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 광장 가운데쯤에서 안경 쓴 노인이 일없이 서성이고 있다. 가만 보니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쓴 붉은 재킷을 입고 있다. 목에 걸고 있는 작은 확성기 속에서는 찬송가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불신지옥'이란 말이 무서워 갑자기 교회에 가고 싶어진다.
그 노인으로부터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웬 승려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낡은 복전함을 자리 앞에 모셔놓고 목탁을 두들긴다. 복전함 옆에 놓인 조그만 녹음기에서는 쉴 새 없이 불경 소리가 흘러나온다. 찬송가와 불경 소리가 뒤섞여 광장을 부지런히 싸고돈다. 굉장한 불협화음이다. 시끄러워 환장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장소는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 복도 받고 부처님 복도 넘치게 받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광장이 끝나는 곳쯤엔 로또복권 파는 부스가 있다. 부스 앞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나이 먹은 사람 55%에 젊은이가 45% 정도다. 로또복권 1등을 수 없이 배출한 명당자리라는데 정말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 부처님이 종일토록 함께 하고 계신 곳이니 로또가 안 터질 리가 없다. 그 부스 위쪽으로는 코로나 임시 선별 검사소가 있다. 하얀색 포장 안으로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들어간다. 하나같이 표정 없는 얼굴이다. 무표정한 사람들 등짝 너머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나무아미타불, 나무 코로나19불!'
청량리역 광장에 가면 시끄러워 환장한다. 전혀 청량(淸凉)하지 않은 청량리 역이다.
2021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