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맛있나?

처음의 기억

by 히히

처음의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커피’라는 음료를 처음 마셨던 순간을 떠올리려면, 시간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직도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은 평소 수업 대신 진행된 특별활동, 일종의 ‘과학 발명 수업’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몇몇 학생들과 함께 교실이 아닌 외부 공간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날씨는 5월과 6월 사이쯤.
해는 쨍쨍했고, 운동장은 여름처럼 짙은 녹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밝고 들뜬 공기 속에서 수업을 마친 우리는 자판기 앞에 모였습니다.
캔 자판기를 처음 마주한 초등학생 몇 명의 남자아이들.
자연스럽게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너 이거 마실 수 있어?”
“야, 그거 어른들이 마시는 거잖아.”
“이거 마시면 잠 안 온대!”

이제 와 돌아보면 참 유치한 대화였지만, 그때는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끝은 호기심과 허세가 결정했습니다.

자판기 구멍에서 차갑게 떨어져 나온 레쓰비 한 캔.
저는 호기롭게 그것을 손에 쥐었습니다.

“내가 마셔볼게!”

그리고 처음 입에 댄 커피의 맛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달콤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묘한 감촉.

금단의 음료를 훔쳐 마신 듯한 짜릿함.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스며들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한 캔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한결같이 단것을 좋아하던 저는 똑같은 캔을 하나 더 뽑았고,
그날 밤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가라앉지 않는 심장 박동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괴로운 속삭임 하나.
“다시는 커피 안 마신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커피는 제게 ‘금지된 음료’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마시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잠과의 전쟁을 치르던 때.

교실에선 졸음을 참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있고,
쉬는 시간엔 매점으로 달려가 캔커피를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책상 서랍을 살짝 열고, 아무도 모르게 홀짝이던 그 한 모금.
그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세상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쓴맛보다는, 작은 위로에 가까운 맛이었지요.

커피는 어느새 저와 친구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동료”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커피다운 커피’를 마신 건, 성인이 된 이후였습니다.

20대 초반, 카페 음료는 늘 달달한 메뉴가 우선이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쓴 것’으로 분류됐고, 저는 언제나 캐러멜 마키아토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에서 과제를 하던 중
유난히 귀에 자주 꽂히는 주문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왠지 나도 섞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쓴 줄 알면서도, 맛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괜히 그 어른스러운 흐름에 나를 얹고 싶었습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후후 불고, 천천히 한 모금.

그리고 바로 든 생각.
‘이딴 걸 왜 마시는 거지?’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쓴맛인지 고소한 맛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어중간한 감촉.
식을수록 더 쓴 기운이 입 안에 남아 끈적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의 커피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입 안에 남은 쓴 여운 때문일까요?
아니면 처음으로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는
그 어른스러운 기분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속으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돈 주고 먹을 음료는 아닌데…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아.”

지금의 제가 마셨다면 ‘추출 상태가 이상하다’거나
‘로스팅이 잘못됐다’고 분석했겠지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단지 멋있어진 듯한 착각만을 기억합니다.

쓴맛이 아니라, 경험이 남았던 겁니다.

여러분의 첫 커피는 어떤 기억인가요?
누군가에겐 자판기 캔커피,
누군가에겐 달콤한 믹스커피,
혹은 카페에서 마신 첫 라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모금이 남긴 감각은
시간이 흘러도 의외로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 한켠에서 여전히 은은하게 향기를 내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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