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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여자에게 공감하지 못할까?

지극히 사적인 에세이

by 호수공원

연애할 때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결혼하면 그 다정함이 더해 로맨티시스트적인 그런 완성형 남편이

아닐까? 나에게만 특별한 그런 사람이겠지.라는 착각에 결혼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쓴 제목 그대로이다. 그냥 ‘남자’라고 묶어서 썼을 뿐이지, 남편들은 아내에게 공감을 못 하는 건지, 알고도 그냥 무시하는 건지... 암튼 뭐 그렇다.


그 다정했던 나의 구 남자 친구의 행동들은 다 연기였을까? 그게 연기라고 하면

나는 대학로에 있는 어느 소극장에 남편을 밀어 넣었을 것이다.


‘무대 바닥부터 걸레질을 열심히 해서 무대에 서 보는 게 어때?’


라고 제안을 하고 싶을 정도로.




한 달 전.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는 2년마다 한 번 건강검진이 다가오면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제법 큰 대학병원에 검진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올해부터는 직원의 아내도 같이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하니, 허약한 체질에 한약으로 하루를 버티는 나에게 큰 병원에서 정밀하게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남편과 같이 건강검진을 받아야지 하며, 날짜가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날짜가 나왔다며 나에게 그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준다고 하였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로 내가 일하는 요일들만 아니기를, 다행히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요일은 내가 일하는 요일과 다른 요일이었다. 그리고 날짜를 보니, 이런! 그날은 검진을 받기 정말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여자라면 피해 갈 수 없는 한 달에 한 번뿐인 그 예민한 날에 건강검진이 겹친 것이었다.

첫째 날은 한약과 진통제로 하루를 버텨야 하므로 금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요일을 바꾸고 싶었다. 심란해하는 나와는 달리 요일도 따지고, 예민한 날이라 검진을 못 받는다고 하니 이것저것 따진다며 남편은 마뜩잖게 나를 쳐다보았다.


다음 날, 나는 그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요일 변경은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검진을 취소하였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변경이 안 된다고 보냈다.

남편은 “거봐. 내 말이 맞지?” 하면서 속상해하는 나와 달리 왠지 의기양양해 보였다.


‘네가 가뜩이나 몸도 약한데, 큰 병원에서 같이 검진을 못 받아서 아쉽네.’


뭐 이런 걱정 어린 메시지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허탈함이 느껴졌다.


‘으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친구와 통화했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난다.


나는

“글쎄... 남편이라는 사람이 옆집에 사는 아저씨 같아. 좀 멀게 느껴져.”


친구는

“아니. 나는 옆집 아저씨가 남편보다 더 좋아.”


친구의 말에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하긴 이사 오기 전 옆집 아저씨는 매너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아 보이던 그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내가 먼저 양보를 하면 오히려 나를 배려하여 먼저 타라는 제스처와 함께 밖에 나와서도 나보다 먼저 걷는 법이 없었다.




출근하기 전, 나는 큰 아이의 태권도 학원 가방을 챙겼다. 태권도에 다니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조금씩 적극성을 보이는 큰 아이는 태권도를 무척 좋아하고 잘 다닌다.

나는 일하는 시간대가 바뀌어서 가방을 학원에 맡기고 출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관장님께 전화를 걸어

가방을 맡겨달라고 부탁하였다.


“가방은 맡겨 줄 수 있어요. 근데 어머니가 왔다 갔다 하시면 너무 고생하실 것 같아요.”


나보다 동생뻘인 관장님이 나를 신경 써주는 그 말이 참 달콤하게 들렸다.


내가 살고 있는 남편보다 다른 여자의 남편이 더 친절하고 매너가 좋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녁이 되었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굶은 것처럼 쓰러질 것 같다며 밥을 차려 달라고 하였다. 이럴 때만 너의 아내인 거야? 왠지 괘씸한 남편에게


“나 정말... 거기 큰 병원에서 검진받고 싶었어. 매일 규칙적인 그날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약을 안 먹으면 너무 힘들어. 아이들도 돌봐줘야 하는데...

그래서 검진도 못 받고 얼마나 속상하고 아쉬운지... 넌 알아?”


남편은 무언가 생각을 하고는


“그래. 2년 후에는 꼭 같이 검진받으러 가자.”


그래. 그 정도면 됐어. 근데 굳이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면 안 되겠니?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이다. 적당히 신김치와 매운걸 잘 못 먹는 남편에게 무 김치를 씻어 양념을 덜어내고

티스푼 하나의 버터와, 올리고당을 두 스푼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다.

남편은 팔팔 끓어 따끈한 김치찌개에 아이처럼 치즈를 올려서 허겁지겁 먹었다.


결혼생활이란

바깥에 놓아두면 푹 익어 다른 맛에 김치찌개가 되게 하거나, 원래의 그 맛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처럼.


그렇게 다들 서로 맞추어 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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