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구는 학교 가고 나는 중랑천 둑길을 걷다가 길옆 카페에서 모닝커피 한잔하고 있네. 칠십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그래. 좋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지.
'어? 그런데 자꾸 콧물이 흐르네.'
손수건이 없어서 손등으로 입술 위를 쓱쓱 문지르네. 둑 아래 동부간선도로 위를 돈 벌러 가는 젊은 차들이 쇅쇅 달려가네. 모두들 바쁘지만 행복해 보이네. 잠자코 커피잔을 집어 들었네. 그런데… 손등에 잡힌 찌글찌글한 주름이 눈에 거슬리네.
손가락으로 팽팽하게 당겨 보지만 도로 화라락 쭈그러지네그려. 나는 갑자기 속으로 중얼거리네.
'그런데… 이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할머니 대소변을 아홉 해나 받아내신
월계리 박훈장 댁 셋째 딸 우리 모친
봄여름 갈 겨울 없이 때에 찌든 흰 고무신
오월도 스무날에 흰 백합 피어날 때
모진 손 쪽진머리 얼굴 가득 보리꺼럭
어머니 태어난 날도 잊은 듯이 사셨다네.
울 너머 참나무에 된서리 흩날리고
아궁이 쇠죽 끓여 고된 하루 채비할 제
장지문 문풍지 소리 가슴 속에 울던 바람
어머니 무릎 베고 잠들었던 별 뜬 밤에
꺼질까 날아갈까 잠결에도 품은 사랑
그 옷깃 따스한 음성 갈바람에 비껴가네.
종로3가역에 내려섰을 때까지도 입안의 사탕은 그대로였다. 입냄새 풍기지 말라고 아내가 입안에 넣어준 사탕이었다.
역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섰다. 안에 고여있던 오줌 지린내가 입구에까지 밀려 나왔다. 가장자리 변기 앞에 섰다. 말없이 일을 보고 있는 사내들 모두가 70대 노인들로 보였다.
"전립선염 함부로 수술하면 안 됩니다."
맨 끝에 서서 일을 보던 사내가 벽을 향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일순, 정적을 깨고 한 남자가 대꾸했다.
"지금 누가 말씀하셨나요?"
언뜻 날카로운 시비조였다. 그러자 가장자리 남자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나요!"
갑자기 화장실 안에 싸한 긴장감이 흘렀다. 남은 오줌을 털어내면서 나중 사내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거 딱 맞는 말씀이오. 그거 후유증 가운데 하나가 발기부전 아닙니까."
사내는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종로3가역 2번 출구 밖으로 나왔다. 입안의 사탕은 어느새 다 녹아서 모래 한 톨만큼 남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으깨어 부서지는 사탕처럼 가지 말고 다 녹을대로 녹아 흔적없이 사라지는 그런 사탕처럼 살다 가자.'
내가 교육부장관 물망에 오른다면 과연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임에 틀림없겠지만 재밌는 상상이다. 결론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1980년대 말, 나는 성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학생을 때려 코피를 흘리게 했고 교과 선생에게 대드는 학생의 안경다리를 부러뜨린 적이 있다. 수시로 체벌을 마다하지 않았던 무서운 교사였다.
도덕성 결함에, 폭력성, 법규 위반 등으로 크게 지탄받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내게 받은 상처를 잊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제자도 있으리라. 그러니 언감생심, 동네 이장도 아니고 교육부 장관 자리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쩌다 교장까지 하게 되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분에 넘치는 대우는 결단코 사양할 일이고 능력에 부치는 일은 과감히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그런저런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천변 둑길을 걷다 내려다보니 어느 고등학교 교문 근처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곳 지역구 국회의원의 얼굴과 이름이 훤하게 적혀 있다.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호가 선명하다. 그는 요즘 준강제 추행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교육 여건은 먼 데서 찾을 일이 아니다. 파렴치한 위정자들의 입방정부터 정화해야 하지 않을까.
둑길을 걷는 사람마다 두꺼운 옷에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다. 날씨가 차다. 영하 5도다. 이 한 겨울, 우리 사회의 체감 온도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