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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11. 2024

단편소설, 오류(五柳)선생 표류기(1)

학교를 버린 아이

“한판 뜹시다.”

가래 끓는 소리와 어울린 굵은 저음이 핸드폰 밖으로 튀어나왔다.

 “뜨다니 무얼 뜬단 말입니까?”

 “나도 내 새끼한테 매 한 번 든 일 없는데 당신이 뭔데 우리 앨 팬단 말이야!”

볼멘 억양이 냉큼 복장이라도 내지를 기세였다.

 “인정합니다. 그 점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해진이를 위해서라면 저도 할 말이 좀 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기죽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 이번 한번뿐이었던가. 말하는 뽄새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당장 쫓아 들어갈려다 이쯤에서 참는 거요. 여러 말 말고 퇴근 후에 거기서 좀 봅시다. 양유정 못 미쳐서 큰길 모퉁이에 희정다방이라고 있소.”

 “절 만나고 싶으시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내일 학교로 오시죠.”

 “각설하고 이따 봅시다.”

 새 학기 첫 시간부터 그 아이는 졸기 시작했다. 제풀에 지쳐 조는 거라면 모르는 척 그냥 넘겨 버렸겠지만 이건 대놓고 잠을 청하는 꼴이었다. 책은커녕 메모지 한 장 없는 빈 책상에 얼굴을 모로 붙인 채였다. 늘 그랬듯이 새 학기 첫 시간 수업 분위기는 팽팽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였다. 첫 시간에 아이들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면 일 년 내내 힘들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 터에 반장의 인사 구령에도 아랑곳없이 고갤 묻고 잠을 잔다는 건 중대한 도전이었다. 한마디로 교직 이십칠 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불쑥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뜸 들이며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혼에 구멍을 낼 만큼 뜨겁게 닦달했을 텐데 간신히 눌러 참았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선생은 공급자에 불과했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이고 수요자는 곧 소비자일 것이 아닌가. 사려는 사람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의 눈치를 보아가며 흥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릇 파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의 아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 논리가 아닌가. 교직이 성직임을 운운하면서 가없는 희생을 요구하다가도 일순 쇄신의 대상이요, 부정이 만연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내 이름은 이렇게 쓴다.”

그는 칠판에 큰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김, 도, 진’

 매년, 첫 수업 시작과 더불어 있어왔던 의식이었지만 어쩐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도 뭣도 아닌 그저 글자 세 개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 선생의 이름이 될 것인지, 가게 주인의 이름이 될 것인지는 지나 봐야 알 터, 이즈음 들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짜증스러웠다.

 “내가 우리 학교에 근무한 지는 올해로 이십칠 년째다. 너희들이 태어나기 십년 전부터 나는 여기에 서 있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십칠 년을 강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 볼뿐이었다. 오히려 ‘당신에게 이십칠 년은 훈장 같겠지만 우리에게 그 이십칠 년은 당신과의 거리에 불과해.’라고 빈정거리는 듯 했다.

 그는 잠자코 출석부를 열었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얼굴을 익히는 게 다음 순서였다.

 “정교진, 송대훈, 유명재, 엄익훈……”

 이름 불린 애들마다 더러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혹은 덤덤한 눈빛으로 그에게 낯을 들어 보였다. 어린 얼굴들을 마주 바라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보호본능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그런 느낌은 좀 복잡한 것이어서 간혹은 뜬금없이 연민이 되기도 하고 측은지심이 되기도 했다가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느낌이 되어 감성을 은근히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 교사다. 저들이 누굴 믿고 따를까.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정성껏 저들을 가르쳐야 한다.’ 가끔은 ‘무정’에 등장하는 계몽주의자들처럼 생각을 다잡아 볼 때도 있었다. 그것이 사명감이었든, 자아도취였든, 착각이었든 간에 그런 생각은 그가 대한민국 교사라는 별 두드러질 것 없는 신분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하곤 했다. 교사가 청소년 직업 선호도 상위 그룹에 끼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를 사업가보다 훌륭한 제자 키워내는 교육자가 더 낫다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줄 수도 있었다. 최소한 그런 때 만큼은…….

 “정해진…”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는 그때껏 잠자고 있던 그 아이, 정해진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깨를 서너 차례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부아가 실린 손바닥으로 등짝을 호되게 얻어맞고 나서야 정해진은 고갤 들었다.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면서 정해진은 곁눈질로 그를 올려다봤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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