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굴곡진 인생이 작품이 되다
<차이경 지음 / 이야기 장수 펴냄>
내가 차이경 작가님을 알게 된 건, 나의 브런치 공간 안에서 나의 몇 안 되는 작품 들 중 몇몇 작품에서 보여준 그녀의 작은 관심이었다.
그녀의 공간은 남들과 달랐다. ‘원조 고딩엄빠’라니, 방송 매체에서 보여주는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딸을 가진 엄마기에 앞선 걱정으로 저 프로그램은 언제까지 방영이 되는 걸까?
그때는 그녀의 작품 속으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 대상 수상 작품들이 나오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어머나! 나한테 관심을 보여줬던 그녀가 대상 수상 작가라니!’ 작은 탄식이 나왔다.
나는 다시 그녀의 공간에 들어갔고, 서점에 그녀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수상을 축하합니다. 작은 관심을 보여 주셔서 영광입니다.” 라며 짧게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작품들을 기억했는지 내 작품에 대한 칭찬을 해 주었다.
글을 쓸 때마다 간혹 딜레마와 회의가 들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참 좋았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감정의 진폭이 컸던 나의 작품의 여운과 팝업 전시 작품들을 쓰느라 좀 지쳐 있는 상태였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그녀의 작품, 작은 거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새 가슴인
나는 단숨에 읽지 못하는 그런 작품임을 알기에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도 좀 지쳐 있는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공간에 들어가 그 작품을 보고 있었다.
글의 중독성이란 이런 것일까? 남과 달랐던 그녀의 삶의 여정이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나의 감정과 컨디션에 따라 자꾸만 그녀의 작품 속으로 하루, 이틀... 그렇게 스며들어 갔다.
1980년대 혼란했던 시기에 그녀는 고등학생 신분에 아이를 낳았다. 세상에 모든 시선은 다 그녀에게 향했다. 서늘하고 따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몰아세웠다.
막말과 폭언을 일삼는 시댁에서 아기의 백일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 아기만을 빼앗으려는 시댁과 아기만을 지키려는 그녀와의 사투, 시댁에 쌓인 분유통을 뒤로하고 아이만을 안은 채 달려야 했던 그녀의 절박함을 누가 알아줄까?
그 후 배고픈 날들과 나아질 것 없는 형편에 그녀는 ‘모성’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힘으로 그렇게 버티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18살 어린 나이의 아기를 낳고도 그녀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그녀의 엄마까지 그녀의 삶을 짓 눌렀고, 그녀의 버팀목인 남편마저 대학에 가더니 다른 여자를 만났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아내이자 그 아들을 키우는 여자를 어떻게 배신할 수 있지?
잠적해 버린 그녀의 남편을 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면 나는 등짝을 마구마구 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녀가 아플 때 밥을 차려주고 이마에 손을 짚어주는 야무지고 똑똑한 아들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솔직히 겁이 났다. 그녀의 시련이 여기까지만 끝나게 해달라고...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은 그녀를 절벽 끝으로 밀어 넣고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 두고 보자.라는 식으로 그녀를 그렇게 벼랑으로 밀어 넣었다.
남편의 교통사고와 목숨 같은 아들의 교통사고는 그녀를 또 주저앉게 만들었다.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전교 석차를 달리던 아들이 깨어나서는 엉뚱한 말과 횡설수설을 할 때, 안도감도 잠시 삶의 동아줄인 아들마저 흔들리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어린 나이라 금방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 그녀에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의 교통사고는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을까? 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결국 삶에 쓰러지고 마는 순간을 만난다. 겨우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다행히 수술을 해보니 그녀는 암까지는 아니었다. 몇 주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힘 없이 병실에 누워만 있는 그녀의 투병기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쓰는 이 몇 마디의 문장도 그녀의 아픔을 헤아리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의 간호와 든든한 아들들이 있어서 꿋꿋하게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녀는 몇 개월의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을 하였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작은아들을 걱정한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엄마가 죽을 까봐 너무 무섭다고 흐느껴 울먹이고, 그녀는 따스하게 아들을 안아준다. 그 장면에서 나 역시도 포근함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 대회에서 ‘장원’을 받는다. 그녀의 모진 인생에 대한 훈장이랄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녀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맞는 듯 그렇게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한 채 그녀의 굴곡진 인생의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새벽에 잠든 아들을 보고, 졸린 눈을 비비며 그녀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그녀의 인생이 담긴 책을 구매했다. 그녀의 책을 다 보고 작품을 쓰려고 했는데, 자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감동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큰 용기를 준 감사함이 내가 쓴 이 글을
통해 그녀에게 닿을까?
내가 그녀를 존경할 수 있는 건, 수많은 좌절과 역경 속에서도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다가올까? 하며 삶을 불평하지 않는 그 마음이었다.
그저 내 눈앞에 아들을 지켜야겠다는 그 일념으로,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고 자란 그녀가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었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느 봄날에 찍었던 꽃 한 송이.
어느 나무 밑에 주변에 들풀도 잔디도 그 흔한 잡초도 없이 홀로 피어난 민들레 꽃이다.
그녀에게 이 사진으로나마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