유행하는 ‘적정 수명’이란 말이 생각났다. 내 나이 올해로 육십 중반, 아직은 어린 나이다. 그렇더라도 이른바 ‘적정 수명’에 이르기까지는 십 수 년밖에 남지 않았다. 1970년생인 어느 변호사가 한 말이라는데 오늘은 그분에게 전화나 걸어보려고 한다. ‘적정 수명’을 좀 늘려달라고..... ‘애고. 늙으면 죽어야지.’ 하시던 할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물론 거짓말로 밝혀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