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인암(舍人巖)에서

- 운전기사 박대박 씨의 경우

by 은하수

운전기사는 자기 이름을 ‘박대박’이라고 소개했다. 얼핏 보아 육십은 되어 보였다. 짧은 머리와 거무스름한 낯빛이 다부진 인상을 풍겼다. 얼굴엔 잔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두툼한 목 아래로 금 사슬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같은 버스에 탔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아닌 말로, 버스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면 모두가 운명을 같이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샌님보다는 터프(tough)한 기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돌발 사태에 과감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서였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일 테지만 일단 목숨을 맡겨 두었으니 그에게 호감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박대박이란 이름이 그의 본명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박’이라는 말은 본시(本是),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이 말은 원래 도박판에서 두루 쓰였다. 크게 한탕 했다는 의미를 지닌 일종의 은어(隱語)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인터넷과 예능프로그램, 영화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대중어로 자리를 잡았다. 뜻도 변해서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지금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정치인들 입에도 오르내려 2014년에는 ‘통일대박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왜 ‘대박’이었을까.

우리는 도담삼봉 유람을 마치고 100여 미터 높이의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은 쪽머리에 옥양목 저고리를 차려입은 젊은 새댁같이 우아했다. 단양 시내를 감돌아 나가는 남한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줄기는 마치 한삼 자락 휘날리듯 굽이굽이 흘러내렸다. 하늘은 아득했고 소백(小白)의 산줄기는 젊고 푸르렀다.

단양강 잔도 길을 지나 사인암을 찾았다. 기실(其實) 이번 문학기행은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우탁(禹倬)과 그가 지은 탄로가(嘆老歌)가 중심 테마였다. 사인암(舍人岩)은 큰길에서 오 백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황정산 계곡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사인암의 발등을 씻으며 흘러내렸다. 사인암은 생각보다 웅장하지도, 기괴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십여 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이 종횡으로 칼날을 맞은 듯 비장(悲壯)하게 서 있었다. 어찌 보면 갑옷을 두른 무신(武臣)이 임금의 명을 기다리는 듯한 형국이었다. 우탁의 지부상소(持斧上疏, 도끼 상소) 이야기가 언뜻 떠올랐다.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이 도끼로 나의 목을 치라는 충정(忠貞)이 서릿발처럼 매서웠을 것이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 사인(舍人) 벼슬을 살던 우탁이 이곳에서 노닐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절벽을 횡으로 긋고 지나간 바윗금들을 찬찬히 올려다봤다. 우탁 선생도 더러는 이쯤에 서서 암벽의 자태를 즐기곤 했을 것이다. 그는 1262년에 태어나 1342년에 타계했다. 향년 81세였다. 우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684년이 지났다. 그 세월의 더께가 파란 바위옷이 되어 암벽에 향기처럼 머물고 있었다. 익수(益壽)의 욕망은 동서고금 없이 매한가지일 터, 산을 에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암벽 위 구름 그림자가 계곡물 속에 잠겼을 때 그는 정자에 홀로 앉아 늙음을 탄식했을 것이다.

태초 이래,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뜻하지 않게 태어났다가 창졸간에 숨을 거두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한들 끝내 늙음과 백발을 막을 수는 없다. 탄로가에는 인생무상의 서글픔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려는 달관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사인암을 둘러보는 일정은 더뎠다. 게다가 일행이 두 무리로 나눠지는 바람에 시간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나는 일행보다 앞서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박대박 씨가 버스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연락도 없이 늦어져서……. 많이 기다리셨지요?”

“아닙니다. 시간이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아요.”

박대박 씨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하루 종일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그래도 하시는 일이 이름처럼 대박 나셔야지요.”

“대박은 이미 일곱 달 전에 났었지요.”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가 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았습니다. 의사가 장례 준비하라고 얘기했다는데 다음 날 깨어났지요. 제 이름은 박명환입니다.”

방언 터지듯 박명환 씨의 말이 이어졌다.

“사경을 헤매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그게 임사체험이었던가 봐요. 목숨이 끊어질 땐 단전 아래서부터 숨이 점점 약해지다가 명치 부근에 와서 한동안 머물게 된대요. 숨은 사그라져 가는데 오히려 그때가 가장 편안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어두운 터널을 지나 파란빛을 향해 둥둥 떠가는 기분……. 그러다가 마지막엔 숨이 가슴에 차서 죽게 되는데 그 바로 직전에 깨어난 거지요. 어지간해선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그동안 미친놈이란 소리 자주 들었어요. 가끔은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생각이 나요. 그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그 수많은 재산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갔으니 말이죠. 그분들이나 저나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죽음 앞에서…….”

뒤처진 일행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계곡물에 적셔진 사인암의 그림자가 저녁 바람에 일렁였다. 태어나 살다가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것, 이 땅에 내려와 살다 간 인간들이 어김없이 거쳐 갔던 그 길, 늙고 병듦을 탄식한들 무엇하랴.

절벽 아래 남조천 물결이 역동(우탁의 호) 선생의 너털웃음처럼 껄껄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KakaoTalk_20250620_111235379.jpg
KakaoTalk_20250620_111517005.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