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이'가 되기까지...
“너는 글을 잘 쓰는구나.”
내 생애 첫 칭찬, 어린 시절 글짓기 선생님이 해준 그 말은 내 삶의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어려서부터 나는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아이였다.
5살이 될 때까지 엄마, 아빠와 몇 단어만 겨우 말하는, 부모님은 그런 나를 데리고 어느 병원에 데려갔다.
엄마는 담당 의사와 상담하고 있었다.
병원 침대에 앉아 있었던 나는
“엄마! 배고파. 집에 가자.”
라는 말이 불쑥 내 입에서 나왔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드디어 말문이 터졌다고 기뻐하며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말문이 터진 기쁨도 잠시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탓에 나는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년생인 언니는 남이 가르쳐 주지도 않은 한글과 알파벳을 척척 읽어내는 TV에 나올 법한 신동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9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동네 학원에 나를 보냈다.
처음 본 그 선생이라는 사람은 산수를 가르쳤다. 까칠하고 난폭했던 여선생이었다.
아이들에게 덧셈을 가르쳐 주고는 한 문제라도 틀리면 개수별로 따귀를 때리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아이들을 마구 때렸다. 그리고 갖은 협박으로 엄마에게 알리지 않게 아이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무서움에 벌벌 떨며 수업을 마칠 때면 같이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과 동네를 휘젓고 누구보다 더욱 신나게 놀았다. 그때 만난 친구가 나의 가장 오래된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 선생이라는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글짓기 선생님이 오셨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주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글짓기를 잘 가르쳐 주었다.
‘천재’ 소리를 들었던 언니와 달리 발달이 늦었던 나는 제대로 칭찬을 못 받고 자랐다.
어린 시절, 글짓기 선생님께서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해주었던 그 칭찬은 감격을 넘어 온몸에 진한 전율이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이후부터 글짓기와 연관되어 있는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국어의 관심은 문학 수업으로 이어져 윤동주 시인을 만나게 했다.
그의 시는 질풍노도의 시절 심적으로 방황했던 나를 붙잡아 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작가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늦게 말문이 터져 조리 있게 말도 못 해 늘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던 소극적이었던 내가 지금은 국어와 독서 논술을 가르치는 프리랜서 강사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처음 칭찬을 해준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그 선생님과 같은 일에 종사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숱한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운명적인 한 사람을 만났고, 내 꿈을 이루었다.
인생이란 누군가 짜여 놓은 각본대로 살아가는 것인지, 시간이 주어진 흐름대로 하루를 살고 순간의 선택들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는 여정일지, 참 알 수가 없다.
또한 예기치 못한 일들의 소용돌이 속에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위기 속에서 찾은 한 문장과 그 힘듦을 위로해 주는 것은 단 한 권의 ‘책’이 될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 준다면 글을 쓰는 게 때론 힘들고 아프기도 하지만, 내 작품이 당신에게 잔잔한 감동과 위로를 준다면, 나는 펜을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