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그가 관리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 증거는 명백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만 되면 그는 어김없이 내게 카톡을 날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퇴직한 지 오 년이 넘었지만 그는 삼십년지기 직장 동료이자 친구였다. 민감한 집안일이나 소소한 개인사까지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간의 정리(情理)로 봐서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그런 기성품 편지는 보내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평생 남에게 험한 말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이곤 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들리는 ‘카톡’ 소리가 까마귀 우는 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묵음으로 돌려 놓았지만 별반 차이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아침 인사장을 받는 대로 즉시 답장을 썼다. 부앗김에 하는 짓이었는데도 답장은 늘 매끄러웠다.
‘나는 기성품 인사장을 경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답장을 쓴다. 부디 그 뜻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속으론 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읽기를 기다렸지만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냉큼 답장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말을 챙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아마 원래부터 답장을 원치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의 아침 카톡 인사장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당신은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 쉼 없이 걸어가는 인생길에 좋은 인연과 동행할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그때까지 나는 내가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나를 보고 보석처럼 빛난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깍듯한 존댓말을 구사했으니 몹시 생뚱스럽고 간지러웠다. 과하게 멋진 풍경 사진에다 예쁜 글씨가 찍힌 인사장이었지만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가 관리하는 사람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인사장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들 도처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졸지에 도매금으로 팔린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게다가,
‘사는 것에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피곤해서 못 삽니다. 쉬엄쉬엄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세요.’
새로 차린 회사가 어려워 당장 직원들 월급 걱정을 해야 할 판에 이런 인사말은 거의 테러(terror) 수준이었다.
‘행복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어야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나는 나무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조강지처 아내를 놔두고 심심하면 오입질이나 하러 다니는 작자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씨불이다니....... 이건 인사가 아니라 패악질이요 행패였다.
‘천년 만에 핀다는 길상화 꽃이 피었네요. 이 꽃 보시면 무병장수합니다.’
괴기스러운 분홍색 꽃나무 사진을 올려놓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인사장도 있었다. 놀란 나머지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그런 꽃은 찾을 수 없었다. 천년에 한번 핀다니...... 그렇다면 기원 후, 딱 두 번 피었다는 얘기 아닌가. 이쯤 되면 매일 아침마다 그는 내게 ‘강뻥’을 친 거나 다름없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놓고 갑니다.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어느날, 쌍화차에 노른자와 잣이 둥둥 떠 있는 인사장 그림을 본 순간, 나는 드디어 화를 내고야 말았다.
‘이 자식이 이젠 대놓고 사기를 치는구나. 그래, 너는 항상 그랬었지. 나를 자린고비쯤으로 만들 생각이냐? 그림 속 쌍화차를 보고 먹은 셈 치라는 거냐? 그래, 나는 너 정도는 아니다. 임마.’
나는 홧김에 카톡 쇼핑 코너의 ‘선물하기’에 들어가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클릭했다.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는 사나운 손길로 단박에 결재해 버렸다. 곧바로 카톡 메시지를 붙여 보냈다.
‘날씨가 쌀쌀해졌네. 따뜻한 커피 한 잔 보내네.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나.’
존댓말로 받은 말을 낮춤말로 바꾼 메시지였다.
네 시간쯤 지난 뒤에 그의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웬 선물? 하여간 잘 먹겠네. 고마워. ^.^’
자신이 오늘 아침에 무슨 내용의 카톡 메시지를 보냈는지 까마득하게 잊은 듯한 대답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아침 일곱 시 반이면 어김없이 그의 카톡 인사장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내게 보냈던 카톡 인사말 카드 중에서 멋진 내용을 골라 그대로 복사했다. 그런 다음, 그가 보낸 인사장에 답장으로 붙여 보냈다.
‘오. 이런 멋진 인사 카드는 어디서 나는 거지?’
기대했던 답이 올라오자 나는 괜히 유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